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이 아름답다고?

김훤주 2009. 2. 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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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글은 언제나 저를 불편하고 아프게 합니다. 제가 제대로 앉아 있고 서 있고 생각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들어 불편합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일깨워 주기에 많이 아픕니다.

그이가 펴낸 책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76쪽도 마찬가지 저를 아프고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알퐁스 도데가 쓴 소설, 아름답게 기억되는 소설, ‘마지막 수업’(La derniere classe)이, 실은 지배를 미화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옮겨 와 보겠습니다. 단락 구분은 제가 임의로 좀 했습니다.

“여기(한국) 교과서에도 나오지요? 어떻게 가르쳐요? 어떤 교훈입니까? 그거 배우면서 동시에 같이 연상되는 게 일제시대에 우리 말을 빼앗겼던 일과 우리 말에 대한 소중함이죠. 일본에서도 똑같이 ‘마지막 수업’을 가르쳐요.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76쪽.


런데 ‘마지막 수업’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만 보불전쟁, 즉 프로이센하고 프랑스가 벌인 전쟁 때문에 알자스 지방, 스트라스부르 지방이 독일 땅이 되어서 그때까지 가르치던 프랑스 말을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되자 마지막 수업을 한다는 것이죠.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

그 전에는 그 지방이 어땠지요? 그 전에는 프랑스 말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모어인 알자스 말을 가르쳤습니다. 원래는 독일 말의 사투리라고 할 수 있는 알자스 말을 썼던 겁니다. 알자스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프랑스 말을 국어로 강요했는데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마지막 수업’의 진실입니다.

일제 때 일본 말로 가르치는 마지막 일본어 교사의 이야기로 읽으면 더 정확합니다. ‘이때까지는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 사람에게 일본 말을 가르쳐 왔는데 패전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일본 말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학생들도 이렇게 울고 말이에요. (청중 웃음)

이태 전 찍은 서경식 사진.

‘일본 말도 이제 마지막이다.’ 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대입하면 더 정확한 겁니다.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이 말이죠, 그 전 역사를 부정하면서 프랑스 말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장면으로 시작하니까 역사를 왜곡합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국민주의의 하나의 기능입니다.”

아주 충격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보니까 나도 그것을 조금도 미심쩍게 여기지 않고 그대로 따라 했구나, 알자스로렌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잘못을 저질렀구나…….’

백과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있었던 1871년 ‘프랑스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펴낸 소설집에 실린 작품’이라 돼 있었습니다. ‘모국어를 빼앗긴 피점령국의 슬픔과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도 덧붙여 놓았습니다.

제가 모르고 저질렀던 잘못은 또 있었습니다. 저는, 알자스로렌이 때로는 독일 땅이고 때로는 프랑스 땅이었던 데라고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 정체성이 무엇인지, 이쪽저쪽 바뀌면서 어떤 고통과 아픔을 겪었는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알자스로렌의 고통스러운 역사

우리도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 일제 식민지 통치를 겪었는데, 어떻게 이토록 그런 생각을 전혀 못할 수 있었는지, 저조차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제 무지를 탓하면서, ‘알자스로렌’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알아봤습니다.

9세기 프랑크 왕국의 중심지였고 17세기 초까지 여러 독립령으로 이어졌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종말과 프랑스의 강국 부상을 가져온 30년 전쟁(1618~48)의 결과 프랑스 땅이 됐다가,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지면서 프로이센으로 넘어갑니다.

원래 독일 계통 지역이었는데 20년 남짓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셈입니다. 바로 이 시점을 두고 알퐁스 도데가 ‘마지막 수업’을 썼습니다. 알자스로렌은 철 생산이 많았고 농업생산성 또한 높았답니다. 그래서 다툼이 더욱 뜨거웠겠지요.

그 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면서 프랑스로 귀속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다시 독일 땅으로 바뀌었으며 1945년 독일이 전쟁에 지면서 프랑스로 다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알자스로렌은 독일에 대해서도 동질감을 갖지는 않는가 봅니다.

독자적인, 알자스로렌이라는 것입니다. 독일 제국의 점령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었으며 프랑스의 동화 정책에도 크게 반발했답니다. 또 쓰는 언어도 독일 방언이라고는 하지만 말은 따로 ‘알자스어’가 있으며 글쓰기는 70% 남짓이 독일어로 한답니다.

지금도 알자스로렌은 대부분 독일어를 쓴다는데

그런데 2차 대전 뒤 프랑스가 알자스어(입말)와 독일어(글말)를 억압하는 정책을 써서 도시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그 사용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자스 주민들이 두 개 언어 사용 시민운동을 펼쳐 1982년에야 독일어 교육이 전면 되살아났답니다.

이런 사정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이리 알고서는 ‘마지막 수업’을 두고 “나라를 잃어본 사람만이 모국어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든지, “일제 식민 지배 아래에서 심훈 소설 ‘상록수’주인공들이 한글을 배워 주는 장면이 떠오른다.”는 얘기는 도저히 할 수 없겠지요.

‘마지막 수업’의 마지막은 이렇게 됩니다. 성당 큰 시계가 정오를 알립니다. 프로이센 병사들의 나팔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프랑스 말을 가르치던 아멜 선생님은 칠판에다 크게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라 씁니다.

알자스로렌의 억압받은 사정을 모를 때는 이 장면이 더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침탈을 정당화하는 소설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이제는, 조선 식민지에서 일본 사람들이 내지르는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로 읽힙니다.

김훤주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서경식 (철수와영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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