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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갑 3

마산 혁신운동의 역사, 시민은 분열된 진보를 믿지 않는다

관련 인물 : 김문갑, 노현섭, 김성립, 이봉규, 윤시형, 조억제 [역사적 배경] 마산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야당도시’라 불릴 정도로 혁신 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은 지역이었다. 1952년 8월 5일 치러진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 마산의 유권자들은 진보개혁의 기치를 들고 출마한 조봉암 후보에게 1만 1262명이 표를 몰아줬다. 당시 마산의 유효 투표자 수는 3만 3559명이었으니 33%의 시민이 조봉암을 밀었던 것이다. 이는 전국 평균 조봉암의 지지율(11%)보다 훨씬 높았다. 당시 창원군민들도 총 7만 7332명의 투표자 가운데 2만 2630명이 조봉암을 찍어 29%의 지지율을 보였다. 1956년 3대 대선에서도 이승만은 2만 2770표, 조봉암은 2만 156표를 얻었다. 당시 마산의 유효 투..

영세중립통일추진위, 누가 이들을 아시나요?

해방 후 마산에서 영세중립통일운동을 하다 5·16쿠데타 정권하에서 옥고를 치른 고 김문갑(1909~2004년·사진) 씨와 고 김성립(1917~1982년) 씨가 52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부(부장판사 이흥구)는 고 김문갑 씨의 아들(62)과 고 김성립 씨의 아들(66)이 재심청구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마산 통일운동가 52년 만에 명예 회복…고 김문갑·김성립 씨 무죄 선고 제가 2009년 10월 "5·16쿠데타 직후 억울하게 죽거나 징역을 살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는 기사를 쓴 지 햇수로 4년 만에 이뤄진 결실이네요.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는 '5·16쿠데타 직후의 인권침해사건'에 ..

60년대 진보인사들 명예회복 길 열렸다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난 이틀 뒤인 18일, 마산에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을 하던 노현섭 씨와 교원노조 중등지회장 이봉규 씨, 그리고 영세중립화 통일운동가인 김문갑 씨 등이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전격 연행됐다. 그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구금된 이들이 수천 명이었다. 구속영장도 없었고, 처벌할 법률도 없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헌법도 무시하고 뒤늦게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 그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15년, 10년씩 중형을 때렸다. 천만다행으로 풀려나온 사람들도 제각각 수개월씩 불법구금을 당한 뒤였다. 이렇게 5·16쿠데타 직후 억울하게 죽거나 징역을 살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가 21일 '5·16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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