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뉴튼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까닭

김훤주 2008. 12. 29. 10:12
반응형

저는 어린 시절에 그것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잡지에 심심하면 실렸던 내용입니다. 그러나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뉴튼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여러분도 무엇이든 예사로 여기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면 훌륭한 발견을 할 수 있다.” 만유인력은, 지구 중심에서 물질을 끌어당기는 힘이지요.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만유인력이 있든 없든 사과 열매가 가지에서 분리되면 하늘로 치솟지 않고 당연히 아래로 떨어지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것만으로 만유인력이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저는 이런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로 10대와 20대를 지났습니다. 선배들이나 어른들에게 물었으나 그리 당연한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타박만 듣기 일쑤였습니다.

30대에 들어서고 4년쯤 지난 96년 어름에 ‘드디어’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해답은 바로 뉴튼이 눈앞만이 아니라 멀리 지구 반대편 사과까지 봤다는 데 있었습니다.

영국에 있던 뉴튼은 눈앞 나무에서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러면서 뉴튼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쯤에 있는 사과나무도 아마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런 정황은 '어린왕자'가 한 때 살았던 소행성 B612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영국 사과가 아래로 내려간다면, 반대편 아르헨티나 사과는 반대로 위로 올라붙습니다. 또 적도에 있는 야자들은, 위도 아래도 아닌 옆으로 달라붙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만, ‘모든 물건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만고불변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낙하(落下)한 것이 아니고, 지구 중심으로 끌려간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크게 배웠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려면 가까이도 보고 멀리도 보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쪽도 보고 바깥쪽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팎과 원근을 다 보려고 나름대로 애는 쓰게 됐씁니다.

물론 그리 한다 해서 제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만(원래 제가 크게 놀도록 생겨먹지 못한 탓입니다요.), 보는 눈길과 생각하는 바탕은 조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멀리 겨울산을 봅니다. 겨울산은 가지가 앙상한 나무들만 주로 보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저 겨울산에 지금 푸른 풀 따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않고, 나무도 활동을 멈췄다고 착각을 합니다.

물기가 있고 바람이 세지 않거나 양지바른 땅에는 겨울에도 이렇게 풀들이 자랍니다.


가까이 집 뜨락을 살펴봅니다. 양지바른 데는 푸른 새싹을 내민 풀들이 수북이 자라고 있습니다. 마른 이파리 덤불을 이룬 곳에도, 덤불 아래에 풀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덤불이 추위를 가리기 때문이지요.

나무도 그렇습니다. 겨울을 나는 눈입니다. 꽃눈과 잎눈입니다. 이 눈들은 여름이나 가을 잎이 질 때 가지 끝이나 잎이 진 자리에 만들어집니다만, 그 모습은 대개 겨울이 돼야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딱딱한 비늘이나 보송보송한 솜털로 겹겹이 싸여 있는데, 내일 집안 뜨락으로 한 번 찾아나서 보시지요. 봄철 터뜨리는 꽃봉오리, 한여름 녹음 짙은 이파리, 그 둘을 합한 만큼은 아니어도 엄청 많은 눈들이 가지마다 마디마다 박혀 자라는 겨울나무들입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집안 뜨락을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신 다음에, 고개를 들어 멀리 겨울산을 보면 느낌이 전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삭막하기만 하거나 생명 활동이 모조리 멈춰버린 그런 공간은 아닌 것입니다.

“멀리 눈 쌓인 언덕 골짜기 비탈을 보면서도/ 반짝반짝 초록을 느낄 수 있을 테고/ 수풀을 감싸 돌고 골짜기를 훑어서/ 방죽을 뛰어넘어 웅웅거리며 내달리는/ 바람 속에서도/ 들풀들 일어서면서 내지르는/ 가녀리지만 씩씩한/ 아우성을 들을 줄 알겠지요.”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