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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26

잊어볼 결심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SNS에는 존경스러운 스승에 관한 글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런 스승이 없다는 글도 많았다. 고통의 기억을 남긴 선생님들에 관한 얘기도 적지 않았다. 나는 혼자만 그렇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 국민학교 때 1970년 3월 국민학교 입학한 다음 날부터 맞기 시작했다. 대답할 때 왼손을 들지 않았다고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왼손잡이다. 왼손으로 필기를 하니까 당연히 “저요” 하면서 오른손을 들었는데 왼손이 아니라고 얻어터졌다. 한강철교도 있었다. 비오는 날이었는데 운동장으로 내몰렸다. 60명 남짓 여덟 살 아이들은 엎드려뻗쳐를 하고 어깨 위에 다른 친구의 발을 올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강철교는 “앞으로 십 보”, “우..

쉽게 써 본 창원의 역사 ⑦이순신의 빛나는 승전지

시월유신기념탑과 현대문화유산 흑백다방도 사연이 있어요. 6·25전쟁이 남긴 흔적이지요. 지역화가 유택렬(1924~99)이 1955년부터 운영한 ‘흑백다방’은 지금은 다방 영업을 접고 이름도 ‘문화공간 흑백’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니 근대가 아니라 현대 문화재라 할 수 있어요. 진해로 피란을 왔던 이중섭·윤이상·조두남·유치환·김춘수·전혁림 같은,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어른들한테는 많이 알려진 예술인들이 이곳에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해요. 원래 가난한 예술인들이 전쟁을 만나 더욱 가난해졌어요. 그래서 어디 모여서 이야기라도 나눌 공간조차 변변찮았어요. 그 때는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가 바로 일감으로 이어지고 삶의 활로로 이어지곤 하는 시절이었지요.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방법이 그런 것뿐이었..

이은상의 곽재우유적정화기념비문

이은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으뜸가는 기회주의자라 하면 딱 맞다. 다른 기회주의자 100만 명을 갖다 놔도 이은상 하나를 당할 수 없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모두 하고 적극적·능동적으로 붙어먹었다. 이승만 시절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 당선을 돕는 문인 유세단 활동.지원 유세에서 "이순신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부정선거에 항거하는 3·15의거를 두고는'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 박정희 시절1963년 박정희 집권을 위한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 작성1972년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10월유신에 청년우인회 중앙본부(=극우단체. 서북청년단 등 8개 단체의 총연합으로 출범. 대한민국통일건국회의 전..

이제 왕국을 허물고 민국을 세울 때가 되었다

삼강행실도의 무시무시한 그림들 거제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에 가면 무시무시한 그림들이 있다. 조선시대 삼강(三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열녀도들이다. 에서 가져왔다. 삼강은 알다시피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도리 셋을 이른다. 주인은 임금과 남편과 어버이다. 종속된 것은 신하와 아내와 자식이다. 는 광해군 시절 만들어졌다. 앞서 세종 때는 , 중종 때는 가 만들어졌었다. 광해군 시절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다. 임진왜란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충신·효자·열녀가 많이 배출되었다. 열녀·충신·효자가 많은 시절은 살기 팍팍한 시절이었다. 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림을 보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

마산 태극기집회, 심정은 충분히 알겠더라

18일 오후 2시 마산 오동동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위한 마창진 구국행동 시민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맞불집회, 태극기집회다. 서울에서는 이런 집회를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에서 하는데 마산에서는 '마창진 구국행동 시민연합'이 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참여할까? 심정은 어떠할까? 진행은 어떻게 할까? 무슨 발언이 나오고 무슨 노래를 부를까? 돈받고 참여한다는데 사실일까? 신문·방송을 보면 말과 행동이 난폭하다는데 실제 그럴까? 난폭하다면 어느 정도일까? 오랜만에 오동동 나가 점심도 먹고 책도 산 다음 위안부 소녀상 있는 데로 시간 맞추어 옮겨갔다. 위안부 소녀상이 있는 바로 앞이 1660년 3.15의거-이승만 정권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시작된 발원지이고 바로 거기서 구국행동 시민집회..

40년 전 국민학생 시절과 독재자 박정희

나는 박정희가 싫다. 5·16군사쿠데타, 10월유신, 계엄령·위수령, 비상사태·긴급조치, 중앙정보부, 공포통치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객관 사실 때문에도 그렇지만 개인 경험만으로도 나는 박정희가 너무 싫다. 나는 1963년 생이다. 1970년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박정희는 이태 전인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박정희는 전체주의에 따라 사회 모든 분야를 군사화했다. 그것은 조그만 시골 국민학교 교실에까지 관철되고 있었다. 학교 정문을 통과할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입학식 하는 첫 날, 배우지도 듣지도 못했기에 교문을 그냥 지나쳤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불러 세워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때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뒤 학교 생활에..

의령 충익사에 노거수가 즐비한 까닭

곽재우 최초 승전지 기강나루경남 의령군 지정면 성산마을에는 기강(岐江)나루가 있다. 의령과 함안을 북과 남으로 가르며 서쪽에서 흘러온 남강 강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이다. 여기에 박정희 시절 그 주구 노릇을 한 당시 의령군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전말은 이렇다. 기강나루는 임진왜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의 첫 승전지다. 곽재우는 1592년 5월 4일과 6일 여기 강물 아래에 나무말뚝을 박아둔 다음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왜군의 배가 걸리자 습지 풀밭에 숨어 있던 의병들이 화살을 쏘아 왜적을 무찔렀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와 육지를 통틀어 조선이 이룬 최초 승전이다.(이순신 장군의 최초 승전은 5월 7일 옥포해전) 임진왜란 최초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는 곽재우의 기강나루전투 승리는 왜군이 호남으로..

박근혜가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게 하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제33주년 기념식에 참석은 했지만 ‘님을 위한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는 않았다는 보도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국가보훈처가 합창은 하지만 제창은 않겠다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부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꺼려한다는 사정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내심은 그런 정통성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5.18 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려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 행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5.18기념식에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고요, 2005년과 2006년에도 참석했습니다...

보람만 누리고 고통은 떠넘기는 홍준표

지금 경남도는 비상사태다. 홍준표 도지사가 새누리당 공천으로 당선되자마자 ‘부채 청산’ 또는 ‘부채 축소’를 명분으로 삼아 사실상 비상사태를 만들어냈다. 독재자 박정희가 1970년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국가 보위’ 또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삼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민을 옥죈 데 견줄만하다. 경남문화재단·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경남영상위원회를 경남문화예술진흥재단으로 통·폐합하겠다는 방안을 통한 예산 절감 목표액은 5억8400만원이다. 갈수록 빚이 쌓이는 진주의료원 폐업은 부채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더불어 경남도는, 지금껏 쌓인 부채 270억원도 진주의료원의 현재 보유 자산을 처분해 청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 싶다. 경남도는 나아가 18개 시·군의 지역 균형 발전이 목적인 모..

민주주의전당, 마산에는 개 발에 닭 알

1. 마산은 민주주의와 반독재의 고장인가 민주주의전당이 있습니다. 2001년 6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건립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광주에 짓겠다고 공약했고요, 박근혜 현 대통령은 2012년 11월 28일 마산에 짓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마산에서는(행정통합이 됐으니까 이제는 창원이라 해야 맞겠네요.) 그동안 민간 차원 시민 사회에서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으로 끌어오자는 논의와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어쩌면 그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에 두자는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산이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사건인 3·15의거와 10·18부마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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