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빙 필자의 글/하태영, 하마의 下品

형법학자가 되짚어본 피의자 얼굴공개 논란

기록하는 사람 2009. 3. 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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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법학부 하태영 교수는 형법학자다. 2008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형사철학과 형사정책>(법문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교수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학자이다. 사회가 대학교수를 지성인으로 대접해주는만큼 사회적 현안과 쟁점에 대해 '공공적 발언'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를 만났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쟁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블로그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 '지역에서 본 세상' 블로그를 통해 형법 학자가 본 정치·경제·사법·입법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로 했다.

카테고리는 최근 발간된 그의 책 제목을 따서 '하마의 下品'으로 했다. 이 글은 그의 여섯 번째 기고다. (김주완 주)

요약 : 우리 언론사들은 위하와 본보기(소극적 일반예방), 그리고 황색 저널리즘의 유혹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피의자의 얼굴과 신원을 지금 본다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언론은 정말 이성을 찾고 냉정해야 한다.

피의자 얼굴 및 신원 공개를 주장한 분들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얼굴 공개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헌법 제10조, 제17조, 제27조 제4항의 정신을 다시 새겨 보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합의 없이 언론사 자의적으로 결정한 사진 공개는 '전형적인 상업주의 저널리즘'이다. 이러한 보도는 헌법 위반이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위반한 인권침해행위이다. 따라서 경찰, 검찰, 그리고 법무부에서 협의 중인 '얼굴공개법' 추진은 그만 그쳐야 한다.

인간존엄과 인격권,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

하태영 교수.

2009년 1월 우리 사회는 연쇄살인범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범죄행위가 밝혀지고, 현장 검증이 진행되면서 피의자의 사진 공개가 논란이 되었다.

다수의 언론사들은 "피의자의 마스크를 벗겨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에서는 "공익의 가면을 쓴 사익의 언론"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몇 개 일간지(한겨레, 한국, 경향)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들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 헌법 제17조(사생활의 자유), 그리고 헌법 제27조 제4항(무죄추정의 원리)은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27조 ④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2005년 6월 2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수갑찬 피의자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경찰에 권고한 바가 있고, 또한 경찰도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피의자 신분 노출 금지 규정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발전한 것은 모두 언론을 통한 '인권 학살'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기자나 방송사의 특종 욕심보다는 개인의 인격권과 그 가족의 인격권을 더 소중하다. 이러한 가치를 우리 사회가 존중하고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공개 수배자의 사진과 피의자의 사진은 성격이 다르다

상업 언론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가 피의자의 인격권 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리는 수사와 재판의 수칙이지 언론과 일반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범죄 용의자의 사진과 신원을 공개하는 경찰의 지명수배제도와도 충돌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언론이 앞서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존엄과 인격권은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한다. 그리고 범인 검거를 위한 용의자 공개 수배는 그야말로 피해자의 인권이 공개 수배자의 인권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체포를 위해 불가피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과 정의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들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 이 경우 우리 헌법은 인격권 침해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개 수배자의 사진 공개와 이미 구속된 피의자의 사진 공개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피의자 비공개 원칙 허물면…그 부작용 감당할 수 없을 것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범죄자가 아니고, ① 연쇄살인범, ② 어린이 유괴 살인범, ③ 불특정 다수를 살상한 다중 살인범, ④ 반사회적 반인륜적 흉악범이고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 경우에만 공개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패륜범죄와 식품범죄 등 각종 범죄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될 때 공개 범위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참아야 한다. 한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인권 신장의 노력들은 물거품이 된다.

중요한 것은 각 언론사들이 "범인 공개는 언론사의 몫이다", "마스크를 벗겨라"라고 선동하는 것보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범죄자의 특징을 꼼꼼히 심층보도하고, 왜 이러한 범죄가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꾸준히 보도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고, 공익이며, 형사정책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보도 행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것은 우리 언론사들이 철학을 가지고 지켜야할 언론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자들은 적극적 일반예방을 말하지만, 이것은 그저 학계에서나 통용되는 하나의 이론일 뿐이고, 언론은 여전히 소극적 일반예방에 머물러 있다. 학자들은 그 파장 효과를 생각하고 장기적인 형사정책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언론사들은 독자들을 생각하고, 단기적인 형사정책에 관심이 더 많다. 물론 자극적인 것이 시원하겠지만, 그 여운을 짧다. 언론사들이 이점을 망각하고 있다. 원칙보다는 상황을 우선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1월 31일자 4면에서 강씨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미지 : 미디어스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 공개 실익 있었나?

법원도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집중 심리를 통해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법원에서 최종 확정 판결이 나면, 그때는 언론사가 사진을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이때는 각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피의자의 얼굴 및 신원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든, 아니면 얼굴에서 눈 부분만 테이프로 가리고 일부를 공개하든 그것은 각 언론사들의 보도철학에 따르면 된다. 참고로 외국의 정평이 있는 신문들은 1면에 이러한 사진들을 게재하지 않는다. 그 만큼 우리나라 신문들이 감정적이다.

상업주의 저널리즘, 헌법 정신 다시 새겨야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연히 연쇄살인범의 사생활도 존중되어야 한다. 확정판결 이후 그는 형사처벌을 받으면 된다. 더 나아가 피해자의 얼굴 공개는 아무런 죄가 없는 범죄자의 가족들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냉정하게 보면 그들도 피해자 일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공익이 아니라, 공익의 가면을 쓴 사익일 뿐이다.

우리 언론사들은 위하와 본보기(소극적 일반예방), 그리고 황색 저널리즘의 유혹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피의자의 얼굴과 신원을 지금 본다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언론은 정말 이성을 찾고 냉정해야 한다.

피의자 얼굴 및 신원 공개를 주장한 분들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얼굴 공개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헌법 제10조, 제17조, 제27조 제4항의 정신을 다시 새겨 보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합의 없이 언론사 자의적으로 결정한 사진 공개는 '전형적인 상업주의 저널리즘'(한겨레 21, 제747호, 33면)이다. 이러한 보도는 헌법 위반이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위반한 인권침해행위이다. 따라서 경찰, 검찰, 그리고 법무부에서 협의 중인 '얼굴공개법' 추진은 그만 그쳐야 한다.

글쓴이 :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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