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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6월항쟁 4

진주 가스차 탈취 시위가 6월항쟁 최대고비였던 까닭

LPG가스차 위에서 횃불 들고 "죽자! 죽자!" 해방 이후 세대가 과연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해방의 그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겠다고 노래한 심훈의 심정을 말이다. 마찬가지로 민주화 이후의 요즘 세대가 87년 LPG 운반차량 위에서 횃불을 들고 "죽자! 죽자!"라고 외치며 진격하던 선배들의 비장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랬다. 87년 6월 17일 남해고속도로에서 LPG 차량탈취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의 구호는 '죽자'였다. ◇러닝셔츠로 횃불 만들어 = 87년 8월 1일자로 발행된 월간 부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몇 차례의 공방 끝에 고속도로를 점거한 학생들은 오후 7시쯤 경찰가스차 2대와 LPG운반차 2대를 빼앗았다. 학생..

전국 놀라게 한 경상대생 고속도 가스차 탈취 시위

◇태도 달라지기 시작한 경남신문 3만여 명이 참여한 마산 6·10대회를 사회면에 2단 짜리 기사로 보도하면서 '시민 반응 냉담'이라는 제목을 달아 시민의 분노를 샀던 도 15일 시위를 기점으로 보도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6일자 사회면에 가로 제목으로 뽑은 '전국 59개 대 격렬시위-경남·경상·창원대생 시가지 진출'이라는 기사를 통해 전국은 물론 마산과 창원·진주의 시위 소식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다. 또 17일자 사회면은 처음으로 시위소식을 7단 사이드 톱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날 보도의 중심은 단연 16일의 진주 시위였다. '경상대생 2천여 명 진주시가지 격렬시위-파출소 등 6곳 기습 불태워-남해고속도 점거 한때 교통마비-시민 2명 최루탄 맞아 부상'이라는 자세한 제목과 함께 고속도로를 점거한 사진..

4·19 이후 진주 최대 시위…항쟁 '재점화'

87년 6월 15일 시위 거점, 마산에서 진주로 6·10대회의 경남지역 거점은 마산이었지만, 진주·거창·진해에서도 소규모 집회가 있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썼던 바 있다. 이들 소규모 집회마저 원천봉쇄하려던 일선 공무원들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물론 그 공무원들도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비애였다. 요즘 같으면 경찰 외에 행정직 공무원이나 농협 직원이 시위 저지에 나서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땐 그랬다. 87년 당시 거창군농민회(회장 표만수)가 발행한 (87년 7월 15일자) 창간호를 보면 그들이 거창 6·10대회를 막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공무원 6명이 농민 1명 감시 = 이 신문의 기록에 의하면 앞서..

6월항쟁이 서울에서만 진행되었다면?

서울 사람들에게 참으로 묘한 말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모두 ‘지방’이라 통칭하는 버릇이다. 부산에 출장을 가면서 ‘지방 출장 간다’ 하고, 창원에 와서 현지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전화가 걸려오면 ‘응, 지금 지방에 와 있어’라고 대답한다. 서울도 수많은 지역 중 하나일 뿐인데, 그들에겐 대한민국이 ‘서울+지방’으로만 보이는 걸까. 아니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그 외에는 그냥 이름 없는 ‘부속 도서’ 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서운하다. 민중의 힘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사건은 모두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시작됐다. 1948년 제주 4·3항쟁부터 1960년 이승만 독재에 맞서 일어선 2·28 대구항쟁이 그랬고,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 마산의거가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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