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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7

진주의료원노조가 공격받는 근본 까닭

1. 진주의료원노조가 강성 귀족이 아닌 까닭 새누리당 소속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처음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밝힌 2월 26일에는 ‘지나친 누적 적자’가 원인이라 했습니다. 그러다 4월 3일 휴업을 발표하면서는 ‘강성 귀족 노조’로 탓을 돌렸습니다.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라 강성 귀족 노조의 병원이며 이를 위해 혈세를 낭비할 수는 없다.” 진주의료원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임금 동결 상태입니다. 체불 임금 또한 일곱 달치를 넘습니다. 대부분이 2000만~3000만원 빚을 졌으며, 대리운전 알바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강성 노조는 세상에 없습니다. 봉급은 공무원의 70%,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평균의 80% 수준이라 합니다. 간호사 직종 평균 연봉도 3100만원 정도여서 다른 지방의..

30년 경력 노동운동가가 활동 접은 사연

경남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이 활동을 접었습니다. 아내의 발병과 생활고 때문입니다. 최은석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부지부장(동명모트롤지회 소속). 최은석 금속노조 경남지부 부지부장은 2월 14일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부지부장직을 '사퇴'했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부지부장이 아닌 셈입니다. 최 부지부장은 여기서 "2009년 12월 부지부장에 당선돼 지부에 파견나왔는데 소속된 사업장 단협이 해지된 상황이라 노조 활동이 인정되지 않고 부득이 무급휴직으로 부지부장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며 "그러나 최근 아내의 병고로 더 이상 지부 임원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됐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최 부지부장은 이어 "지난해 12월 제 여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뒤 아내가 원인을 알 수 없..

그 자리에 진보 노동운동가는 없었다

'한국노동운동의 선구자 고(故) 소담(昭潭) 노현섭 선생 추모회'라는 긴 제목의 모임이 2일 오후 6시 마산M호텔에서 열렸다. 노현섭(1921~1991) 선생이 타계한 지 20년, 누명을 쓰고 투옥된 지 50년만에 처음 열린 지역사회 차원의 추모행사였다. 묻혀진 노동운동의 선구자 추모행사 참석자들의 면면을 기록삼아 적어 보면 이렇다. 김재윤 전 경남대 교수, 이순항 전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홍중조 전 경남도민일보 논설실장, 황창규 전 항운노조 위원장, 김명호 경남항운노조 위원장과 간부들, 최광주 경상남도 새마을회 회장, 백한기 3·15의거기념사업회장, 김종배 전 3·15의거기념사업회장, 조민규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 김종대 창원시의회 의원, 허진수 전 경남도의원, 김영만 전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권광..

20년만에 열린 한 노동운동가의 추모행사

고(故) 소담(昭潭) 노현섭 선생은 마산시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마산보통상업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 이후 3개 부두노조를 통합한 단일지역노조인 대한노총 자유연맹 마산부두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그는 마산자유연맹 위원장과 전국자유연맹 위원장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했으며, 노동자 자녀를 위한 마산고등공민학교와 노동병원을 설립·운영하기도 했던 마산노동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다. 또한 6·25 때 친형인 노상도 씨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후, 1960년 3·15의거로 학살책임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뛰어들어 마산유족회와 경남유족회를 결성한 데 이어 전국유족회 회장을 맡았다. 이 때문..

자칭 386은 '학번 없는 운동가들'께 사죄해야

의 표지 이야기로 오른 386 주간 잡지 이 3월 1일치 24호에서 386세대를 표지 이야기로 다뤘더군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이른바 ‘386’들이 예전하고 그대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세 꼭지 가운데 40쪽 좌담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제목은 “반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물러설 때는 아니다”입니다. 그런데 ‘반성’은 “엘리트주의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 한 번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테면 “우리 세대는 편 가르기 식 사고를 했다.”처럼, 이른바 ‘반성 모드’로 볼 말이 없지는 않지만, 곁가지 정도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이밖에 인상적인 부분으로는 “(386세대인) 지금 40대에게 운동은 골프다. 영어 몰입 교육을 낳은 기러기 아빠도 대부분 386이다. 강남 사교육을 일으킨 장본인도 3..

꼭 바로잡아야 할 마창노련史

‘내 사랑 마창노련’을 두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꽤 오래 됩니다. 1999년에 책이 나왔고, 제 결심은 아마 그보다 한 반 년 뒤 즈음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지금은 화가 다 가라앉았습니다. ‘내 사랑 마창노련’은 1987년 12월 14일 창립해 1995년 12월 16일 해산한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8년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발간 주체는 마창노련사 발간위원회, 발간인은 해산 당시 의장이었던 이승필 씨, 글쓴이는 소설가 김하경 씨로 돼 있습니다. 드물게 포폄이 없는 기록 제가 화가 났던 까닭은, ‘내 사랑 마창노련’(하) 441쪽과 442쪽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마창노련 역사는 앞뒤가 뒤바뀌었고 본말이 뒤집어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교훈 때문에 인생 조진 사람

교훈(校訓)이라 하면 학교가 내세우는 교육하는 목표나 이념쯤이 될 것입니다. 이 교훈 때문에 쫄딱 신세를 조진 사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다닌 고등학교의 교훈은 ‘언제나 어디서나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살자.’였습니다. 이 고등학교는 이 교훈을 학교 4층 높이 건물 벽에다 ‘양심 정의 사랑’을 적어 놓았습니다. 교실마다에는, 이 교훈 전체 문장을 붓글씨로 쓴 액자를 잘 보이는 앞 쪽에 걸어놓았습니다. 이 사람이 다닌 대학교의 교훈은 ‘자유 정의 진리’였습니다. 이 ‘자유 정의 진리’는 학교에서 발행하는 온갖 물건들에 다 적혀 있었습니다. 이 ‘자유 정의 진리’는, 학교 잘 보이는 한가운데에 놓인 빗돌에도 새겨져 있어서 오가는 이들이 보지 않으려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학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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