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경상도에서 호소하는 《전라도닷컴》 살리기

김훤주 2008. 3. 24. 09:54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라도닷컴> 창간호 표지(전라도닷컴 제공)

경상도에 살기 때문에 억울하다?

저는 경상도라는 지역에 살면서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서울이 아닌 데서 벌어진다는 이유로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제가 쫀쫀한 구석이 좀 있습니다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가 한 번은 친일 시인 유치환을 두고 통영시와 통영시의 관변 단체들과 대립한 적이 있습니다. 유치환이 일제 때 친일시를 썼으며 일제가 괴뢰 만주국을 운영하면서 지배도구 노릇을 한 협화회에 근무한 기록이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통영시는 겉으로는 표정 관리를 했지만 상당히 불쾌스러워했으며 통영문인협회나 통영예총 등에서는 그냥 반발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문 불매운동까지 벌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에 관심을 보여주는 서울 쪽 사람이나 단체는 없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마산시와도 날카롭게 대립한 적이 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를 도운 이은상을 기리거나 친일 혐의가 짙은 음악가 조두남을 기리려 한다고 마산시를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마산시장은 경남도민일보를 상대로 억대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으며(물론 마산시가 패소했습니다만) 공고를 두고 마땅히 계약을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거나 미적대는 등으로 돈줄을 죄기도 했습니다. 이 때도 서울 쪽 사람들의 관심은 거의 없었습니다.

서울 것들에 쏟아지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물론, 지금 <시사인>이라는 둥지를 따로 만든 옛날 <시사저널> 기자들의 삼성 관련 비판기사가 값어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폭로나 삼성특검 국면에서 생산한 삼성 관련 기사들이 의미롭지 않다는 말도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에 보내지는 관심에 견줘 봤을 때, 지역에서 지역을 나름대로 바로 세우고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작다는 데 있습니다. 서울 것들에 쏟아지는 그 많은 관심들의 절반만 주어져도 무척 행복하겠습니다.

<시사저널>이나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삼성 왕국에 맞서는 보도가 중요하다면 <경남도민일보>의 지역 토호에 맞서는 보도도 중요합니다. 삼성이 우리나라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토호 또한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행태로 모든 것들에 손길을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자본의 침탈로 위태해진 <전라도닷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라도닷컴>이 찍은 전주 시계 할아버지

전라도 광주로 눈길을 돌려보니 드러나는 행태는 다르지만 성격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라도 사람 자연 문화를 담는 월간지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 입니다. 그 중요도가 <경남도민일보>는 물론 <한겨레>나 <경향신문>보다도 더 큰 것 같다고 저는 여깁니다.

<전라도닷컴>은 2000년 10월 웹진으로 출발했습니다. 종이잡지 창간호는 2002년 3월호입니다. <전라도닷컴>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07년 11월호까지 69호를 발행했습니다.(행여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면, 저는 경상도 토박이입니다. 이문열 식으로 얘기해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어버이의 어버이들조차도 전라도와는 전혀 무관한 경남 창녕 산골 촌놈입니다.)

<전라도닷컴>은 지역 문화 권력과 손잡지 않았습니다. 지역 자본에 예속되지도 않았습니다. 지역 정치권력 따위를 '빨아주는'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전라도스러운 말글로 가장 전라도다운 사람과 자연과 문화를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저는 이보다 더 잘 <전라도닷컴>을 설명하는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적당한 보기를 들어야 마땅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라도닷컴>에 실린 기사나 사진 모든 꼭지들이, 길고 짧거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전라도스럽고 전라도다운 정도에서는 모두 한결같기 때문입니다.(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전라도닷컴>에 들어가셔서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라도닷컴>이 찍은 전남 순천 금둔사 산신각

<전라도닷컴>이 2007년 12월호를 내지 못했습니다. 인사권과 편집권에도 전혀 손대지 않고 조건 없이 도와주던 보기 드물게 착한 지역 자본 '빅마트(Big Mart)'가 경영난으로 손을 뗐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역 유통자본이 이리 되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쉬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홈플러스나 이마트나 전자랜드나 롯데마트나 따위들이 전국 모든 중소 규모 도시까지 속속들이 파고드는 현실에서, 전라도의 '빅마트'가 제 아무리 '빅'하다 해도 그것들 사이 관계는 '부처님 손바닥'과 '손오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금이 쪼들리던 빅마트는 드디어 자기 매장에 '신라면'조차 들이지 못해 구색도 맞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16개 매장 가운데 둘만 남겨놓고 서울서 쳐들어온 초대형 유통자본에 나머지를 팔아넘겨야만 했다고 합니다.

<전라도닷컴>이 주저앉으면 <종로닷컴>도 꿈꿀 수 없다

서울 또는 수도권의 지역 또는 비수도권 침탈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의 건전한 자본이 무너졌습니다. 덩달아 그에 기대고 있던, 토호를 바탕삼지 않고 토호를 '빨아주지' 않으며 토호에 휘둘리지 않던 건전한 월간지도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당연히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지역 화가들이 그림을 내놓았답니다. 지역 단체와 사람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독자와 광고를 확보하는 운동을 벌인답니다. <전라도닷컴>을 사랑하는 이들이 <전라도닷컴>을 살릴 방안을 찾으려고 다달이 머리를 맞댄답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전라도닷컴>은 전라도만의 사안이 아닙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 초대형 유통자본에 밀려, 뒷돈이 없어서, 독자가 모자라, 광고가 받쳐주지 않아 <전라도닷컴>이 주저앉으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토호의 지배와 개입과 왜곡 없이' 해당 지역의 문화와 자연과 사람을 기록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전라도닷컴>이 사라지면 <경상도닷컴>도 꿈꿀 수 없습니다. <강원도닷컴>, <충청도닷컴>, <경기도닷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을 보기로 들자면, 해당 지역의 사람과 자연과 문화와 뒷골목을 기록하려는 <종로닷컴>, <신촌닷컴>, <봉천동닷컴>, <성북동닷컴>, <구로닷컴> 따위도 꿈꿀 수 없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기록이 없으면 지역 주민들의 기억은 이어지지 못합니다. 토호들만 기록을 하면 토호들 기억만 남게 됩니다. 이른바 '풀뿌리' 인간들은 갖가지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토호들로 말미암아 왜곡된 모습으로만 남게 됩니다.

<전라도닷컴>을 살리는 일은 퍽 쉽습니다. 수도권에 사는 뜻있는 이들이 다달이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만 줄이면 됩니다. 어지간한 거리 택시 한 번만 타지 않아도 됩니다. 한 권에 3000원 하는 <전라도닷컴>을, 3000원 제 값만 내고 구독하셔도 좋지만, 원래 뜻으로 적선(積善)을 한다 치고 5000원이나 1만원 내고 구독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전라도닷컴> 살리기는, 토호의 힘에 기대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 지역의 자연과 문화와 사람을 기록하는 첫걸음입니다. 모든 기자들이 무급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5000명만 확보된다면 활짝 살아난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미디어스에 실린 글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