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법 무시하는 판사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김훤주 2009. 7. 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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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법치(法治) 국가인가요? 이에 대한 정직한 대답은 아마 "개 풀 뜯는 소리 하지 마라"가 될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共和)국일까요? 이 대답도 정직하게 하면 "개 풀 뜯는 소리 하지 마라"가 될 것입니다.
 

적어도, 근대 국가에서 '민주'와 '공화국'은, 법률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민'을 '주인'으로 삼으려면(민주), 그 엄청나게 많은 민을 차별 없이 규율하는 법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 함께 화합하려면(공화) 무엇이 화합인지 여부를 가르는 기준과 화합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법률로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근대 국가들은 법치주의를 뿌리와 줄기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처럼 '법치주의'가 '개 풀 뜯는 소리'로 여겨지는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닙니다. 따라서, 민주공화국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도 민주공화국도 아니다
 

법을 어기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고 처벌을 받는 경우는 빼고, 법을 어기면 '어김없이' 불이익을 받고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법치국가가 맞습니다. 그러나 진짜 법치국가라면 불이익을 받거나 처벌을 받는 과정까지 '법대로',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이것은 아주 중요한 규정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때가 많은 것이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현실입니다.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의 입에서 나오는 '법치주의'는 대부분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다수 대중에 대한 협박입니다. 집회·시위·파업을 하는 과정(준비까지 포함해서)에서 개털만큼이라도 불법이 있으면, 합법이든 불법이든 가리지 않고 갖은 수단과 방법(이를테면 방패든 곤봉이든 군홧발이든)을 동원해 깨부수겠다는 얘기입지요. '지배 받는 집단에 대한' 법치만 있지, '지배하는 집단에 대한' 법치는없습니다.

알고보면, 참 무서운 현실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그래도 이런 무서운 현실이, 법정에는 없는 줄로 '착각'합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재판하는 법관들이 어거지로나마 판결을 하려면 어떻게든 법률을 바탕삼아 법률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난날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교수 김명호는 1995년 1월 입시 문제 잘못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했다가 부교수로 승진하는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듬해 3월에는 조교수 재임용에서도 '구체적인 까닭 없이' 떨어졌습니다.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김명호는 '법률에 따라' 잇달아 패배했습니다.
 

패배의 원인은 재임용에 대한 대법원 판례였습니다. 1977년 9월 28일, 대법원 판결은 "부적격하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한 그 재임명 내지는 재임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9일에는 대법원이 판례를 바꿔 "재임용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 재임용 거부 결정 등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당연 퇴직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법이었지요.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이런 판례 변경은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 합의체의 판결로써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 법원은 김명호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불법으로 변경된' 판례를 바탕삼아 '교원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학교 재단'에게 안겨줬던 것입니다.

불법을 합리화해주는 대한민국 법원

판례는 2004년 4월 22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다시 바뀝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교육자로서 기본 자질'이라는, 목에 걸면 목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가 나타났습니다. 출제 잘못 문제 제기에 대한 보복으로 재단이 갖은 이유를 갖다 붙여 징계하고 탈락시켰음이 분명한데도. 당시 법원은, 교육부 징계재심에서 무혐의 처분된 것들조차 '교육자 자질 부족'의 근거로 삼는, '법관 자질 부족'을 아낌없이 드러냈습니다.

2007년 1월 15일 김명호의 '석궁 사건'은 이렇게 발단이 됐습니다. 판결은 그보다 앞서 있었으나 재판부는 김명호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이날 김명호는 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마친 다음 법원에 들어가 컴퓨터 검색을 통해 자기가 재판에서 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답니다.

2006년 9월 26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을 찾았다가 기념촬영.


그리고 그날 저녁 6시 30분, 판결을 내린 재판장인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가 올 때까지, 박홍우가 사는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습지요. 불쌍하지 않습니까?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올 박홍우를 미리 가서 기다린다는, 기다리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을 이 사람이. 얼마나 처량했을까요.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김명호는 화살이 매겨진 석궁을 들고 "항소를 기각한 까닭이 뭐냐?"고 따졌습니다. 조금 있다 화살이 발사됐습니다. 김명호는 아파트 경비와 박홍우 운전기사에게 꼼짝 못하게 붙잡힌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넘어갔습니다. '법치주의'가 지켜지지 않은 데 항의하러 갔다가, '법치주의'에 따라 체포된, 기막힌 풍경이지요.

법원은, 시쳇말로 '꼴값'을 떨었습니다. 무죄 추정 원칙이, 법정에서라면 어떻게든 지켜지는 그런 원칙이 무너졌습니다. 김명호는 재판을 받기 이전에 이미 살인범으로 재단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재판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 집에 찾아가 흉기로 테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장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했습니다. 법원장들은 회의를 하고 "법치주의가 흔들리면 국가 질서도 혼란에 빠진다"는 담화를 내놓았습니다. 그밖에도 '꼴값'은 많았지만, 여론은 반대로 흘렀습니다. 대법원과 대법원장과 전국 각지 법원장들의 '법치주의'는 "똥 싸고 자빠졌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지요.

