반응형

노무현 60

문재인 보면 천성산 지율스님이 생각난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 국면에서 김두관 선수가 자신을 친노와 구분지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선수는 조선일보와 7월 18일 한 인터뷰에서 김두관이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했음을 들어 '김두관은 친노 코어(core·핵심)'라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문재인 선수는 무엇일까요?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바로 옆에서 수행을 했고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과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 자리를 오랫동안 누렸으니 '문재인은 친노 코어 가운데서도 코어(core of cores)'가 되겠습니다. 친노 코어 오브 코어스 문재인 이런 친노 코어 오브 코어스를 보면 저는 지율스님과 천성산이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그이는 2002년 10월 대선 국면에서 지율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와 환경단체들..

노무현을 넘지 못하는 노무현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 가신 지가 벌써 3년이 됐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새벽 그이는 김해 진영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 올라가 몸을 던지셨지요. 노무현 대통령에게 비극을 안긴 세력은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압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그 세력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노무현 대통령을 지금 사람들이 뛰어넘어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에 미치지 못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해서는 그이를 괴롭힌 세력을 제압할 수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세상에서 '친노'라고 이르는 '노무현 사람들'이 특히 노무현 대통령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 그이에 대해 주로 비판적이었습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점..

김두관, 큰 일 할 인물일까 큰 일 낼 인물일까

1. 거짓말쟁이가 된 김두관 도지사 5월 10일치 가 머리기사에서 김두관 도지사가 7월 1일 대권 도전 선언을 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제가 집에서 받아보는 에는 이런 보도가 없었지만 서울에 뿌려진 에는 그렇게 돼 있나 봅니다. 이로써 김두관 도지사는 자기가 경남 유권자에게 한 약속을 완벽하게 어기고 말았습니다. 김두관 도지사는 후보 시절 "당선된다면 임기 동안 무소속으로 남아 도정에 전념하겠다"고 했는데 2012년 2월 민주통합당에 들어가면서 자기 약속의 절반을 어겼고 이번에 도지사직을 버리고 대선 후보로 나섬으로써 자기 약속을 통째로 어기게 됐습니다. (제가 앞에 쓴 글 '김두관 선수를 향한 마지막 바람'에서 "김두관 선수는 후보 시절에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 정신분열증을 예방하려면

1. 선거 때만 되면 도지는 범유권자적 정신분열증 한 선거구에서 한 사람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많은 유권자에게 정신분열증을 강요합니다. 이렇습니다. '내가 ○○○ 후보를 지지하지만 그 사람한테 투표하면 △△△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에 맞설 수 있는 □□□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투표는 그 사람한테 할 수밖에 없다.' 일반 상식으로 보자면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자기 표를 주는 것이 맞습니다. 일반 상식으로 보자면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제쳐 놓고 다른 후보에게 자기 표를 주는 것은 정신이 나간 짓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선거판에서는 이런 정신 나간 짓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집니다. 지지 후보와 투표 후보가 어긋나는 상황, 싫어하는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사태를 무릅쓰고라도 지지 후보한테 투..

천성산, 강정 마을과 '친노'의 부활

1. 이른바 '친노' 세력의 부활 1월 15일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뽑혔습니다. 얼굴을 낱낱이 올릴 필요도 없이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른바 '친노' 세력의 부활이라고들 하더군요. 1등을 한명숙 선수가 하고 2등을 문성근 선수가 했으니 그렇게 이를 만도 합니다. 물론 문성근 선수의 주장대로 '친노'라는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성근 선수는 17일치 4면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분 갖고 통합할 때야 어떤 정파냐가 의미 있겠지만, 우리는 지분 없이 혁신만 하겠다고 통합했다.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 내부에선 그런 용어 쓰지 말자고 제안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성근 선수가 말하는 '우리'나 '우리 내부'가 아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 용어'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

노통 없었어도 아주 멋졌을 봉하·화포천

김해 진영 봉하마을은 노무현 대통령을 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지요. 16대 대통령을 지내다가 2008년 퇴임하고 나서 돌아온 고향 마을입니다. 그이는 여기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화포천을 비롯한 생태 보전에 힘을 보탰습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와 밀짚 모자를 쓰고 다니며 개울에 몸소 들어가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그이 앞에는 없었고 앞으로 적어도 5년 안에는 있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런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1년 남짓만인 2009년 5월 23일 새벽 고향 마을 뒤편 봉화산에 올라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그이 잘잘못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당시 그렇게까지 검찰이 수사를 벌였어야 했다고 여기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그이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넘..

가본 곳 2011.12.19

갱상도 문화학교와 함께 누린 습지의 가을

경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하는 2011 갱상도 생태·역사기행의 두 번째 탐방지는 창녕 우포늪(소벌)과 김해 화포천 일대였습니다. 10월 7일(금) 오전 9시 30분 경남도민일보 앞에서 30명이 모여 전세 버스를 타고 달렸지요. 일행 가운데 셋은 창녕 우포늪에서 합류했답니다. 일행 가운데 몇몇은 먹을거리까지 준비해 왔습니다. 심은아 씨는 달걀을 60개 삶아왔고 이규복 씨는 감귤을 50개 남짓 가져왔습니다. 단감 농장을 하는 박선희 씨는 단감을 두 바구니씩이나 챙겨왔습니다. 사람들은 고맙고 즐겁게 다들 나눠 먹었습니다. 버스는 10시 30분 창녕 대지면 효정리 창산다리 앞에 멈춰섰습니다. 창산다리는 우포늪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아..

가본 곳 2011.10.21

천정배가 '서울 패권주의'에 맞설 수 있을까?

1. 지역주의는 영남 패권주의였다 7월 25일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민주공원에서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과 블로거들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민주당 2012년 대선 후보군에 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날 그이는 지역주의가 나날이 깨어지고 있으며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라 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와 올해 4·27 재·보선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나라당 무풍지대였던 경남과 강원에서 야권 도지사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이의 이 같은 분석과 판단은 "호남 지지만으로는 정권 찾기 어렵다. 내년 대선에서 영남 출신이면서도 호남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서면 어떨까?" 하고 물은 데 대한 대답으로 나왔습니다. 이어서 "어느 지역 출신이냐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

노무현의 노사모와 김정길의 길벗

노사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런저런 정당을 떠나 정치인을 중심으로 삼는 모임의 원조쯤 될 것입니다. 노사모에서 저는 전체적으로 노무현 개인의 캐릭터가 전체를 압도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노무현을 따르고 사랑하는 정도가 보통 사람 생각에 비춰볼 때 좀 지나친 측면이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길벗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길벗은 정치인 김정길의 팬 클럽입니다. '김정길의 벗들' 정도가 되겠지요. 6월 24일 김정길 김대중 정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이 부산민주공원에서 블로거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길벗이 전국에 2만 명 정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김정길은 그다지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정치인인데도 이토록 커다란 팬 클럽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

대권 도전 의사 밝힌 김정길의 미덕은?

1. 40년 인생을 지역주의에 맞섰다 부산대학교 총작생회장이던 1971년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 일대에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는 전단이 뿌려졌습니다. 누가 했는지, 속셈이 뻔하지 않습니까? '아, 이 새끼들 봐라. 여기가 어디라고 전라도 새끼들이 설쳐?'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정권 차원에서 일으킨 사단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지역주의 이거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여태까지 흔들리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지역주의 타파·척결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때도 그래서 현역 국회의원이면서도 김영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쪽팔리잖아요? 저는 협상과 타협을 좋아하지만 아울러 원칙과 정의에도 충실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덜 알아줍니다. 그래도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