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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1803

박노자 강의를 듣다 보니 조선일보가 생각났다

1. 박노자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경남도민일보가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그해 12월 29일 저녁 7시 ‘한국 식민지 유산의 특징과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특강을 마련했는데 그때 내가 연락과 섭외를 맡았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간절히 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내 기억으로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처가가 마산이니까 한국 들어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이 왔고 고맙게도 그게 그대로 지켜졌다. 그 후에도 2007년인가에 한 번 더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특강을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어쨌든 예전 강의에서 나는 정말 얘기를 똑 부러지게 하는구나 하고 느꼈었다. 논증에는 허술함이 없었고 예시는 구체적이었으며 결론에는 비..

창원공단의 기억 - 뿌리뽑힌 사람들, 뿌리내린 사람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 언론사로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공공의 기억입니다." ---벌써 남겼어야 할 공공의 기억 ---창원공단 50년 만에 기록하다 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내년이면 만 50년이 된다. 창원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에 이르기까지 숱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펼쳤다. 국가 시책 차원에서 만들어진 창원공단은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원(原) 창원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남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와서 크고작은 기업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비춰볼 결심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저출생 극복과 출산 장려를 위한 정책을 펼쳐 왔다. 쏟아부은 예산만 2006년부터 2022년까지 280조 원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은 갈수록 텅텅 비고 이제는 대학 폐교도 모자라 군부대까지 해체·통합되고 있다. 30년 동안 애써왔지만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인 0.78명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흐름 가운데 하나가 저출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라 자체가 소멸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민밖에 없다.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태어나지 않으면, 나라 바깥에서 구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정치..

빌어볼 결심

40년 전 1982년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서울은 신세계였다. 나는 어리숙하고 가난한 촌놈이었다. 속에 가득한 열등감을 숨기려고 겉으로는 오만을 떨었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남루함과 초라함을 가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문학 동아리에는 부끄러워서 가입하지 못했다. 동아리가 두 개 있었는데 얄팍한 실력이 들통날까 봐 얼쩡거리기만 하고 말았다. 반면 같은 불문학과 동기 성우제는 잘 나가는 문학회의 멤버였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우제는 적게 마시는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는 참 잘 지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피동적이었다. 유신 교육이 결정적이었다. 그때 초·중·고는 폭력이 의사소통의 수단이었고 멸시가 교육의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선생과 선배는 말 그대로 ‘하느님과 ..

혼내고 야단치면 잘못된 행동이 고쳐질까?

이재명 지음 는 출판 전 펀딩에 참여하여 받은 책이다. ‘산골 청소년과 놀며 배우는 배추샘’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청소년이 읽는 책이라기 보다는 청소년 관련 기관이나 단체 관계자들, 학부모,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도 이번 학기 대학에서 강의 하나를 맡은 터라 청년 대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이 책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저자는 배제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혼내고 야단치면 잘못된 행동이 고쳐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청소년이 계속 수업 분위기를 흐렸다. 뚱한 표정으로 참여하기 싫다는 느낌을 강하게 드러냈다. 다른 아이들이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생각해낸 저자는 뚱한 표정의 청소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방해받지 않도록, ..

경주, 그 친구

경주, 라고 하면 나는 아득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눈물 어리게 좋아했던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용명1리. 나는 문학소년이었으나 간이 작아서 문학반에 들지는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문학반 ‘태동기’의 당당한 멤버였고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태동기에서 시를 잘 쓰는 친구로 우뚝 꼽히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우리 반은 참 별났다. 모두 50명 남짓이었는데 화가,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가수 지망생이 숱하게 많았다. 현직 건달 또는 건달 지망생 대여섯까지 더하면 스무 명가량이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웃는 모습이 기막히게 멋졌다. 웃으면 자그마한 눈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꼬리가 처지면서 얇은 입..

할부지 계시는 데는 한장딴일까 두장딴일까

시골 집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길이 제법 멀었다. 아부지는 8키로라 하셨고 할부지는 20리라 하셨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렸는데 읍내 중학교 다니는 형들은 새벽밥 얻어먹고 6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었다. 할부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셨다. 어둑어둑한 으스름에 사랑방에서 나는 “에헴!” 소리는 집안을 깨우는 신호였다. 식구들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산함을 어린 꼬맹이였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할부지 옆자리 이불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게으름을 부렸고 할부지는 사랑채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셨다. 콩깍지랑 볏짚이 삶아지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할부지는 소마구의 구시를 김이 펄펄 나는 소죽으로 가득 채우셨다. 아침 세수는 소죽 끓인 솥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물로 하셨다. 아침밥 먹는 자리는 안채 대청마루였다...

<줬으면 그만이지>…김장하 바이러스와 나비 한 마리

여기 바이러스가 하나 있다. 아는 이들은 김장하 바이러스라고들 한다. 발원지는 서울에서 1000리 떨어진 한반도 동남쪽 경상남도의 중소도시 진주라는 곳이다. 이 바이러스의 첫 번째 특징은 자기가 가진 바를 한사코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다. 증상이 가장 먼저 발현한 김장하 선생의 삶을 보면 그것은 이렇다. 태어날 때는 그럭저럭 먹고사는 집안이었으나 1950년대 6.25전쟁을 비롯한 시대의 격랑에 가세가 기울면서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남의 한약방에서 점원 노릇을 해야 했다. 힘든 조건에도 틈틈이 주경야독한 실력으로 10대 후반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하고 이를 바탕으로 20대부터 한약사로 성공해 대단한 부를 일구었다. 이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으면 그 성과를 자기 앞으로 쌓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도 그는 ..

어른 김장하 선생 깜짝 생일 축하 행사 계획

2019년 1월 16일 김장하 선생의 깜짝 생신잔치를 열어드린 진주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이 워낙 이런 걸 싫어하시는지라 철저히 비밀리에 계획되고 추진되었다. 다행히 계획은 사전에 노출되지 않았고, 김장하 선생은 영문을 모른 채 "좋은 공연이 있다"는 아들의 안내로 경남과기대(현 경상국립대) 100주년 기념관을 찾았다. 당시 계획서를 보면 얼마나 세밀하고 치밀하게 행사가 준비되었는지 알 수 있다. 기록으로 올려둔다. *해당 기사 https://100in.tistory.com/3490 진주사람들이 '어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

강제윤의 '입에 좋은 거 말고 몸에 좋은 거 먹어라'를 읽고

페이스북에서 스스로를 '나그네'라 칭하는 강제윤 시인의 (어른의 시간)를 읽었다. '말기 암 어머니의 인생 레시피'라는 부제에서 보듯 저자의 3년에 걸친 어머니 간병기를 책으로 엮었다. 아들이 본 ‘어머니의 재발견’이다. 암 환자의 간병기라 침울하거나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글이 워낙 간결한데다, 글 한 편의 길이가 많아야 서너 페이지, 대개는 두 페이지 남짓이어서 부담없이 읽힌다. 또한 저자의 마음이 참 맑고 투명하며 따뜻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맑고 따뜻해진다. -병석에 누운 후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무 일도 못 하고 누워만 있는 당신이 가치 없는 삶을 살고 계시다 한탄하셨다. 그래서 당신의 살아 있음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알려드리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당신의 말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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