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87년 6월항쟁때 기득권층은 뭘 했을까

기록하는 사람 2009. 6. 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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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13 호헌조치에서부터 6·29 대국민 항복선언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적인 분노가 불타오르던 시기, 당시 기득권 세력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전두환의 4·13 호헌 발표가 있던 그날 유일한 지역신문이었던 < 경남신문>의 1면은 '현행헌법으로 내년 정부 이양' '고뇌에 찬 역사적 결단' 등 기사로 도배됐고, 사회면 머리기사도 '안보·안정 다지는 불가피한 조치' 였다. 그 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의 보도도 정권옹호 일색이었다.

항쟁 불타오르는데 꽃씨 뿌리기 행사?

15일자 사회면은 '개헌논의 빙자 불법행동 엄단, 김 법무 지시 전국 공안검사 비상근무체제 돌입, 중범자엔 법정최고형 구형'이란 기사가 나왔는데, 그 옆에는 '봄맞이 대청소'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실려 있다. 비상한 시국에 비해 참으로 한가롭게 여겨지는 풍경이었다.

17일 사회면에 보도된 '꽃씨 뿌리기 시범행사'도 그랬다. 당시 경남도지사였던 조익래씨를 비롯한 도단위 기관장과 도청·창원시청 직원 550여명이 창원시청과 중앙로터리변에서 백일홍과 맨드라미·봉선화 등 꽃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았다는 기사였다.

1987년 6월 10일 경남 마산 어린교 오거리(현 경남도민일보 앞)를 가득 메운 시위 군중.


22일에는 '급진좌경 의식화 오염방지 주력'이라는 무시무시한 기사 옆에 <경남신문> 박정명 사장이 진해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회장 이상인)로부터 진해군항제 행사에 대한 협조와 성원에 감사하는 표시로 감사패를 받았다는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다.

반상회 열어 호헌조치 정당화 안간힘

27일에는 전국적으로 일제히 반상회가 열렸는데, '우리마을 반상회'라는 명패와 '4·13담화 배경·의미 설명'이라는 제목으로 이날 도내에서 열린 반상회의 내용들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시장·군수와 간부들은 물론 경남도지사와 부지사, 실·국·과장들까지 총출동, 4·13호헌조치가 나라 안정을 위한 최선의 결단이었다고 주민들에게 강변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 정권이 전국의 행정력을 총동원, 국민적인 항쟁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날 조익래 도지사는 창원시 내동사무소에서 열린 반상회에 참석했는데, "4·13 특별담화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조익래 지사"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도 실려 있다.

또한 이날 반상회에서는 "28일 하오 7시를 기해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쥐잡기운동에 다함께 참여하자'는 내용이 공지사항으로 전달됐다"고 전하고 있어 쓴웃음을 짓게 한다.
 
5월 1일에는 5일간의 일정으로 마산시민의 날 축제가 개막됐고, 법의 날을 맞아 마산시근로청소년복지회관 강당에서 도지사와 마산지법원장·마산지검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법정신 함양에 앞장서온 7명에게 표창을 수여했다.

총장들, 교수 시국선언 탄압 혈안

5월들어 민주화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적 항거가 더욱 격렬해지는데, 7일 오후 8시에는 가톨릭 마산교구 소속 신부와 수녀·신자 등 1000여명이 시국관련 특별미사를 갖고 한국은행 마산지점까지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음날인 8일에는 경남대 교수 35명이 교수식당에 모여 호헌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데 이어 9일에는 울산대 교수 35명, 11일 경상대 교수 38명, 30일 창원대 교수 13명이 연달아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이런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전국 4년제 대학 총·학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9일 "최근 일부 대학 교직자들의 시국에 관한 집단성명 행위는 교육자로서의 본래적 직분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학원의 면학기풍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 "엄격하고 단호한 조치로 학원과 교권을 수호해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양산이 낳은 자랑스런(?) 서울대 총장 박봉식씨도 이에 앞서 담화문을 내고 "우리대학의 일부 교수들이 현금의 정치문제에 대한 견해를 집단적으로 표명한 것은 유감"이라면서 "그것이 비록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정국의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인들 권력 아부성 결의문 채택

역사의 전환기마다 권력에 빌붙기 바빴던 문인들도 이런 아부의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경남문인협회 회장이자 <경남신문> 이사였던 이광석씨가 기명칼럼을 통해 전두환 정권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고, 그가 속한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동리·소설가)도 9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뉴영남호텔에서 가진 제22회 문학심포지엄에서 문인들의 자세를 밝히는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150여명의 문인들은 "민족중흥의 계기인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오늘날 사회일각에서 사회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비국민적 행동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제, "문인의 경우 그것이 전체 문인 가운데 극소수라고 하지만 문학과 자유에 관한 그들의 양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독재정권을 감싸고 국민의 민주열기에 찬물을 끼얹는데 앞장섰던 문인이란 자들은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자 다시 앞다퉈 '민주'라는 이름을 붙인 백일장 등에 심사위원을 맡는 등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가든파티에다 룸살롱 폭탄주 파티까지

87년 3~6월 마산의 지도층 인사들은 어디에서 뭘하고 있었을까.

당시 마산시장은 박종택씨였는데, 그는 마산지역 유지들과 함께 3월부터 미국과 캐나다 등지의 자매결연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행했던 유지들은 최위승 당시 마산상의 회장, 이성근 마산시정자문위원장, 배대균 바르게살기운동마산지부장, 추한식 시민버스 사장, 이광주 전 마산상의 회장, 최종렬 전 경남은행 전무, 이상기 전 칠서공단 이사장 등이었다.

89년 마산시정자문위원들 모습. 87년 6월항쟁 당시의 유지들이나 2007년 현재의 유지들이나 거의 변함이 없는 얼굴들이다. /사진=박종택 회고록


이들은 또한 5·18광주항쟁 7주년을 맞아 경남도내 대학가에 최루탄 가스가 자욱하던 5월 19·20일 미군에서 인연을 맺었던 노스플로리다대학교 총장 일행을 맞아 호텔과 마산시장 관사에서 가든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박종택 당시 마산시장 회고록에 실려 있는 호텔 리셉션과 가든파티 사진을 보면, 박재규 경남대 총장과 이성근 자문위원장, 최위승 회장 등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마산 창동의 한 룸살롱까지 외국대학교 총장 일행을 데리고 가 폭탄주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다음은 당시 룸살롱에서의 상황에 대한 박종택씨의 회고.

"처음에는 술이라면 절대 사양하지 않는 이성근 시정자문위원장, 김동규 대유통상 부사장, 김만열 한국철강 전무, 배대균 바르게살기 마산지회장 등 우리끼리만 (폭탄주를) 한 잔씩 했다. 두번째 폭탄주가 돌림잔으로 돌아갈 때 누군가가 총장, 부총장에게도 한 잔씩 권했다. 폭탄주의 내력을 통역을 통해서 설명했더니 총장, 부총장도 흔쾌히 한 잔 마시고는 분위기에 젖어 또 한 잔, 또 한 잔 하고는 밴드소리에 맞추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 서로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뜻깊은 창동의 밤을 보냈다."

항쟁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87년 5월 20일, 마산지역유지들이 시장 관사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가든파티를 열었다. /사진=박종택 회고록


이처럼 시민과 학생, 사제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 고위공직자와 어용 문인, 지역 유지들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펜을 휘갈기고 민중을 협박하며, 반상회를 통해 주민을 회유하는 와중에도 가든파티에다 룸살롱 폭탄주 파티를 즐기는 여유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년 전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지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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