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미성년자는 과연 덜 된 인간인가?

김훤주 2009. 5. 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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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떨어진 어른이 참 많다 = 법원에 가서 형사 법정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성년(成年)'이라는 말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이뤘다(成)는 것인지,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하게 만든답니다.

제가 2005년과 2006년 법정 취재를 하면서 본 사람들이랍니다. 아무 까닭 없이 술만 마시면 도둑질하는 사람, 술 취하면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어 때리는 사람, 빚도 못 갚고 살기 어렵다고 자식 목졸라 숨지게 한 사람, 날마다 노름에 빠져 살다가 잡혀와 겉으로만 반성하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

또 있습지요. 스물네 시간 밥 먹을 때 빼고는 하루종일 아내를 두드려 패는 신기록을 세운 사람, 그러고도 모자라 2박3일 가정 폭력을 이어간 사람, 진짜 그렇게 두드려 패 놓은 다음 아내를 강간한 사람. 여자 혼자 사는 집만 골라 성폭행을 한 사람은 오히려 흔한 편이지요.

자기가 걸터앉아 있는 지위를 악용해 아랫사람 등쳐 먹은 사람, 공동체 이익을 가로채 제 배만 불린 사람, 폭력을 조직해 공갈·협박·폭행을 일삼고도 오리발 내미는 사람, 보험금 타려고 배우자는 물론 자식까지 해코지한 사람…….

이처럼, 법정에 가면 이렇게 성인이라는 너울을 쓰고도 전혀 성인답지 않은 짓을 저지른 인간들이 참 많이 보입니다. 이런 인간일수록 잘난 척도 많이 합니다. 고집도 세고요 엉뚱하게 과시욕이 엄청나게 큰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못 말리는', 그리고 '덜 떨어진' 존재들입니다.

민석이와 엄마의 마주이야기 공책.

◇이런 어른들이 가르치려고만 드니 = 그런데 이것이 그런 개인개인의 문제이기만 할까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성인들은 죄다 크든 작든 그런 성향을 갖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자기 잘못은 감추는 반면 상대 잘못은 보이는 족족 크게 나무라고 꾸짖고 혼냅니다. 자기 잘못은 고치려 하지 않고 남의 잘못은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도드라지게 합니다.(물론 안 그런 어른도 있기는 합니다.)

이런 성인 또는 성년의 개념 맞은편에 미(未)성년이 있습니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개념이다 보니 미성년으로 일컬어지는 또래는 아직 덜 된 인간 대접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인식은 교육에서 가장 크게 힘을 씁니다. 성년자가 가르치고 미성년자는 배워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공식은 틀렸습니다. 교육은 성년도 미성년도 할 수 있습니다. 학습 또한 마찬가지여서 성년도 해야 하고 미성년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진정한 교육과 진정한 학습은 많은 경우 일치하지 않습니까? 가르치는 과정이 배우는 과정이고, 배우는 과정이 가르치는 과정인 것이지요.

◇교육이 학습과 동행하는 '마주이야기' = <마주 이야기>는 이런 진리를 소상하게 실감나게 일러준답니다.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는 취지를 중심으로 쓴 책입니다. 아이들더러 "야! 말 좀 들어!!"라 해서는 안 되고 어른들이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진리를 들려줍니다.

(카레 만드는 엄마를 보며) "엄마! 나 이거 썰어보고 싶어." "칼은 위험하지 않을까?" "엄마, 한 번만 해 볼게. 응?" "그럼 칼을 바꿔서 작은 칼로 해." "네. 엄만 참 좋은 것 같애." "왜?" "다른 아이들은 이런 거 못해 보는데 엄마는 해 보라고 하니까." 이렇게 마주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도 배우고 어른도 배웁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게 해서 못 하고, 하라는 공부는 하기 싫어서 못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기 싫어'를 입에 달고 시들시들 자랄 수밖에요. 이것은 모두 일이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은 일과 공부 사이에 아예 줄을 그어 놓고 이것은 일, 이것은 공부, 이렇게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런 잘못을, '마주이야기'를 하면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주이야기 공책'을 마련해 어버이가 아이들 말을 귀기울여 듣고 차곡차곡 적으면, "온몸의 감각을 다 두드려 깨워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한다"고 합니다. ('대화'라 하지 않고 '마주이야기'라 하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고 새롭지 않습니까? '대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곰살맞음이 '마주이야기'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무뚝뚝하고 딱딱한 반면, '마주이야기'는 사근사근하고 싹싹합니다. 엄청난 차이입니다.)

◇어른도 나무람을 받아야지 = 아이들은 잘못을 하면 어른이 들어서 꼭 나무랍니다. 그러나 어른은 잘못해도 아이들한테 나무람을 받지는 않습니다. <마주이야기>는, 어른도 나무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어른 나무라는 보기를 들어 줍니다. 이런 나무람의 방법을 어른은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밖에서 술을 마십니다. '아빠, 술 마시고 운전하다 경찰한테 잡히면 이젠 죽었다' 하니, 아빠가 '그럼 넌 과자 먹지 마' 합니다. 이러니 '난 어쩔 때 엄마가 안 된다 그래서 과자 안 먹는데, 아빠는 돈 있어서 아무 때나 술 사 마시잖아. 그러니까 아빠도 집에 있는 날, 운전 안 하는 날만 술 마셔. 나도 토요일 일요일만 과자 먹을게'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매로, 힘으로 혼내지 않고 언제나 말로 타이르고 애원합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 말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실수로 자동차 자리에 우유를 쏟았습니다. 무지막지한 나무람이 쏟아집니다.

아이 사정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아이가 쏟고 싶어서 일부러 쏟았을까요? 아이는 자기가 실수해서 쏟았는데 스스로 속이 상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좀더 조심해서 이리는 안 해야지 하는 다짐을 그냥 놓아둬도 충분히 잘할 텐데, 그냥 나무라고 꾸짖기만 합니다.

"제발 좀, 돌아보세요." 어른들은 마치 자기네는 어린 시절 겪지 않고 곧바로 어른이 된 것처럼 굽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어른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자기네도 어릴 때 어른들 나무람과 꾸짖음과 두드려 패기가 싫었음에도 말입니다.

글쓴이가 유치원을 하면서 아이랑 선생님이랑 아이들 보호자랑 지냈던 경험을 바탕 삼아 쓴 책입니다. 그렇지만 유치원에서보다는 집에서 더 배울 게 더 많은, 그런 책입니다. 선생님보다는 어버이에게 더 필요한 책이겠다, 싶습니다. 보리. 263쪽. 1만3000원.

김훤주
※ 2009년 5월 7일치 경남도민일보 13면 책 소개에 나간 글을 좀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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