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봄향기 가득한 할머니의 겨울초 비빔밥

기록하는 사람 2009. 3. 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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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에 이어 토요일인 어제(7일) 다시 마산 외곽의 진전면 곡안리에 사시는 황점순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전 기사 : 민간인학살 유족 황점순 할머니의 눈물

그날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저의 집요한 질문에 할머니는 "한약을 먹어보고 싶다"는 뜻을 비췄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마산 산호동에서 '이병직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병직 원장이 할머니를 진료해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민중의 소리> 구자환 기자를 꼬셔(저는 차가 없거든요. ㅎㅎ) 할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오전에 찍어두었던 뒤란의 겨울초 텃밭.


그냥 나오려던 저희들을 붙잡으신 할머니는 그동안 뒤뜰에서 정성스레 길러온 겨울초(冬草) 어린 순을 뜯어 비닐봉지 두 개에 가득 담았습니다. 오전에 겨울초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그 때 보니 할머니도 아직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아직은 뜯어 먹기에 좀 이른 감이 있는 여린 새순이었습니다.


겨울초 겉절이에는 파도 들어가야 한다며 마당에서 키운 실파도 한웅금씩 뽑았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간장을 사먹는다는 걸 아는 할머니는 직접 메주로 담근 간장 한 병도 내놓았습니다.

할머니가 황급히 뜯어 담은 겨울초 봉지와 간장.

아직은 여린 새잎입니다. 파도 있습니다.


집에서 저녁에 할머니의 겨울초와 간장으로 아내가 겉절이를 만들었습니다. 아내 말로는 "간장이 참 달고 맛있다"고 했습니다. 겉절이와 참기름을 밥에 넣어 슥슥 비벼 먹으니 그야말로 봄향기가 입안에 가득 찼습니다. 이게 바로 봄맛이었습니다. 아직은 여린 겨울초라 더 부드럽고 향긋한 것 같았습니다.


겉절이에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비기 직전입니다.

침이 고이지 않습니까?

입안에 봄향기가 가득 퍼집니다.


너무 맛있어 오늘 아침에도 아내를 졸라 역시 겨울초 비빔밥을 해 먹었습니다. 두끼를 연달아 먹어도 맛은 여전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입맛이 다셔질 정도입니다.


황점순 할머니는 열 아홉 살에 곡안리 성주 이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후, 스물 두 살 되던 1950년 남편을 국군과 경찰의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으로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달 후에는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상섭이를 미군이 쏜 총탄에 잃었으며, 자신도 온 몸에 총탄과 파편을 맞고 죽음의 구렁에서 기사회생으로 살아난 뒤, 평생을 혼자 살아오신 분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몸소 안고 살아오신 할머니의 겨울초를 이토록 맛있게 먹고 입맛을 다셔도 괜찮을 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죄송스럽네요.

※3월 9일 오전 10시 추가 : 참! 깜박했네요. 이 비빔밥은 된장 국물을 몇 숟가락 넣어줘야 더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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