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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치수 8

민간인학살 희생자 창원위령제에 모인 사람들

2014년 제64주기 제7차 창원지역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이 7월 5일 오후 1시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천주교 마산교구청 1층 강당에서 열렸다. 오랫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우선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다. 그는 2005년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와는 2000년부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뜻을 모으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를 함께 했다. 김동춘 교수 사진 한 장 더.... 정동화 유족회 부회장이다. 그는 2001년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한 '민간인학살 유족 증언대회에 나와 당시 창원시의원 신분으로 자신이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의 아들이라고 증언했다. 노치수 유..

민간인학살 64년, 위령제는 7차인 까닭

2014년 제64주기 제7차 창원지역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이 7월 5일 오후 1시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천주교 마산교구청 1층 강당에서 열렸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창원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는 23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717명 정도로 확인했고, 그 중에서도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358명이었다. 그 분들이 학살된 지는 64년이 지났는데, 위령제는 왜 7차일까? 이날 정동화 부회장이 읽은 경과보고는 이렇게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009년 2월 18일 마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의 희생자 63명의 진실규명 결정 후 동년 4월 25일 오후 1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김주완 부장의 주선으로 김도곤, 황양순, 노치수, 송시섭, 송수섭, 권영철, 배기현, 김재환, 김정임,..

학살유족들 "반성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아래 글은 내가 관여하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경남지역 유족회' 대표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과 각 정당에 호소하는 기자회견문입니다. 초안은 제가 잡았고, 저와 함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서봉석 전 산청군의회 의원, 그리고 마산유족회 노치수 회장님이 감수했습니다. 오늘 이 내용을 갖고 경남지역 유족회 대표님들이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회견장에서 특히 KBS 기자가 질문을 많이 했는데 오늘 저녁 TV뉴스에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내일 아침 신문에 얼나마 보도될 지 궁금하네요. 유권자가 직접 나서 후보자와 정당들을 상대로 이런 공약을 해줄 것을 요구한 이 글은 과거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유권자의 자세에서 나아가..

사진·영상으로 보는 학살 유해발굴 현장

어제(30일) 또 민간인학살 암매장 터 유해발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하도 이런 현장을 많이 봐서 이제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멍멍해집니다. 경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산으로 좀 올라가면 가늘골(아랫법륜골)이라는 야트막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감나무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 과수원의 주인이 산을 매입할 때 전 주인으로부터 학살 매장터가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곳은 감나무를 심지 않고 공터로 두었다고 합니다. 이 감나무 과수원 주인의 제보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용역을 받은 경남대박물관 유해발굴팀(책임연구원 이상길 교수)이 발굴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깁니다. 지난 11일 처음 유골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입니다. 장맛비가 와서 이렇게 덮어놓았습니다. 19일만에..

62살이 되어서야 처음 불러보는 '아버지'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들에 의해 강제해산됐던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가 어제(20일) 48년만에 재창립대회를 열었다. 어제 창립대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노치수(62) 유족회장은 1950년 당시 우리 나이로 세살바기 아기였다. 그 때 아버지 노상도 씨를 잃고 평생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왔던 그는 62세 노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살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언젠가 꼭 쓰고 싶은 글이었는데, 이제야 썼으니 신문에 실을 수 있으면 싣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버려도 된다"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당연히 신문에 게재하고, 이 블로그에도 올려 많은 분들과 그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한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아버지! 아버지를 얼마나 불러 보고 ..

민간인학살 유족들의 뿌리깊은 피해의식

어제(20일) 오후 1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 창립대회가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있었다. 1961년 5·16쿠데타 정권에 의해 유족회 간부가 구속되고 강제해산되는 아픔을 겪은 후, 48년만에 재창립되는 행사였다. 창립 준비과정에 함께 했고, 어제 행사 사회를 내가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산의 학살사건을 처음으로 발굴해서 보도하고, 1960년 유족회 활동과 강제해산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정말 각별한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유족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버지가 학살된지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유족들의 '빨갱이 컴플렉스'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genocide)과 달리 한국에서의 민간인학살은 명백한 '정치적 학살(massacre..

48년만에 다시 창립되는 학살 유족회

제가 돕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주)'가 마침내 창립총회를 엽니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정권에 의해 강제해산된 지 48년 만에 다시 창립되는 것입니다. 저는 유족은 아니지만, 자문위원 자격으로 그동안 준비위원회를 도와 왔습니다. 그래서 오는 저는 지역언론과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그리고 몇몇 블로거 님들께 아래와 같은 보도자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드렸습니다.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로 2000여 명에 이르는 억울한 영혼과 유족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유족들은 현 이명박 정권 들어 후퇴하고 있는 진실규명 작업에 분노하면서도, 아직도 깊은 공포와 오랜 피해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많은 기자와 블록거 님들이 오셔서 이들의 슬픔과 한..

아버지와 숙부의 한 풀겠다는 60대의 사연

60대 이상의 마산시민 중 '노현섭'이라는 이름을 모른다면 그는 마산토박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한국노동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서도 그를 모른다면 얼치기일 가능성이 높다. 50~60년대 노동·인권운동가 노현섭 그로 말하자면 노동운동에서 '마산의 바웬사' 같은 인물이었고, 일찌기 혁신정당 운동을 벌인 진보정치인이었으며,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학살 만행을 가장 먼저 폭로하고 전국적인 진상규명 운동을 이끈 인권운동가였다. 노현섭(1920~1992) 씨는 마산시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마산보통상업학교(이후 마산상고를 거쳐 용마고등학교로 바뀜)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 이후 3개 부두노조를 통합한 단일지역노조인 대한노총 자유연맹 마산부두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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