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시민단체가 수상쩍다

김훤주 2008. 3. 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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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련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왕성하게 활동해 왔기 때문에 많이 알려진 편이고 영향력도 꽤 있다는 평판을 받습니다.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 얘기입니다.

두 교육감 후보의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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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진(왼쪽)과 권정호(출처 경남도민일보)

지난해 경남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때 맞춰 교육감 선거도 치러졌습니다. 당시 교육감이던 고영진과, 진주교대 총장 출신 권정호가 1대 1로 맞붙었습니다.

결과는 권정호의 ‘아슬 승’이었습니다. 기호 1번 고영진은 48.4%를 얻었고 기호 2번 권정호가 51.6% 득표를 했습니다. 3.2%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영진과 권정호 둘 다 선거 과정에서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고영진은 96년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른 사람 것을 많이 베꼈고 권정호는 자기 논문 하나를 다섯 해 간격을 두고 두 번 우려 먹었습니다.

표절은 알려진대로 도둑질 그 자체입니다. 남의 말글에 담긴 지식과 생각을 마치 자기 것인양 슬쩍 가져가는 짓입니다. 고영진의 도둑질은 명백했습니다.

권정호의 중복 발표도 문제가 큽니다. 논문은 보통 연구비를 받고 진행한 작업의 결과입니다. 승진과도 관련이 됩니다. 중복 발표는 이를테면 양복 한 벌을 갖고 두 군데에다 팔아먹는 사기 행각에 견주면 딱 맞습니다.

한 쪽만 비판한 참학 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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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남도민일보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는 당시 한 사람에게만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입울 '꾹' 닫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2007년 11월 12일 참학 경남은 경남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고영진 논문 표절에 대해 "내용이야 어떠하든 학벌·학위만으로 평가하는 등 잘못된 관행은 바로 입시지옥의 원흉이다."고 깠습니다.

또 "선거를 앞둔 시점에 논문 의혹이 제기돼 자칫 출마하려는 진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어려웠다."면서 "그러나 특정 인물 관련 여부를 떠나 교육적 악영향이 아주 크기 때문에 태도를 밝히게 됐다."고 했습니다.

권정호 표절에는 침묵했습니다. 당시 국면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 하지 않으면 한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참학 경남이 가만 있는 사이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을 비롯한 아홉 개 단체가 나섰습니다. 같은 달 27일 '교육감 후보들의 논문 의혹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둘 다 논문 관련 의혹에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 "후보들이 이런 잘못을 아주 당연하고도 경미한 사안인 양 대꾸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 미래를 한 번 더 걱정하게 된다."고 다그쳤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참학 대항마로 알려진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경남지부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남 학사모는 같은달 30일 후보 둘 다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치렀습니다.

'개혁' 또는 '진보' 꼴통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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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학 대항마 학사모 기자회견(출처 경남도민일보)

두 사람이 다 똑같이 잘못을 했는데도 한 쪽은 손찌검을 하고 한 쪽은 아무 나무람도 하지 않는 잘못을 참학은 저질렀습니다. 이러고서야 공정과 도덕을 나름으로는 생명으로 삼는 시민단체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참학의 이런저런 활동을 두고 곧이곧대로 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보이는 그대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실을 모르는 얼치기이거나 할 뿐입니다.

시민단체가 갈수록 수상쩍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 또는 '수구' 꼴통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제는 이른바 개혁 또는 진보 꼴통까지 등장하려는 모양입니다.

모든 단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힘이 세어지고 주먹이 단단해지면 꼭 휘두르고 싶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나 봅니다. 참학 경남지부의 지난 선거 시기 모습에서 그런 징표가 이미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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