<부러진 화살>은 "법을 다룬다는 이유로 최고의 존경을 강요하는 국가의 권력 조직 안에서 나타나는 기묘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글쓴이 서형(瑞馨)은 "(김명호처럼 정직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 뒤 10년을 아무런 대가 없이 인간적 모멸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과연 정직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을까", 묻습니다.

"개인이 정직할 수 있는 사회, (존경이나 우대는 못 받는다 해도) 정직해도 최소한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에게 정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서형은 자답합니다. 그런 다음 "법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사학 집단의 조직 논리"를 정당화했습니다. 김명호는 그래서 "법에 호소하는 대신 잘못된 법과 법집행에 대항"했습니다. 법정에서 일어난 풍경입니다.
피고인이 된 김명호가 신태길 같은 판사나 신동국 같은 검사를 향해 "법을 지켜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리고 재판장을 맡은 신태길은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인 부장판사 박홍우에 대한 변호사 박훈의 변호인 신문을 시도 때도 없이 가로막습니다. 왜냐고요?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어떤 검사는 피고인 김명호는 대놓고 경멸하면서도 증인으로 나온 판사 박홍우에게는 깍듯하게 대하지요. "법률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얘기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된 지 오래라고 해야겠지요.

이렇습니다. "10분 정도 휴정이 이뤄졌는데…… 옆에는 마산에서 온 '사법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손이 불편한 듯 자꾸 떨었는데, 움직이기 힘든 손가락으로 비어 있는 법관석과 검사석을 가리키며 '저건…… 국가의 좀벌레들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진짜 비극은, (진짜 좀벌레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좀벌레들이 자기가 좀벌레인 줄을 자각(自覺)할 줄 모른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재판이 또 있을까?

죄형법정주의나 증거재판주의가 이렇게 무시된 재판도 사실은 드물 것 같습니다. 재판장이 증거로 채택한 석궁은 이미 원형이 변경된 상태였거든요. 부장판사 박홍우의 배에 상처를 내게 만들었다는 '부러진 화살'은 증거로 제출되지도 않았답니다. 양복 조끼와 내복에는 피가 묻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 있었던 와이셔츠에는 피가 없었습니다.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 이대로 되고 있다는 이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증인 박홍우의 진술은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리고 화살이 발사됐다고 하는 거리(계단 서너 개 정도)에서 실험을 해 봤더니 두께 2cm인 합판을 꿰뚫고도 모자라 뒤쪽으로 15cm나 튀어나갔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경찰은 "불완전 장착 상태에서 쐈기 때문에 2cm 정도만 상처가 났다"고 바꿨습니다만, 석궁 전문가 고영환은 "제대로 장착하지 않으면 화살이 흘러내린다. 경찰이 소설을 쓴 것이다"고 했습니다.
 

다칠 리가 없다는 얘기였지요. 그러나 이에 대한 김명호와 변호사 박훈의 항의와 증거·증인 채택 요구는 무시됐고, 유죄 판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법원 경비원이 대신 고소한 법관들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명호는 자기가 밝힌 내용이 허위가 아니고, 법관은 공인이므로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김명호 말이 틀렸다 해도, 명예훼손은 이른바 '반의사불벌죄', '피해자의 의사와 반할 때는 처벌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고소를 할 경우는 아예 검찰·경찰은 아예 접수조차 않습니다. 그런데도 김명호에 대해서는 버젓이 기소가 됐습니다.

그래서 김명호는 검사에게 "제3자가 고소한 명예훼손 사건이 기소된 사례가 있느냐"고 되풀이 따졌습니다. 검사는 얼굴만 붉어진 채 제대로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판사에게는 "당사자를 증인으로 불러 처벌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자"고 요구했지만 재판장은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부러진 화살'. 재판부는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김명호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라 단정했습니다. 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없"다면서 무시했습니다. 그런 따위 증거는 없어도 유죄가 문제없이 성립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상식에 따라 생각하면,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에게 불리한 증거가 아니라 '유리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화살이 사람에게 꽂혔다면 화살이 부러졌을 리가 없고, 화살이 부러졌다면 사람에게 꽂혔을 수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마지막입니다. 김명호의 성격을 두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격이 원만하지 못하다고 해서 불이익을 사회가 강요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여기 이 대목, 검찰에서 작성했을 김명호의 피의자 신문 조서(3회) 표현이 아주 생생합니다. "법을 고의로 무시하는 판사들처럼 무서운 범죄자는 없습니다. 그들의 판결문은 다용도용 흉기입니다."
 
이쯤 되면 법원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의인(義人)은 있는 법이지요. 그런 법관이, 적어도 한 명은, 부산·경남 일대에 서식(棲息)한다는 사실이 확인돼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그이에게, 제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김훤주

부러진 화살 - 10점
서형 지음/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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