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임금도 탄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

김훤주 2009. 5. 3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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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록, 백성 버린 선조를 고발하다

1.

류성룡(1542~1607)이라 하면 세상 사람들은 전란에 앞서 이순신과 권율을 장수로 추천한 재상으로 압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요. 동시에, '오성'과 '한음'으로 이름난 이항복(1556~1618)과 이덕형(1561~1613)의 존경스러운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맞는 말입니다. <징비록>에도 그렇게 나온다니까요.

<징비록>이 무엇입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류성룡이 썼습지요. 전쟁에 앞선 일도 가끔 적혀 있는데요, 이는 난리의 발단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 징비(懲毖)란,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온 대목이랍니다.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후환이 없도록 삼가네(其懲而毖後患)"에 징과 비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풀어쓴 징비록, 류성룡의 재구성>은 철두철미 류성룡을 위하는 책입니다. 류성룡을 더없는 영웅으로 떠받듭니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릅니다. 류성룡은 숱한 공헌을 했음에도 공신 책봉을 사양했습니다. 또 죽었을 때,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장례 치를 비용조차 없어서 아는 사람들이 돈을 모으자는 부고를 내야 할 정도였다고도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그이는 존경을 받을만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임금 선조가 몽진(蒙塵)을 하는 그 어려운 시절 좌의정으로 있다가 탄핵받아 파직당한 상태에서도 임금을 모셨습니다. 그러면서 군데군데 결정적인 시기마다 임금이 나라를 버리지 않도록 이끌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징비록>을 썼습니다. 쓰기 전에 <징비록>을 쓰기 위해 꼼꼼하게 여러 기록들을 갈무리했습니다. <징비록>의 완성도가 높고 내용이 정확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네요. <징비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임진왜란을 일본의 기록에 더 많이 기대야 알 수 있도록 됐을는지도 모릅니다.

2.
<풀어쓴 징비록, 류성룡의 재구성>에서 지은이 박준호는 <징비록>을 통해 류성룡은 자기가 모신 임금 선조를 "역사의 평가대 위에 올려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백성을 떠나는 선조 임금을 묘사하였고, 거짓말을 하여 백성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사실을 고발한다. 하지만 류성룡의 글은 있는 그대로를 썼을 뿐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한 말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지은이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서울을 버리고 일본군을 피해 북쪽으로 도망치는 선조를 향해 어느 농부가 소리친다. '나라님께서 우리를 버리고 가시니, 우리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징비록>(초고본)에서)

정규 뉴스도 없던 시절 시골 사람이 어떻게 전란의 소식을 접했을 것이며, 급하게 그리고 몰래 서울을 버리고 떠나는 선조 임금이 어떻게 과연 피란 가는 줄을 알았을까. 선조 임금에게 소리친 농부는 다름 아닌 류성룡이었다."

3.
<징비록>에는 이런 구절도 나오는 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조선을 구한답시고 온) 명나라 군사가 어느 날 밥을 잔뜩 먹고 술에 아주 취해서 길 가다가 구토를 했다. 이를 보고 조선 백성들이 서로 먹으려고 달려들었는데, 뒤에는 힘이 달려 밀려난 이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징비록 수고본..


명군의 횡포와 이율배반을 적시한 글입니다. 이런 횡포를 짐작할만한 대목이 <풀어쓴 징비록, 류성룡의 재구성>에도 나옵니다.

"나는 오히려 동파에 머물면서 날마다 사람을 보내 진격하기를 청하였다. 제독은 뒤늦게 응하기를, '비가 그치고 길이 마르면 당연히 진격할 것입니다'라 했으나 실제 그럴 마음은 없었다." 여기서 제독은 명장(明將) 이여송을 이릅니다.

"(그러면서도) 군량이 떨어졌다는 말에 화가 난 제독은 나(류성룡)와 호조판서 등을 불러 뜰 아래 꿇어앉히고는 큰 소리로 나무라면서 군법으로 처리하려 했다. 나는 분하고 서러운 마음을 참으며 계속 사죄했는데, 나라 일이 여기까지 이른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4.
어쨌거나, <풀어쓴 징비록, 류성룡의 재구성>도 다른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스펙트럼을 펼쳐 보일 것입니다.

아마 전체주의자가 읽으면 일단 국력이 세고 볼 일이라 할 것입니다. 군국주의자는 국력 가운데서도 으뜸은 군대라 이를 것입니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복고주의자는 아무래도 임금이 좋고 잘 만나야 한다면서 류성룡더러는 충신이라 추어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어떤 이는, 징비록을 풀어쓴 갈피갈피에서, 재구성한 류성룡의 면모 사이사이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무지렁이 백성들, 민중들 모습이 눈에 밟히고 가슴에 아릴 것입니다. 그런 이를 사람들은 영어를 빌려 '휴머니스트'라 하나 봅니다.

김훤주

류성룡의 재구성 풀어쓴 징비록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박준호 (동아시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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