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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2014년 해딴에의 명리/망월 도랑살리기

2014년 경남도민일보 자회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는 단독으로 또는 지역환경단체와 함께 시골 마을 도랑살리기를 했습니다. 창녕군 계성면 명리마을 도랑살리기는 해딴에 혼자서 했고요, 함양군 병곡면 망월마을 도랑살리기는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이사장 양운진)랑 같이 했습니다. 이런 도랑살리기는 2014년 12월까지 마무리가 됐고, 이제는 그에 따른 비용 정산까지 끝이 났습니다. 물론 저희가 벌인 이런 도랑살리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잘 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가 군데군데에서 허점도 보이고 못난 구석도 보일 것입니다. 그런 비판과 지적은 아무래도 모두 해딴에 몫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명리와 망월 마을에서 도랑살리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저희와 더불어 막 시작했을 따름입..

돈 뿌려도 안 걸린다던 조합장 선거 실제는?

1. 금품 뿌리는 조합장 선거 3월 11일 치러지는 제1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경남에서 금품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잇달아 적발·검거되고 있습니다. 금품 준 사람도 처벌받고 금품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주 한 농협에서 조합장 후보로 출마한 현직 조합장이 조합원 두 사람한테 고무줄로 묶은 5만원짜리 넉 장 20만원씩을 조합원 두 사람한테 건넸다가 바로 붙잡혔습니다.(경남도민일보 3월 5일치 5면) 또 창원원예농협 조합장 선거에서는 한 조합장 후보가 함안에서 농사짓는 조합원 두 사람한테는 50만원씩을, 마찬가지 함안에서 농사짓는 또다른 둘한테는 30만원을 줬거나 주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8일에는 함안 한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어떤 후보의 부탁을 받고 조합원..

3화. 89세 할머니가 매년 수백 통의 편지를 쓰는 까닭

장형숙 할머니가 보낸 편지 책 (도서출판 피플파워)이 발간된 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 낯선 이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김주완 씨. 고맙습니다. 기록한 책 보고 너무 고마워서 몇 자 적는 27년생 할머니입니다. 썩은 세상에도 풍운아가 아니라 복된 人生(인생)이 보석처럼 우리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고 신통력까지 준 것 같습니다.구절구절 대화하신 內容(내용)으로 代理(대리) 만족을 느끼면서 감격하였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일을 하셨지만 좋은 기록 많이 해 주십시오.주소 몰라서 출판사로 보냅니다. 042-000-0000010-0000-0000 수전증이 있어서 亂筆(난필)입니다. 1. 23 대전에서 장형숙 할머니" 27년생이라면 한국 나이로 89세의 할머니였다. 편지는 흰 복사용지에 검정 볼펜..

"노후원전 폐쇄하라" 경남지역 교수 선언

반가운 메일이 왔습니다. 경남지역 대학 교수들이 월성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보도자료인데요.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4주기를 맞아 발표한 선언문입니다. 인제대 교수들이 제일 많네요. 제 모교인 국립 경상대 교수들은 의외로 적군요. 역시 국립인 부산대도 그렇고요. 왜 그럴까요? 어쨌든 이 선언이 계기가 되어 우리 지역, 우리 사회에 탈핵 분위기가 확산되길 빌어봅니다. 제가 과문해선지는 모르지만, 우리 지역 대학교수들이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는 선언문을 낸 것은 이게 처음이지 싶은데요. 기록으로 남겨야할 선언문이라 여기 전문과 참여 교수 명단을 올려둡니다. 마침 김해창 교수 등이 번역한 《안전 신화의 붕괴》-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왜 일어났나-라는 책도 오늘 도착했군요. 책 고맙게..

