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양성평등 교육하는 학교, 교훈은 구닥다리

김훤주 2009. 4. 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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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한 여학교에서 보낸 양성평등 교육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입니다. 얼핏 훑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내용이 아주 그럴 듯합니다.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강요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올바른 성 역할 확립’이라는 목적도 좋습니다.


“양성평등 교육은 학교 현장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함께 실천돼야 할 중요한 교육 내용”이라는 취지는 아름답기조차 합니다.

“특정한 성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정관념, 차별적 태도를 가지지 않고 생물학적 차이를 사회문화적 차이로 직결시키지 않으며 남녀 모두에게 잠재돼 있는 특성을 충분히 발휘해 자신의 자유 의지로 삶을 계획하고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교육”이라는 정의(定義)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가정통신문은 이어서 어떤 것이 양성평등을 가로막는 생각들인지 보기를 들어놓았습니다. “여자는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이 좋다.”에서부터 “여자는 남자에 비해 의존적이다.”까지,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는 아홉 가지입니다.



다음에는 “양성평등 교육을 위해 고려해야 할 일들”을 적었습니다. 격려·칭찬·꾸지람 따위를 할 때 남녀 차별 없이 하랍니다. 그러고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드러내기 쉬운 ‘여자가~’ 또는 ‘여자답지 못하게~’, ‘남자답지 못하게~’ 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딸에게는 적극적으로 운동과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순발력과 지구력 강화를 통한 체력을 갖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참 좋은 얘기입니다. 여태 제가 받아본 가정통신문 가운데 내용이 가장 훌륭해서 마음에 쏙 듭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여학교의 교훈은 전혀 양성평등스럽지 않습니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교훈입니다.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 이라고 돼 있는 것입니다.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이라……, 말뜻 그 자체로 본다면 그냥 다들 좋기만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여학교의 교훈 같은 장치들로 말미암아 나날이 더욱 굳건해지는 이데올로기가 여기 있습니다.



참된 여성 착한 여성 아름다운 여성이 여자다운 여자다, 라는 얘기지요. 이것이 성차별적인 까닭은 다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 남학교 가운데 ‘참된 남성 착한 남성 아름다운 남성’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 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남자는 좀 거짓부렁을 해도 되지만 여자는 참되게 보여야 여자답다, 남자는 좀 껄렁거려도 되지만 여자는 착하게 보여야 한다, 남자는 좀 우락부락 못 생겨도 되지만 여자는 그러면 안 되고 아름다워야 한다, 이런 얘기지요. 사회가 강요하는 수동적 여성상인 것입니다.


가정통신문 보면서 청신한 느낌 받았습니다. 요즘은 옛날하고 달라서 이런 양성평등 교육을 학교에서 앞장서 가르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통신문이 좀더 빛나려면, 먼저 이 구닥다리 교훈부터 확 바꿔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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