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3·15 국가기념일 제정, 어떻게 보십니까?

기록하는 사람 2009. 4. 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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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산에서는 내년 3·4월혁명 50주년을 앞두고 1960년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마산시민이 궐기한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고, 이주영·안홍준 의원이 앞장서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국회의원 265명의 찬성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을 추앙하는 현 정부의 기류로 볼 때 과연 국무회의 통과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들긴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산에 사는 시민 중 누구도 감히 3·15국가기념일 제정운동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있습니다. 만일 딴소리를 했다간 역적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마산에서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릴 수도?

엊그제, 마산에서 오랫동안 역사공부를 해온 지인과 술을 한 잔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도 국가기념일 제정운동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기념사업회 관계자에게도 해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그래도 되면 좋잖아?"라는 대답을 들었다더군요.

그렇습니다. '되면 좋은 일'을 굳이 되지 못하도록 했다간 욕 먹기 딱 알맞은 일이 바로 '마산의 3·15국가기념일 제정운동'입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홈페이지. http://masan315.net/


그러나 이는 분명히 좀 논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1960년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은 이미 '4·19혁명'으로 규정돼 그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놓고 있습니다. 저는 '4·19혁명'이라는 이 역사용어에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혁명이 4월 19일 하루에만 일어났던 게 아닌데, 굳이 그 하루의 날짜를 잡아 1960년의 시민혁명을 가리키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1919년 3·1운동도 그렇습니다. 마치 3월 1일 하루에만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보이는 이 운동은 기실 거의 1년여에 걸쳐 전국방방곡곡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독립만세운동입니다. 따라서 저는 3·1운동도 '기미독립만세운동'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4·19혁명도 1960년 3·4월혁명이라고 하든지, 1960년 반독재혁명 또는 민권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특정날짜를 갖고 역사적 사건의 이름을 붙이다보니, 3·15와 4·19가 사실은 하나의 혁명사건임에도 불구하고, 4·19와 별도로 3·15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월 15일이 혁명이 시작된 날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오히려 60년 민권혁명의 시발점은 2·28대구항쟁이 맞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대구시민들이 2월 28일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달라고 요구할 땐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3·15가 2·28보다 규모도 크고 희생자도 많았다고 주장할까요? 그러면 4·19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데, 뭐라고 할 건가요? 더 앞섰다고요? 앞선 걸로 따지면 대구가 더 앞섰지요.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http://www.228.or.kr/


사실 마산이니 대구니 따지는 것도 우습습니다. 60년 민권혁명이 대구와 마산, 서울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거든요. 3월 15일 마산시민이 봉기하기 이전에 대구는 물론 전구, 광주, 부산, 서울, 대전, 청주, 오산, 문경, 원주와 포항에서까지 시위가 일어났으니까요.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4·11을 김주열의 날로"

3월 15일 이후에도 마산뿐 아니라 진주, 진해, 성남, 부산 등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이후에도 거의 전국 곳곳에서 항쟁이 있었습니다.

이만열 명예교수.

그래서 저는 3·15를 이야기하면서 자꾸 '마산'을 강조하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물론 마산사람들이야 그렇게 하면 기분좋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역사적 사건을 특정 지역에 국한시키거나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자칫 고립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1일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마산에서 열린 김주열 열사 학술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했습니다.

이만열 교수는 경남 출신으로 마산고등학교를 나왔지만 현재 서울에 살고 계시는 역사학계의 어른입니다. 그래서 지금 마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께 지금 마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기념일 제정운동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교수는 "차라리 김주열 열사가 떠올라 전국적인 혁명으로 발전된 계기가 되었던 4월 11일을 한국의 엔지오가 '김주열의 날'로 정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에 앞서 국가기념일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마산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4월 19일이 이미 국가기념일인데, 그것과 같은 격으로 3월 15일을 또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은 전국적인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견해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지역에 사시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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