2화. 채현국이 강연장에서 고함을 지른 까닭

진주에서 열린 채현국 강연·대담 채현국 어른은 돈, 권력, 명예를 인간이 빠질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중독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유명해지는 것도 경계한다. 내가 지역신문 기자의 의무감 또는 부채의식으로 그의 삶을 기록하겠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나를 훌륭하다든지 근사하다든지 그런 식으로 쓰지 마시오. 괜찮은 어른이란 말도 쓰지 마시오. 만일 그런 식으로 미화하거나 하면 (책을) ‘불 싸지르라’고 할 거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겨우 비틀거리면서, 어떤 술 취한 놈보다 더 딱한 짓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명리에 눈멀어 꺼떡거리고 다니는 저런 꼬라지를…. 그런 대열에 나를 세우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다. 나 또한 이 어른을 실제 모습 이상으로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가 얼마나 그런 ..

1화. "노인 봐주지 마라" 팔순 채현국의 일침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지난해 인터뷰와 최근 출간된 을 통해 ‘시대의 어른’으로 떠오른 채현국(1935~) 효암학원 이사장의 일갈은 앞뒤 막힌 노인 세대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들을 욕하는 젊은 세대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똑같은 꼴이 된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그는 말한다.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고,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 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하면 저렇게 된다는 거지.” 이처럼 백발의 채현국은 젊은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그의 80년 인생을 통해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렇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잘 ..

채현국 어른 '인문학열풍'에 대해 물었더니...

26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채현국 어른을 모시고 '세대간의 대화'라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 질문자로 나온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물었다. "책 안에서 이사장님은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러니까 인문학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 하나의 돈벌이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사장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많은 책을 읽으시고 공부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현재 저희같은 젊은 세대가 학문을 할 때 과연 어떤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채현국 어른은 탄식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게 고등학생의 질문입니다. 뽑아오기를 우등생을 뽑아왔거든요. 우등생이 뭡니까? 고정관념과..

황석영이 방배추 앞에선 맥을 못추는 까닭

방배추(본명 방동규), 백기완, 황석영을 일컬어 '조선 3대 구라'라고들 한다. 이른바 방구라, 백구라, 황구라다. 유홍준 교수가 지난 2011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황석영도 방배추 앞에선 입을 닫는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그 배경은 뭘까. 방배추 어른이 쓴 는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석영이 제압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황석영한테 ‘야, 너 2개월 노가다 생활을 하고 노동을 안다고 해?’ 하고 물으면 바로 꼬리를 내려버려. 노동이란 내 몸을 굴리지 않으면 바로 굶어죽을 수도 있는, 그렇게 절박하고 가혹한 거야. 먹물들이 몇 개월을 해본 다음에 ‘아, 그거!’ 하는 것과는 너무도 달라. 그건 관념에 불과한 거야. 하긴 그런 경험을 해봤다면서 바닥민중을 잘 안다고 말하고, 노동문제연구소..

채현국 장형숙 좋은 어른을 만나는 즐거움

저는 요즘 어른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월간 에도 연재된 바 있는 채현국 어른을 만난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거침없이 살아온 그 어른의 인생을 기록한 책이 발간되었고, 어른의 죽비 같은 말씀에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 어른의 말씀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포털 다음에서 뉴스펀딩 기사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도 지금까지 2만 명이 넘는 분들이 '공감'을 눌러주셨고, 5000여 명이 '공유'를 해주셨습니다. 펀딩으로 모인 금액도 70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다음 뉴스펀딩]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팔순 노인의 말에 환호하는 걸까요. 아마도 우리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번호에 실리는 장형숙 ..

내가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까닭

나는 차(車)가 없다. 운전면허증도 없다. 앞으로도 면허를 따거나 차를 살 생각은 없다. 그동안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가 왜 차를 사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번 기회에 그 이유를 밝히자면 이렇다. 뭐 환경문제를 생각해서라든지 그런 거창한 건 아니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였다. 1990년 마산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발령받고 나니 차를 사라는 선배들의 권유가 있었다. 실제 그때 취재기자들은 모두 차를 몰고 다녔다. 당시 내 월급은 50만~60만 원 정도였다. 그 월급으로 어떻게 차를 사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취방 월세만 10만 원, 겨울에 난방 겸 취사용 LP가스 네 통 가격이 10만 원인데…. 게다가 밥도 사먹고 술도 마시고 옷도 사 입고 친구도 만나고, 가끔 부모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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