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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11

함양 동호정을 개떼처럼 유린한 산악회

한 주일 전 7월 16일 마침 시간이 나기에 함양으로 걸음했다. 8월 초순 몇몇과 물에 발 담그는 약속을 했는데 함양 화림동 골짜기가 알맞은지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화림동 들머리 농월정은 주차장에 늘어선 대형 버스들을 보고는 질려버렸다. 줄잡아도 50대는 넘을 것 같았고 자가용 승용차도 적지 않았다. 주차장만 보고도 콧잔등에서 다른 사람 땀냄새가 났다. 물론 이렇게 농월정을 지나친 것은 화림동 상류 동호정·거연정·군자정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자들은 농월정처럼 엄청난 인파가 몰릴 수 있는 지형이 못되었던 것이다. 생각은 틀리지 않아서 농월정처럼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정자는 없었다. 그러나 서너 사람이 물에 발 담그고 쉴만한 장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 몇몇(그래도 100명은 넘어 보였다)..

학대받는 늙은 모던보이 진주역차량정비고

진주역차량정비고는 등록문화재 제202호로 근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건축물로 진주역 폐역(진주시 강남동 245-225)에 있다. 한국철도공사(이른바 코레일)가 소유하고 있는데 붉은 벽돌 건물에 화강암이 조금 더해졌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풍인 건축물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서양식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꽤 높다랗고 튼튼한데다 고풍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오른쪽 위편에는 살짝 홈이 패여 있는 자죽마다 풀이 자라고 있는데 이는 6.25전쟁 당시 총탄 자국이라 한다. 일제 강점에 더해 한국전쟁의 역사까지 함께하는 현장이다. 진주역차량정비고는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는 바로 옆에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한껏 멋을 더해준다.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어쩐지 편안한 한편으로..

합천의 뇌룡정 복원과 영암사지 귀부 세척

합천에 있는 문화재 가운데 뇌룡정과 영암사지 귀부(동·서 제각각 하나씩)가 수리 또는 보수를 받았습니다. 더 많은 문화재가 수리·보수를 받았을 수 있지만 제가 아는 범위에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삼가면 외토리 남명 조식 선생 생가(외가) 마을에 있는 뇌룡정은 선생이 김해 처가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1548년 지어져 가까운 단성 덕산으로 나간 1961년까지 13년 동안 제자들 가르쳤던 공간입니다. 일제강점 직전 1900년대에는 의병장 왕산 허위 등이 고쳐 짓기도 했다는 건물입니다. 허위 선생은 일제의 민비 시해로 일어난 을미의병(1895년) 그리고 고종 폐위와 군대 해산으로 일어난 정미의병(1907년)에 모두 떨쳐나선 인물로 1908년 일제에 붙잡혀 교수형을 당합니다. 1890~1900년대 나라가 어려운 시..

국립중앙박물관, 창녕 통나무배 내놓아라

우리 동네 유물들 국립중앙박물관에뺏어간 유산 돌려달라 목소리 내야 서울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습니다. 여기에 가야 우리 문화유산 전체를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 출신 문화유산들이 산더미처럼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수도권 사람에게만 좋은 일입니다. 전시되는 지역 유물도 많지만 햇볕 한 번 못 본 지역 유물도 많습니다. 1965년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사리기·사리병 등도 여기 들어갔습니다. 2000년대 들어 수장고 어디 있는지 한동안 찾지 못했을 정도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도 많아서 어디에 무엇이 처박혀 있는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2005년 창녕 부곡면 비봉리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유물도 여기 들어갔습니다. 통나무배, 멧돼지가 그려진..

우리에게는 약탈한 남의 문화재 없을까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서 약탈됐던 외규장각 도서가 5월 돌아온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인천의 강화도 일대에서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대회'가 크게 열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빼앗아간 책들도 일부가 곧 돌아올 모양입니다. 6월10일 한일도서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데 따라 한반도 약탈 도서 105가지 1205권을 일본이 앞으로 여섯 달 안에 돌려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쩌면 당연하기만 한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가 안팎으로 돌아봐졌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환지본처(還至本處)'가 떠올랐습니다. 1. 돌려 받아야 할 문화재도 많지만 우리 스스로는 역지사지와 환지본처를 하지 않으면서 일본과 프랑스 등에만 역지사지와 환지본처를 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충무공 모친 살던 집은 문화재 될 수 없다?

