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철도노조의 쉽고도 호소력있는 유인물

기록하는 사람 2009. 4. 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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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때 노동조합의 반대운동이 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이후엔 별 소식이 없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지난 3일(금) 대전에 출장 갈 일이 있어 마산에서 무궁화호를 탔더니 각 좌석마다 다소 특이한 유인물이 꽂혀 있었습니다.

유인물은 16절지 4페이지로 구성돼 있었는데요, 표지에 해당하는 첫페이지는 친근한 만화와 함께 "영어선생님께 수학을 맡기는 학교는 없다"는 헤드라인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누구나 호기심을 유발할만한 명 카피였습니다. 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전국철도노동조합 명의의 선전물이었는데요. 그동안 봐왔던 노동조합의 투쟁적 유인물과 달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카피와 만화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두번째 페이지입니다. "경찰이 철도 사장(?) 됐거든요~"라는 카피와 함께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제복을 입고 "제복이 비슷하잖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기관사 복장을 한 철도 직원이 "그럼 나도 방패 들면 경찰이냐?"라고 응수합니다. 이 역시 기발하고 절묘한 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는이마다 누구나 피식 웃음을 유발하는 만화였습니다.

같은 페이지 위에는 허준영 사장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전반의 잘못된 측근 인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과 경실련의 정책 설문조사 결과가 그래프로 깔끔하게 실려 있습니다.

3페이지입니다. 역시 낙하산을 타고 공기업 사장으로 내려오는 한 컷짜리 만화와 함께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이전 경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학교 후배이며,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한 TK 출신으로 현 정부 측근인 그는 경찰출신으로 공기업 경영이나 철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2005년 시위 진압 과정에서 농민 사망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인물이라는 것을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허준영 사장 뿐 아니라, 김해진 철도공사 감사와 이학봉 코레일유통 사장, 이기현 코레일 네트웍스 사장 등도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물들로 철도는 낙하산 천국이라는 걸 폭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4페이지 결론도 멋집니다. '공기업은 국민의 것'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시민여러분과 함께 낙하산 코드인사를 막고 국민의 철도, 공공철도를 지켜내겠습니다"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최종 마무리는 더 멋집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습니다"는 익숙한 카피 아래에 한국철도의 미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까지 수송분담율을 두 배로 늘리면 21조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매년 14만 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올바른 사람이 사장으로 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아주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굳이 노동조합의 유인물을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제가 지금까지 본 노동조합의 선전물 중 이처럼 간략하면서도 호소력있게 구성된 것을 일찌기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선전물은 화약냄새 나는 구호로 가득합니다. 유인물도 미디어입니다. 앞으로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단체에서 만드는 선전물도 이처럼 받아볼 독자를 고려해 쉽고도 명쾌하며 친근하게 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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