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문화재 되찾기, 전라도에 배워야겠다

김훤주 2009. 6. 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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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로 떠도는 경남 문화재
1월부터 우리 <경남도민일보> 문화체육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경남 문화재에 관심이 갔습니다. 나름대로 이리저리 둘러보니, 경남 '출신'이기는 한데 다른 데 가 있는 문화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창원 봉림사터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 그랬습니다.

보물 362호와 363호인 보월능공탑과 탑비는 원래 창원 봉림동에 있었으나 일제가 1919년 서울로 가져갔습니다. 보월능공탑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 놓여 있음이 확인됐지만 보월능공탑비는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경복궁에서 지금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장고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더 처량합니다. 국보 105호인 이 석탑은 범허사라는 산청의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께 일본인 골동상이 가져갔다가 47년 경복궁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또한 경복궁에서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서울 용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장고로 들어갔습니다. 올해 3월 <불교신문>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없고 수장고 신세를 지고 있는데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더 힘겹겠다고 했습니다.

땅에서 발굴하거나 해체·수리 과정에서 나온 유물도 여럿 서울에 갔습니다. 먼저 일제 강점기 창녕 교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1920년대 기록에 따르면 일제는 열차 2량에 우마차 20대 분량을 파냈습니다. 다행히 일본에 보내지지 않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았습니다만, 절대 다수는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수장고 한 켠에 찌그러져 있답니다.

1988년부터 98년까지 창원 동읍 다호리에서 건져낸 숱한 유적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2500년 전 한반도에서 문자를 썼음을 짐작게 하는 붓을 비롯해, 철기와 토기, 활과 화살과 화살통, 칠기와 통나무관이 나왔습니다. 율무와 밤과 감과 같은 과일들도 나와 당시 먹을거리를 일러주기도 하고요.

국보 제34호인 창녕 술정리 동3층석탑은 해체·복원 와중에 알맹이가 사라졌습니다. 1965년 12월 해체 당시 진신사리 용구가 발견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동3층석탑 지킴이 혜일 스님과 김해 탑 전문가 윤광수씨가 2002년 찾아나섰을 때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답니다. 2003년 2월 17일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책임 떠넘기는 공방을 벌였고, 그러다 뜬금없이 이틀 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2. 원형 유지가 기본이라는 문화재보호법
저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지역 문화재가 왜 아무 관련도 없는 서울에 가 있지? 그러면 원래 있던 맥락에서 보고 느끼고 할 수가 없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 대영제국 박물관에 외규장각 도서 같은 우리나라 귀중 문화재가 들어 있는 사실과도 대조가 됐습니다.

외규장각 도서처럼 제국주의 나라들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되찾는 것이 당연하다면, 지역을 떠나 서울에 들어가 있는 문화재들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만약 서울 경복궁에 있던 문화재가 경남의 한 박물관 수장고에 있어도 지금처럼 조용하기만 할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문화재 보호법을 뒤져 봤겠지요. 그랬더니 제3조가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원형 유지'를 하려면 '제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기본 원칙이 반가웠습니다.

3. 전라도에 한 수 배워야겠다

국립광주박물관의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문화재청 자료 사진.

전라도는 이런 일이 없을까 싶어서 찾아봤습니다. 물론 자세히는 살펴보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랬더니, 우리 경남보다는 여러 발자국 더 앞서 있었습니다. 서울로 '반출'된 문화재를 두고 1990년대에 '반환 운동'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성과를 남기기까지 했더군요.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103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그것입니다. 통일신라 물건으로 사자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머리털까지 잘 나타나 있답니다. 그런데 제 눈길을 끈 대목은 "1918년 서울 경복궁에 옮겨 놓았는데, 59년 당시 경무대로 옮겨졌다가 60년 덕수궁을 거쳐 다시 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게 됐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참 떠돌이 생활을 많이 했다 싶었는데, 그러다 어떤 다른 기록을 들여다봤더니, "1990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호남 지역에서 반출된 문화재를 다시 찾아오는 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국립중앙박물관 협조를 얻어 (원래 있던 자리인 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은 아니지만) 국립광주박물관 실내로 옮겨오게 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렇게 잘 넘겨주지 않는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같은 국립박물관이라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 경남에서는 이런 '반환운동'이 벌어진 적도 없고 지금도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반환운동을 벌인 광주·전남에게서 '한 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광주·전남도 국보 제143호인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처럼, 아직 서울에 있는, 그래서 되가져와야 할 문화재가 없지 않고 많을 테니 경남의 뜻있는 이들과 함께 반환 운동을 한 번 더 벌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훤주
※ <전라도닷컴> 2009년 6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새로 조금 가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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