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습지 보전 반대하는 이상한 스님들

김훤주 2009. 5. 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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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앞서 보전해야 하는 습지보호지역은 팽개쳐 둔 반면, 조금 늦어도 되는 습지보호지역 바깥만 복구됐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여길까요?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그것도 스님이 들어서 그리 됐다 하면 사람들은 더욱 이상하게 여기겠지 싶습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산들늪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산들늪 일대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는 표충사 등이 지난해까지는 복구에 동의했다가 올해 들어서는 부동의로 돌아섰기 때문이랍니다.

산들늪 일대(0.58㎢=17만7620평)는 보전 가치가 높다고 인정돼 2006년 12월 28일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산들늪 몇몇 군데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작전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작전도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른바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의 지프가 굴러다녔습니다.

산들늪 일대. 2006년 가을 찍었습니다. 이 속에 엄청난 상처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지반이 흐물흐물해졌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다 보니 땅 속 뿌리로 흙을 붙잡아주는 노릇을 하는 나무나 풀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여기를 따라 태풍이나 집중호우 때 빗물이 엄청나게 몰리면서 태풍 루사가 닥친 2002년 바닥이 파이기 시작해 2003년 태풍 매미를 거쳐 2006년 태풍 에위니아 때에는 최대 높이 8m 너비 20m까지 깎였습니다.

2006년 사진. 굴착기 따위로 일부러 파낸 것 같습니다.

산허리가 이렇게 파여 나가고 보니 마루에서 기슭을 거쳐 고산습지인 산들늪으로 흘러들던 많은 물이 이렇게 파인 골을 따라 곧바로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습지는 메말라가고 산 아래 단장천은 떠내려온 바위와 흙들이 쌓이는 바람에 물길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습지를 메마르게 할 뿐 아니라 생태계까지 망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2007년 들어부터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와 경남도(경남산림환경연구원)가 복원을 추진해 왔습니다.

경남도가 복구한 모습. 잘못된 구석이 있지만 안 한 것보다는 낫겠습니다. 2009년 사진.


환경부는 습지보호지역 안쪽, 경남도는 습지보호지역 바깥 쪽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바깥 관리를 맡은 경남산림환경연구원은 표충사 동의 아래 6억9000만 원을 들여 바닥이 파인 산허리 540m가량에 대한 복구 작업을 지난해 12월 18일 준공했습니다.

바위가 가지런히 놓인 데까지만 공사가 됐고 나머지는 복원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바라봤습니다. 위쪽에 공사를 한 자취가 있습니다.


반면 안쪽을 맡은 낙동강청은 올해 5억8000만 원으로 복구를 하려 했으나 표충사의 부동의에 부닥쳤습니다. 복구 대상 지역은 두 곳으로 거리는 제각각 387m와 178m에 이릅니다.

재약산은 임진왜란 때 승병장 사명대사로 이름난 표충사도 품고 있습니다. 이 곳 상처를 한 번 찾아봤습니다.

양쪽 나무나 언덕들이 모두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마찬가지, 뽑히기 직전입니다. 비가 한 번만 더 오면 그리 되겠습니다.


5월 10일 이른 아침에 올랐습니다. 일요일이지만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산들늪 습지보호지역 들머리를 둘러보는데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관리 초소는 문이 잠겨 있었고 사람들이 통행제한 지역으로 드나든 자취는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오히려 산허리가 벌겋게 상처를 드러내 놓은 그대로였습니다. 반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땅이 '사방사업을 통해 추가 훼손을 방지하고 산림으로 복구'(2008년 12월 18일)돼 있었습니다.

복구가 이뤄진 습지보호지역 바깥 상처 길이 540m가량은 경남산림환경연구원이 관리하는 주체입니다.

산짐승이 다닌 발자취. 한가운데 아래쪽은 질척거려 빠지기 때문에 이렇게 비탈로 다니나 봅니다.


그러나 복구가 채 되지 않은 습지보호지역 안 상처 380m 남짓은 관리 주체가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이었습니다. 여기는 이번 장마 때도 그대로 상처를 드러낸 채 비를 맞아 상처를 키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낙동강청을 나무라기도 어렵습니다. 낙동강청이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약산 산들늪 일대는 표충사와 동국대학교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습지보호지역이라 해도 복구를 하려면 이들 지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답니다. 표충사가 2008년까지는 '동의'를 했으나 올해는 '부동의'를 하고 있다. 이 즈음에 표충사 주지스님이 바뀌었다는데 이런 태도 변화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른쪽 억새밭에다 군데군데 대열을 이루어 소나무 따위를 심었습니다. 그러고는 왼쪽 아래에다 물이 잘 빠지도록 물길을 틔웠습니다. 근본이 안 된 공무원들입니다.

이렇게 해놓으니 이런 상처가 납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더 큰 상처가 있습니다. 길이가 여기도 200m 가량 됩니다.


여기 말고도 산들늪 습지보호지역에는 상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밀양시는 2005년 어름에 억새밭에다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억새는 젖은 땅에서 잘 자라지만 소나무는 마른 땅이라야 잘 자랍니다. 말하자면 상극(相克)입니다. 관광 목적으로 했다지만, 세상에나, 억새 평원을 보러 오는 사람은 있어도 어린 소나무를 보려고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소나무를 심으면서 그 아래에다 물이 잘 빠지도록 땅을 툭 잘라내고 돌들을 깔아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스며들던 물을 아래로 바로 빼내는 구실을 합니다. 습지를 해코지하는 짓이지요. 그러면서 물이 한꺼번에 흘러넘칠 때마다 바닥까지 깎여 나가고 말았습니다. 여기도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낙동강청에서는 "산들늪 일대를 표충사와 공동 소유한 동국대가 '습지보호지역 지정취소' 소송을 냈다가 올 1월 졌는데 이런 앙금 때문인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사유지(寺有地)라서 원활하게 관리하려면 협조가 필요하기에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다가는 올해 장마를 그냥 넘기게 생겼습니다. "더 망가지지 않게 하려면 장마가 지기 전에 복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낙동강청에다 물었더니 "그래야 맞기는 한데, 지금 그리 되기를 바라기는 어렵게 됐다"고 하더군요.

표충사는 어떻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려고 두 차례 전화를 하고 연락처를 남겼으나 책임 있는 사람과 통화하지 못했습니다. 2008과 2009년이 엇갈리는 연말연시에 표충사에는 주지 스님이 바뀌는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통화를 못한 채로 있었는데,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 주에 제가 한 번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가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태도가 어떠하신지 들어보고 있는 그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스님들이 습지 보전에 동의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2009년 5월 13일치 17면 '몸으로 푸는 지역 생태'에 실은 글을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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