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의미없는 것

고양이 늘어진 낮잠 보고 떠오른 시(詩)

김훤주 2009. 6. 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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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대낮에 무청을 말리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고양이가 보였습니다. 나무 아래 그늘에서 그야말로 무심하게 늘어져 자고 있었습니다. 뭐 주인 없는 도둑고양이쯤 되겠지요.

저는 한편 부럽고 한편 샘이 나서 3층 우리 집에서 큰 소리로 불러봤습니다. "어이, 고양이야!" 깨지 않았습니다. 한 번 더 불렀겠지요. "야 ,고양이야. 고개 들어봐!"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개를 들기는커녕 조그마한 귀조차 전혀 쫑긋거리지 않았습니다. 무사태평이었습니다. 무청을 널다 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제가 고양이에게 동화(同化)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느긋함, 저 여유로움, 거기에서 느껴지는 고양이 삶의 아주 느릿느릿한, 그래서 아예 흐르지도 않는 듯한 흐름. 물론 고양이인들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고달프지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만, 지켜보는 제게는 그냥 느긋함과 느릿함만 들어왔습니다.


그러는데, 문득 시인 정일근이 쓴 '패밀리'가 떠올랐습니다. 동·식물을 분류할 때 쓰는 과(科)를 영어로 패밀리(family)라 한답니다. 시인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1연과 2연은 이렇습니다.

"조심해! 자연에도 패밀리가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나 러시아 마피아와 같은 패밀리가 있다. 자연의 패밀리에는 사람의 족보로 치자면 같은 항렬자 쓰는 형제나 사촌쯤 되는, 그러나 사람의 족보와는 다른 자연의 인드라망이 있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와 밀림의 왕인 사자는 고양이의 패밀리다. 고양이가 형이고 호랑이와 사자는 아우다. 은현리에 와서 도둑고양이에게 야단을 쳐보라. 달아나기는커녕 느릿느릿 왕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며 네 이놈! 하는 눈빛으로 빤히 노려보기까지 하는, 당신을 우습게 여기는 배경에는 도둑고양이에게 제 아우가 둘이나 왕인 패밀리의 '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개와 소나무와 벼와 국화와 백합 따위 패밀리를 읊조리다가 마지막 7연에서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어찌 보면 좀 상투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시라는 물건도 이리 성찰(省察)에 쓰이지 않으면 별 보람이 없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지구에 함께 살고 있는 패밀리 중에서 부모가 자식을 쓰레기처럼 내다 버리는, 자식이 부모를 동네북처럼 두들겨 패는 패밀리는 사람 패밀리뿐이다. 패밀리끼리 싸우고 고소 고발하고 총질하며 전쟁을 하는 패밀리는, 이름도 고상한 호모사피엔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그 패밀리뿐이다. 문자를 가지고 가끔 시를 쓰고 읽는다는."


생각하는 방향을 절반쯤 비틀어본, 이를테면 발상의 전환이 딱 웃음을 머금을만치 이뤄진 작품입니다. 이런 시를 떠올리고, 늘어지게 자는 고양이를 내다보는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무청은 아주 잘 말랐고, 날씨 또한 꽤 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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