전남 여수시 웅천동 송현마을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전란 중 5년간 살았던 집 터가 있다. 1593년부터 1597년까지 거기에 사셨던 어머니 초계 변(卞守琳) 씨는 아들 이순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후 백의종군을 위해 남쪽으로 가고 있던 1597년 4월 자신도 여수를 떠나 고향 아산으로 가던 중 길에서 생을 마감했다. 충무공의 어머니가 사시던 곳은 장군의 휘하에 있던 정대수(충정공) 장군의 집인데, 그 집 안쪽의 약간 높은 터에 따로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현재 그곳은 터만 남아 있고, 정대수 장군의 집에는 14대손인 정평호(75) 씨 부부가 살고 있다. 그 집도 상당히 고색창연한 옛집인데, 임진란 당시의 집은 아니고 후손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난중일기에도 장군이 문안인사를 위해 이곳에..

가본 곳 2009.07.21

어떤 문화재가 서울로 수탈 반출됐나

경남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서울로 반출된 문화재나 유물은 어떤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체계적으로 모든 것을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살펴보니 이런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구석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경남 양산 2007년 유물 환수 추진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던 양산은 일본으로 끌려나간 신라 금동관 등 일본 도쿄박물관에 들어 있는 800여 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소유로 돼 있으면서 동아대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는 고분 출토 유물을 반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도 절간 유물들을 되찾고자 지난해 11월 유물반환추진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추진위가 되찾으려는 유물은 회암사 약사삼존도, 청동 발우, 지공화상 비편(碑片), 은제도금라마탑형 사리구,..

서울 수탈 문화재 반환 안 되는 까닭

1. 경남에 없는 경남 문화재 창원 봉림사터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비(보물 363호)와 산청 범학리 3층석탑(국보 105호)처럼, '경남 출신' 문화재들이 꽤 많이 서울 등지로 '반출'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등에 박힌 채 '반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은 한 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 경남의 경우 창원 다호리 고분군과 창녕 교동 고분군 ·함안 도항리 고분군 ·합천 반계제 가야고분 출토 유물이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3층석탑(국보 34호) 사리장엄구, 의령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등도 아직까지 '반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한편 반환운동의 경우 경남에서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약탈당한 진주 연지사 동종을 되찾자는 운동을 빼면 양산에서 유일하게 2007년 한 때 민간 차..

문화재 되찾기, 전라도에 배워야겠다

1. 서울로 떠도는 경남 문화재 1월부터 우리 문화체육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경남 문화재에 관심이 갔습니다. 나름대로 이리저리 둘러보니, 경남 '출신'이기는 한데 다른 데 가 있는 문화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창원 봉림사터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 그랬습니다. 보물 362호와 363호인 보월능공탑과 탑비는 원래 창원 봉림동에 있었으나 일제가 1919년 서울로 가져갔습니다. 보월능공탑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 놓여 있음이 확인됐지만 보월능공탑비는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경복궁에서 지금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장고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더 처량합니다. 국보 105호인 이 석탑은 범허사라..

서울은 문화재도 수탈해 갔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그대로 두고 보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들 합니다. 프랑스가 빼앗아 간 강화도 외규장각 조선왕실 ‘의궤’를 비롯한 여러 약탈 문화재를 되찾으려고 우리가 갖은 애를 쓰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제자리에 그대로 보존’이라는 말이 나라와 나라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에만 적용되는 원칙일까? 제 생각에는 아닐 것 같습니다. 같은 나라 울타리 안에 있는 지역과 지역 사이에서도 존중돼야 마땅한 그런 황금률일 것 같습니다.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이 있습니다. 광배(光背) 뒷면에 ‘연가 7년’으로 시작되는 한자 47개가 새겨져 있는 고구려 불상이랍니다. 1963년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에서 발견돼 이듬해 국보 제119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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