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전라도 영산강에서 배우는 경상도 낙동강

김훤주 2009. 5. 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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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에 영산강이 있듯, 경상도에는 낙동강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영산강은 이렇습니다. 전남 담양에서 시작해 광주와 나주·목포를 거쳐 서해로 나갑니다. 길이는 138km 남짓 되는데, 광주천 황룡강 지석천 고막원천 함평천 등등을 흘러가며 쓸어 담습니다.

영산강 유역에는 나주평야, 서석평야, 학교평야 등이 펼쳐지며, 쌀이 주산물이지만 배·복숭아·포도(나주), 채소(나주·송정), 양파·마늘(학교)도 꽤 이름이 높답니다. 여기는 땅이 기름지고 바다와 쉽게 이어지기 때문에 옛적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겠지요.

이런 사정은 경남의 낙동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해평야와 수산(밀양) 들판 주남(창원) 들판 등이 이어지고요, 쌀이 많이 나기는 하지만 밀양 삼랑진 딸기와 양산 물금 배와 창녕 양파 등도 못지 않게 널리 알려진 산물입니다.


영산강과 낙동강의 닮은 꼴과 다른 꼴

물줄기를 따라 오래 전부터 문화를 이뤄 살던 자취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다 끝머리 하구둑까지 영산강과 낙동강은 닮은꼴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먹는물 노릇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입니다. 영산강은 1996년부터 식수 노릇을 못하고 있지만 낙동강은 지금도 식수원이랍니다.


영산강에서 1994년 물고기 떼죽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위정자들이 영산강 수질을 좋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취수원을 주암호로 덜컥 옮겨버렸다고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낙동강을 먹는물로 쓰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구에다 공단을 짓고, 그 아래 있는 경남과 부산과 울산 사람들에게는 남강댐이나 밀양댐에 있는 물을 먹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네는 '꿩 먹고 알 먹고'가 되는 모양입니다. 대구 공단 설립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입니다. 이 공약을 실천해 대구·경북의 수구 세력에게 보답하는 한편으로, 그로 말미암아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경남 쪽 낙동강 수질을 그냥 공공연하게 내팽개칠 수 있게 됩니다.


낙동강 사망 선고를 위한 경남도와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올 3월 16일 탐사.


그런 바탕 위에서 거대한 토목공사를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4대 강 정비 사업'입니다. 포장은 낙동강 '살리기'라고 되고 있는데요, 이것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지금 있는 낙동강이 '죽은 목숨'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구 공단도 빨리 짓고 식수원도 다른 데로 옮길 텐데 살아 있으니 문제인 것입니다.

정부가 자꾸 "낙동강이 죽었다"고 외치는 까닭

정부 자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환경부가 해마다 내놓는 '환경 보전 시책 추진 상황 보고서'는 낙동강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따위 지표가 나날이 나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낙동강 중류보다 하류가 수질이 더 좋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08년 4월부터 12월까지 조사한 퇴적물모니터링에서도, 낙동강뿐 아니라 4대 강 모두 오염 평균값이 화학적 산소 요구량(COD) 총질소 총인 납 등 조사 항목 11개 가운데 비소(As)를 뺀 10개가 미국 환경보호청의 기준치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틈날 때마다 4대 강 정비 사업을 해야 한다 떠들어 댑니다. 경남도는 덩달아서 낙동강은 죽었다, 그러니 낙동강을 포기하고 식수원을 옮긴 다음 살리기 사업을 해야 한다고 화답을 합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2월 11일 헬리콥터로 낙동강을 훑어보고는 "강물이 많이 썩은 것처럼 보이고 강 주변이 쓰레기장 같다, 낙동강은 지금 최악이다"고 내뱉었습니다. 전문기관 조사보다 단체장 소감이 더 중요한 모양이지요.

덩달아 '죽었다'고 쌩쇼하는 김태호 도지사

올 3월 16일에도 김태호 지사가 낙동강 둘레 8개 자치단체장 등과 함께 15km 남짓 낙동강을 둘러보고는 "낙동강 오염이 심각함을 눈으로 확인했다"면서 '낙동강 살리기 추진을 위한 공동 결의문'을 채택하는 '쌩쇼'를 했습니다.


"낙동강이 죽었다고?" 생명의 강 연구단의 반박 기자회견.


이튿날 전문가로 짜인 '생명의 강 연구단'은 환경단체들과 함께 당연히 곧바로 반박했습니다.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조사해 봤더니, "'2급수에 가까운 3급수' 수질이었다, 3급수까지는 먹는물로 쓸 수 있다"면서 "하구둑 있는 데를 빼고는 바닥도 깨끗했는데 자정 작용을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뜻있는 이들이 '낙동강은 죽었다'는 정부·여당 주장을 반대하는 배경에는 광주·전남의 영산강이 있습니다. 영산강 수질이 안 좋아 식수원이 주암댐으로 옮겨진 뒤, 영산강에 돈은 더 많이 들어가면서도 수질은 더욱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2008년 5월 영산강 수질은 농업용수로나 쓸 수 있는 4급수(농업용수 기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전남발전연구원의 한 박사는 "영산강은 원래부터 4대 강 중 수질이 가장 나빴지만 먹는 물로 관리할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전남도 환경 담당 공무원도 "영산강 취수 포기로 수질 개선에 드는 비용이 늘어났다거나 오염총량관리제 실행이 어려워진 점 등은 연구도 해보지 못하고 있다"고, 식수원 포기가 더욱 나빠진 원인이라 밝혔습니다.


낙동강을 두고도, 사람들이 먹는물로 쓰기를 포기하면 그 순간부터 더 나빠질 것입니다. 영산강의 슬픈 역사가 웅변하고 있습니다. 경남 사람들은 영산강을 바탕으로 반대운동을 벌입니다. 전남과 광주의 좋지 않은 사례를 우리 경남 사람들이 반면교사로 삼아 한편 미안하기는 합니다만.

김훤주(경남도민일보 기자)
※<전라도닷컴> 5월호에 실은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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