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8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예견한 시(詩)

김훤주 2009. 5. 8. 10:13
반응형

8년 전 나온 시집에서, 이명박 정부의 출현을 예견한 듯한 시(詩)가 눈에 띄었습니다. 양산에 사는 최종진 시인이 펴낸 <그리움 돌돌 말아 피는 이슬꽃>(초판)입니다.

83쪽에 '한반도(2)-만불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실려 있는데요, 생태를 감싸 안고 분단을 밀쳐 내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네요.

고도성장을 축하하는
물고기 떼죽음의 수중무용제
소비를 부추기는 유혹의 눈빛이
매연으로 찌든 도시를 밝히고
세기말의 흐릿한 이정표는
손 들어 표할 힘을 잃었다

땀 흘려 피워올린 횃불은
한반도 구석구석 골고루 비추는가
휴전선이 야금야금 복지를 갉아 먹는
분단의 곳간은 쥐들의 세상
서로의 반쪽을 인정하지 않는
깨어진 독에 종일 비가 내린다

지금 눈으로 보면 '세기말의 흐릿한 이정표' 같은 표현은 이미 상투(常套)가 됐습니다. 그래서 산뜻하고 피어나는 느낌이 많이 가시고 말았지만 2001년 처음 봤을 때는 머리 꼭지가 얼얼한 그런 경험을 했었지요. 그리고 지금 볼 때, 2008년 이후 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낱말이 바로 '쥐'입지요.

이번에 시집을 꺼내 보면서 당시 쓴 기사도 함께 읽어봤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시인은 생명을 강하게 옹호하고 분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휴전선이 야금야금 복지를 갉아먹는| 분단의 곳간은 쥐들의 세상| 서로의 반쪽을 인정하지 않는| 깨어진 독에 종일 비가 내린다'('한반도 2-만불시대' 부분)에서는 시인의 시대 생각이 엿보인다."

그런데, 지금 읽어보니, 바로 이 부분이 이명박 정부의 출현을 앞서 내다본 대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휴전선이 복지를 갉아먹는'은, '휴전선을 핑계로 복지를 갉아먹는'으로 바꿔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최종진 시인은 89년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습니다. 93년부터 관심과 애정과 도움을 주는 '고운님'들에게 보내기 위해 소식지 <징검다리>를 다달이 내기 시작했습니다. 올 5월로 176신이 됐는데 처음 30부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220부에 이르고 있습니다.

복사 B5 크기 넉 장 짜리인 176신 첫머리에는 제목이 '똥'인 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최종진 시인이 얼마나 용맹정진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똥이 똥통에 통 하는 찰나

하늘과 땅이 손을 잡는다

똥을 누는 순간
신이 숨을 쉰다

똥 누는 자세를 하는 동안
세상은 고요에 빠져든다

4월에 보낸 175신에도 시가 얹혀 있는데요, 제목이 '가족'이네요.

하천부지에서 무농약으로 자란
김장배추를 몇 포기 뽑아 와서
하나씩 신문지에 둘둘 말아 놓았다

배추시래기국을 끓여 먹든가
배추나물을 무쳐 먹든가 하면서
한 겨울을 날 생각이었다

한 포기를 꺼내 보니 배추벌레가
배추잎을 갉아 먹어 구멍이 숭숭했다
배추벌레를 옆 배추로 옮겨 주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별에선가 만나면
추운 한 철을 같은 먹이를 먹고 지낸
추억을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 최종진은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외로움 돌돌 말아 피는 이슬꽃> 하나만 안고 살겠다 합니다. 2004년 개정판을 냈고 2007년 재개정판을 냈습니다. 지금은 재재개정판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초판은 90편을 실었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다섯 편을 들어내고 열다섯 편을 더했습니다. 2007년 나온 재개정판에도 100편이 실렸습니다만, 그 면면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남아도 좋을 시편 또는 세상에 필요한 시편이, 100편 안팎이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5월 4일 찾아갔을 때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애써 썼는데 없애면 아깝지 않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이는 "장인이 도자기 깨듯이 해야지요." 했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