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길고양이랑 하룻밤 지낸 뒷얘기

김훤주 2009. 3.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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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고양이를 데려와 하루 재운 사연을 ‘길고양이와 하룻밤 지낸 우리 딸’(http://2kim.idomin.com/779)이라는 제목으로 15일 밤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16일 밤 9시 즈음에 “뒷이야기가 궁금하네요. 현지가 무슨 말을 했을까?” 댓글이 붙었습니다.

우리 딸 현지는 제 짐작대로 불쌍하고 어린 이 고양이를 데려온 14일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제가 들어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던 현지가, 이튿날은 초저녁에 잠들어 제가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때 저는 알아봤습니다만 하하.

현지는 이튿날 아침 7시에 고양이를 키울 친구를 만나러 나갈 작정이었습니다. 원래는 아침 9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상대 친구가 일찍 보고 싶다고 앞당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지는 잠들면 제 때 못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 자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양이 처음 데려왔을 때 사진. 두려운 기색이 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중요하게는, 하룻밤밖에 같이 지내지 못할 고양이가 아주 귀여워 자지 못한 측면이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현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아빠, 상자 속에 고양이를 보면서 놀았어요. 너무 귀여웠어요!”

“놀다가 그대로 뒀더니 ‘야옹야옹’ 울었어요. 그래서 상자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침대 위에 놓고 같이 놀았는데요, 그랬더니 소리를 안 내데요? 그러다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어요. 그러면서 고양이가 상자 안보다 더 넓은 데가 있는 줄 알았나 봐요.

현지랑 침대에서 놀고 있는 장면.

두려움이 없어보이는 그날 새벽 모습.


그래서인지 안에서 자꾸 우는 소리를 냈어요. 다시 끄집어내어 침대에서 같이 놀면 울지 않고요. 나중에는 집어넣었더니 벽이 높아서 나오지는 못하고, 벽에 앞발을 대고 자꾸 긁어 자글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상자에 손을 집어넣어 들 수 있게 구멍이 나 있잖아요. 거기에 내가 손을 집어넣었어요. 걔가 딱 바라보는 거예요. 그 때 처음으로 거기 구멍이 나 있는 줄 알았나봐요. 잠시 딴 데 보다가 다시 바라봤더니, 아 걔가 거기로 보고 있는 거예요!

상자 양쪽에 손잡이 구멍이 보이네요.

거기에다 앞발 두 개를 올려놓고 그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어 두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어요. 너무너무 귀여웠어요. 그래 내가 막 귀엽다면서 바라봤는데 그랬더니 걔가 손잡이에서 발을 빼고 상자 안을 뱅뱅 돌았어요.

고양이가 상자 안을 돌면서 계속 오줌을 쌌나 봐요. 처음에는 오줌인줄 모르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나중에 막 젖어서 밑으로 흘러나왔어요. 그래서 닦아 줬어요. 그래도 귀여웠어요.

햄도요 세 접시나 먹었어요. 처음에는 안 먹었어요. 그래서요 손에 올려서 줬어요. 그랬더니 핥아먹는데요, 그러다가 내 손까지 깨물었어요. 그래도 하나도 안 아팠어요. 물은 안 먹었고요, 햄에 묻어 있는 물로 충분했나봐요.”

이러는 사이에 새벽 6시가 다 됐습니다. 아침은 먹지 않고 세수만 하고 나갔습니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상자는 두고 나갔지만 고양이 녀석 추울까봐 나가면서 조그만 고양이를 수건으로 한 번 싸고 담요로 다시 싸서 가방에 담았어요.”

“숨이 막힐까봐 가방을 잠그지도 않았지요. 아예 처음 쌀 때부터 세로로 세워서 얼굴만 나오게 돌돌 말았어요. 그러고는 가방을 손잡이로 들지 않고 품에 안고 나갔어요. 추울까봐서요. 그런데 걔가요, 나는 추워 죽겠는데 그렇게 해서 자는 거예요!”

현지가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간 것은 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자기한테 고양이를 하룻밤 맡긴 친구 말고 다른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한테 그날 밤 전화를 했더니 보고 싶다 했답니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보여주려고 그리 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친구랑 만나서,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고양이랑 셋이서 놀았답니다. “꺼내니까요, 고양이가요, 추워서 또 ‘야옹야옹’ 하고 울었어요. 그래서 다시 넣어줬어요. 얼굴만 나오게 해서 보면서 ‘너무 귀엽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친구가 ‘왜 너 안 키우냐?’ 그랬어요. ‘벌써 딴 애가 키우기로 했다.’고 대답했어요. 친구가 고양이 주려고 소시지를 갖고 왔는데요, 너무 커서 먹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눠 먹었어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러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 버렸어요.”

좀 전에 현지가 찍은 사진을 보니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와 견줘서, 고양이가 많이 풀어진 것 같았습니다. 처음 사진은 좀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나중 사진은 별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지랑 친구들이 귀여워하니까 당연히 그리 됐겠지요.

지금은 조건이 좀 그러니까 당장 고양이 따위를 키우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차츰 조건이 되는 쪽으로 노력을 해서, 현지가 키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키우도록, 그러면서 같이 놀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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