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김채용 군수님,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기록하는 사람 2008. 3. 2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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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편견이 있다. 골프장이나 공단 등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보는 태도가 그것이다.

기자들은 대개 '처음엔 어떤 타협도 없을 것처럼 반대하지만, 나중엔 결국 적당히 보상금 타 먹고 끝나겠지'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저렇게 격렬한 반대를 하는 배경엔 결국 보상금을 많이 타내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고 단정해버리는 기자들도 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환경파괴'니 '식수원 오염'이니 하는 것은 표면적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부 고참기자들은 자신의 그런 편견을 오랜 취재경험에서 얻은 지혜로 포장해 거들먹거리며 후배 기자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결국 보상금 타내려는 수작이라고?
 
물론 이들의 편견에도 일면적 진실은 분명히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반대운동이 그런 식으로 마무리돼 왔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경남도민일보

그러나 이 논리에는 주민-행정기관-기업 3자의 관계에서 주민이 일방적 약자이자 소수라는 근본적 진실이 빠져 있다.

당장 수백 명의 주민이 반대집회를 할 땐 다수인 것 같지만, 경찰과 행정공무원의 막강한 공권력과 법 논리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행정기관과 기업은 '지역개발'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찰떡궁합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러잖아도 약자인 주민들이 2대1의 일방적인 싸움에서 이길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지역개발'에 찬성한다. 예컨대 마산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수정만 주민들이 양보해야 하고, 의령군 전체의 발전을 위해 칠곡면 주민들이 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줄 모르는 원주민들은 '지역이기주의' 또는 '님비(NIMBY)'로 매도당한다.

문제는 그렇게 몰아세우는 사람들 역시 막상 자기에게 손톱만큼이라도 손해가 될 일이 생기면 죽기 살기로 싸울 거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세상인심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싸울 대로 싸우다 지치고, 밀릴 대로 밀린 반대 주민들은 막다른 상황에서 얼마 안 되는 보상금이라도 챙기고 포기해야 할지, 그것마저 못 챙기고 나가떨어져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답은 뻔하다. 결국, 그런 상황에선 보상금 한 푼이라도 더 챙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과 역학(力學)관계를 생략한 채 '결국 보상금을 노리고 반대했다'는 게 이른바 오랜 취재경험으로 단련(?)된 고참기자들의 논리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김채용 의령군수 /진영원 기자

앞서 잠시 언급했듯 지금 마산 수정만과 의령 칠곡면에서 주민들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엊그제는 의령 화정면 주민들도 골프장 반대싸움에 들어갔다. 또 창녕군 계성면과 장마면 주민들도 골프장 반대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양산 상북면에서는 보상금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 지역 모두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행정과 기업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2월 13일 120여 명의 건장한 공무원들이 주민설명회 장소를 원천봉쇄한 채 '번갯불 작전'을 펼친 의령군도 그렇고, 수녀와 주민들의 단식이나 천막농성에도 눈 하나 끔벅 않는 마산시도 그렇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아보고자 지난 18일 김채용 의령군수를 인터뷰했다. 김 군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입장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주민 배제한 주민설명회'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굽히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대화와 토론에 나서겠다고 한 그의 말에 한 가닥 위안을 삼아 기사를 썼다.

결국 이렇게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름 '고참기자'인 나보다 김채용 군수는 훨씬 노련했다. 기자 앞에서 '대화와 토론'을 강조한 바로 그날, 화정면에서 이번엔 주민들이 모두 돌아간 오후 6시30분 기습적으로 '날치기 설명회'를 감행했던 것이다. 기자들도 몰랐고 주민들도 몰랐다. 나와 주민들과 의령파견기자는 이렇게 당하고 말았다.

하긴 김채용 군수는 말단 9급에서 1급 관리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자 관선 남해군수와 의령군수, 경남도 부지사를 거쳐 다시 민선 군수에 이르기까지 '초 초 울트라파워 맹장'에 속한다. 그런 분에게 고작 지역신문 18년 경력의 풋내기가 덤볐으니 얼마나 '하룻강아지'였겠는가.

깊이 반성하고 반성하며 용서를 빈다. 몰라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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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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