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주주의는 '기념'하는 게 아닙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4. 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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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른바 '○○기념사업회'라는 이름이 붙은 단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나 3·15, 4·19, 5·18, 부마항쟁·6월항쟁 등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단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그런 기념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기 위해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려면 행정기관의 비위에 거슬리는 내용의 행사를 피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 지원받은 행사는 종종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정작 '기념'해야 할 민주열사의 업적이나 정신은 뒷전이고, 돈을 지원해준 행정기관의 장이나 국회의원 등이 주빈이 되어 높은 단상을 차지하고, 민주열사의 업적은 그들 정치인이나 관료를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저는 종종 봐 왔습니다.

1960년 마산의 3·4월혁명에서 희생된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3.15국립묘지'.


뿐만 아니라 매년 진행되는 기념행사나 사업의 예산을 따내려다 보면, 거기에 도움이 될만한 유력인사들에게 단체의 이사나 고문 자리를 주는 경우도 흔한 일입니다. 따라서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정신을 훼손한 '반(反)민주적' 인물이 이사 또는 고문, 심지어 사무국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수십 년 전 3·4월혁명이나 부마항쟁, 6월항쟁에 참여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지금도 '민주인사'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 중 지금은 사람이 변하여 꼴통 보수인사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제강정기에도 초기엔 민족운동 진영에 있었지만, 말기에 친일로 변절한 이들이 수두룩한 것과 같은 겁니다.

그렇게 변질된 사람들이 수십 년 전 항쟁에 참여했던 무용담을 팔아먹으며 기념사업회에 이름을 걸치고 있는 걸 보면 혐오스럽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기념'이 아니라, 그 정신을 현실에서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념사업회는 '계승'보다 '기념'에 치우쳐 오히려 그 정신을 훼손하고 항쟁의 역사를 박제화시키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식의 기념사업이 진정으로 그 때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지원하며, 그 정신을 기리기보다는 그 단체에 이름이나 자리를 걸치고 있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안중근 의사 순국 99주년을 맞아 서울 효창원에 있는 안 의사의 가묘에 참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신문의 날을 맞아 신문사의 동료들과 함께 1960년 3·4월혁명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들의 묘역에 다녀왔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따라 그의 혁명정신을 따르고자 자발적으로 효창원에 모인 사람들.


특히 안중근 의사 가묘 참배는 <안중근평전>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의 제안으로 기념사업회와는 전혀 무관한, 그야말로 평소 안 의사를 흠모하고 그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평범한 시민들 14명이 참석했습니다.


그 때 참석한 14명은 그날의 인연을 계기로 올 10월 26일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중국 하얼빈 현장답사도 하기로 했습니다. 내년 순국 100주기에는 돌아가신 뤼순 감옥에도 가보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에 카페도 하나 개설했습니다. '안중근을 따르는 사람들' 이라는 카페입니다.

카페 대문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단지 안중근 의사를 흠모할 뿐 아니라 그의 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기존의 '기념사업회'들도 부디 박제화된 '기념'보다, 실천적 '계승'을 앞에 두는 단체로 환골탈태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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