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평생 한나라당만 찍던 할매들이 변한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09. 6. 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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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관과 주민들이 싸우면 어느쪽이 이길까? 다른 나라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백전백패 주민들 쪽이 진다. 특히 지역발전을 앞세운 개발사업으로 피해를 보게 된 동네의 주민들은 그야말로 대여섯 명의 거대한 골리앗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 소년 다윗의 신세다.

처음부터 한 편이 되어 있는 기업체와 행정기관은 기본이고, 광고주를 무시할 수 없는 언론사, 법으로 죄고 들어오는 검·경찰과 상공인단체까지 모두들 감당하기 버거운 거대권력들이다.

기자들이 이런 싸움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이면에는 광고주가 무서운 탓도 있지만, 자신들의 어설픈 경험에 따른 편견도 깔려있다. '주민들이 저렇게 반대 하는 배경엔 결국 보상금을 많이 타내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의 이런 편견에는 일방적 강자인 행정권력에 밀려 막다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보상금이라도 받고 떠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피눈물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냉혹함이 숨어 있다.


지금 STX라는 대기업의 조선기자재 공장이 마을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고 있는 경남 마산의 수정만 주민들이 딱 그런 신세다.

게다가 이들은 공장 유치로 손해볼 일이 없는 대다수 마산시민들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다. 일부 시민단체가 돕고 있긴 하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신호만 떨어지면 읍·면·동별로 일사불란하게 펼침막을 내걸어 수정마을 주민들을 '지역발전 방해세력'으로 몰아부치는 관변단체들과는 상대도 안 된다.

사실 다수의 마산시민들이 '마산 전체의 발전을 위해 수정마을 주민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논리에는 무시무시한 폭력과 파시즘이 숨어 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이런 논리는 '다수의 작은 이익'을 위해 '소수의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물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약소국을 총칼로 지배한 일본의 제국주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또한 지금 당장 미국의 군수산업과 강대국들의 불황 타개를 위해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겠다면 동의할 수 있겠는가.

◇우리 그냥 이대로 살게 해줘요 = 수정마을 사태는 마산시라는 지방자치단체의 명백히 잘못된 행정과 STX라는 기업의 불법 조업 행위로부터 비롯됐다.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겠다며 멀쩡한 바다를 매립한 마산시는 택지개발이 이뤄지지 않자 공장용지로 무리하게 바꾸려 들었고, STX는 매립목적 변경도 안 된 상태에서 불법 조업을 해온 사실이 2007년 11월 들통났던 것이다.

수정마을 주민들이 천막농성을 하면서 집회에서 부를 개사곡을 연습하고 있다.


그로부터 1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지만 마산시와 STX는 지금도 여전히 '갑'이자 '강자'로서 힘없는 주민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 고향, 내 삶터를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절규는 님비(NIMBY)로 매도됐고, 십 수 명의 주민들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경찰서와 법원에 불려다니며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국토해양부는 매립목적 변경을 조건부 승인했고, 경상남도는 지방산업단지 계획을 역시 조건부로 승인했다. 주민들은 지난 5일부터 마을을 떠나 마산시내에 있는 천주교 마산교구청 마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27일 저녁 기자가 찾아간 천막 앞에는 농성 23일째임을 알리는 표식이 붙어 있었고, 세 명의 수녀와 할머니, 아주머니 등 20여 명이 천막 안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기자도 슬쩍 끼워들어 밥을 얻어먹었다. 열무 물김치와 열무김치, 고춧잎 무침, 깻잎 등 반찬이 하나같이 맛깔스러웠지만 특히 수정만에서 어민들이 직접 잡았다는 여러 종의 잡어로 조리한 생선조림이 정말 별미였다. 푸성귀 반찬도 모두 직접 재배한 것이란다.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오면 그런 생선과 채소는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맨 안쪽이 트라피스트 수녀원 요세파 원장이다.


함께 농성을 하고 있던 트라피스트 수녀원 장혜경(요세파) 원장이 말했다.

"제가 여기서 20여 년을 살아보니까 60년대인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 속속들이 잘 알아요. 이 동네 80대 되시는 그런 분들은 이곳을 떠나는 것 자체가 죽음이예요. 모두들 텃밭 일구고, 홍합 까고 해서 생활이 다 해결되는데, 한 번은 할머니 한 분이 열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마산의 시장에 팔러 나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 다 팔면 얼마 되느냐고 여쭸더니 6000원이래요. 그거 팔아 하루에 1000원 쓰고 5000원은 저금한대요. 그런데 이런 마을이니까 가능한 거예요. 그 때가 한참 1000만 원씩 주면서 주민들을 회유할 땐데, 왜 1000만 원 안받았느냐고 물었더니 '그 돈이 내 돈잉기요. 회사 돈이지'라고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씀 하시는 거예요."

◇"용산 참사나, 4대강이나 수정만이나 다 똑같아" = "공무원도 거짓말을 한다는 걸 나는 이번에 알았어."

최영임(76) 할머니의 말이었다. 할머니는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를 지지하는 마음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지만,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단다. 물론 앞선 지방선거에서도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황철곤 마산시장을 찍었다.

최영임 할머니는 "이제 한나라당도, 이명박도, 김태호도, 황철곤이도 모두 싫다"고 말했다.


내년 선거 땐 어떻게 할 거냐고 짓굳게 물어봤다.

"아이구, 이젠 한나라당도 싫고 김태호도, 황철곤이도 싫어. 이명박도 다 똑같애. 서울 용산에서 사람들 죽은 거나 4대 강 판다는 거, 그것도 조선소 밀어부치는 거나 똑 같은 거지. 그 좋은 자연을 다 훼손하고 파손하고…."

최 할머니는 지금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26평 빌라를 시세보다 높게 쳐서 1억 원에 매입해주고, 이주비 2000만 원을 준다고 꼬드길 때도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그 말을 믿고 찬성했던 사람들도 후회하는 사람이 많단다. 실제로 그렇게 매입하고 보상해줄 가능성도 없고, 설사 그렇게 준다고 해도 떠날 마음이 없다고 했다.

대전에 친정을 둔 최 할머니는 남편(작고)을 따라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산 지 51년이 됐다. 그동안 수정마을을 비롯한 구산면 사람들 덕분에 살아왔다고 믿고 있다. 젊은 시절 식당과 다방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살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곳을 왜 떠나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판국 공동위원장은 "기업체가 할 일을 공무원들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산시의 횡포에 항의하기 위해 삭발했다.


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판국(53) 씨는 "마산시내에 아파트 한 채쯤 살 수 있는 돈을 준다고 해도 떠날 수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집만 갖고 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상을 한다 해도 STX가 해줘야 할 일인데, 기업이 해야 할 일을 마산시 공무원들이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농성장에서 만난 수녀와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들은 한결같이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호 경남도지사, 황철곤 마산시장을 한통속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황철곤 시장에게는 이를 갈고 있었다. 세상 끝까지 쫓아가 앙갚음을 해주겠다고도 했다. 황 시장 때문에 도지사와 대통령에게까지 반대파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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