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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6

이명박, 어리다고 반말하는 버릇 어디서 배웠나

신문사 기자사회는 선후배간 서열 문화가 센 편이다. 나이 많은 후배라도 먼저 입사한 선배한테는 꼬박꼬박 '선배'라고 불러야 한다.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과거엔 나이 어린 선배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후배에게 "○○야, 이리 와봐!"하며 함부로 말을 까기도 했다. 특히 경남도민일보는 기자 채용시 나이 제한을 없앴기 때문에 선배보다 나이 많은 후배들이 많이 들어왔다. 2000년이었던가? 내가 기자회장을 맡으면서 교통정리를 했다. "둘이 동갑이거나 후배 나이가 더 많을 경우, 서로 존대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김훤주 기자와 지금도 서로 존대하는 이유다. 왜? 신문사는 민간회사이지 군대 같은 계급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 사회의 학연, 혈연, 지연 문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고향 ..

좋은 사회적기업은 마케팅도 달라야

이번에는 제3강입니다. 10월 8일 오후 3시부터 치러진 내용입니다. 장소는 마찬가지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경영 및 마케팅 전략'을 주제로, 김영만 마산대학교 유통경영학과 교수가 했습니다. 마케팅 강의를 하러 가면 제품 판로를 확보해 달라거나 고객을 소개해 달라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하지만 마케팅 강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브로커가 합니다. 마케팅(marketing)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과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관점, 전략, 개념 따위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사회적기업은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5년 동안 인건비 지원받고 나서는 자생해야 합니다. 만약 5년 동안 지원이나 받고 나머..

민주열사 장례식, 50년만에 치르는 까닭

김주열 열사를 아시나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960년 3·4월혁명의 대표적인 열사가 바로 김주열입니다. 그는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거하여 3월 15일 마산시청 앞 시위에 앞장서다 경찰이 쏜 미제 직격최루탄에 눈과 두개골이 관통당해 처참하게 숨졌습니다. 전북 남원시 출신의 김주열은 당시 마산상고에 갓 합격한 17세의 어린 학생이었습니다. 경찰은 김주열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 그날 밤 그의 시신에 돌을 매달아 마산앞바다에 수장시켰습니다. 이렇게 김주열이 행방불명되자 남원에서 아들을 찾으러 마산에 온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온통 마산시내를 헤집고 다니며 "우리 아들 주열이를 찾아달라"고 절규했습니다. 하늘도 분개한 탓일까요? 마침내 4월 11일 오전 11시 김주열의 처참한 ..

시정홍보지가 혁명열사 김주열 폄훼 말썽

라는 신문이 있습니다. 경남 마산시에서 발행하는 시정홍보신문입니다. 이 신문은 무려 10만 부가 넘게 발행되어 각 가정에 배달됩니다. 경남에서 발행되는 모든 지역일간지보다 발행부수가 더 많습니다. 그 신문이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그 신문이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특집기사를 쓴 것까지는 좋았는데, 결정적으로 4월혁명의 대표적 열사인 김주열의 죽음을 폄훼하고 왜곡시켜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가 저지른 이번 사고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이 한 페이지에 걸쳐 정정보도문을 실었던 실수를 딱 그대로 반복한 셈이어서 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4월 11일 '김주열 열사 50주기 범국민장'..

지역 촛불은 '작은 이명박'으로 향해야 합니다

60일 넘게 지치지도 않고 계속돼온 촛불항쟁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편에 씁쓸한 게 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이라 일컫는, 정확히 말해 '서울 외 지역'의 역할이 거의 사라져버린 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무시당하고 있는 지역 촛불집회 사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항쟁은 대개 서울보다는 '지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됐고, 전봉준도 거기서 나왔다. 3·1운동이라 부르는 '기미독립항쟁'도 서울에서 33인이 싱겁게 투항해버렸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일제의 총칼에 맞섰다. 유관순 열사의 거사가 있었던 곳도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였다. 해방 후에도 제주4·3, 여순사건, 마산3·15에서 이어진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이 모두 지역..

93년 연단에서 춤추는 고 문익환 목사

경남 마산의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 전 상임대표가 지난 2006년 자료를 정리하던 중 우연히 찾아낸 사진입니다. 91년인지, 93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답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독자들이 93년 경남대 한마관이 맞다고 확인해주더군요. 지금 경남도민일보 서울파견기자로 있는 정봉화 기자는 당시 1학년 새내기로 문익환 목사에게 꽃다발을 전해줬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당시 김 전대표가 상임의장으로 있던 ‘민주주의 민족통일 마창연합’이 늦봄 문익환 목사를 초청, 경남대 한마관에서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사진에선 문 목사(왼쪽)와 김영만 당시 의장이 활짝 웃으며 춤을 추고 있네요. 요즘엔 민간차원의 북한 방문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민간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까지 만나는 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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