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시골 부처님은 엉터리로 안내해도 되나?

김훤주 2008. 12. 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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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7일 아침 용선대에 올랐습니다. 용선대는 창녕에 있습니다. 소속은, 굳이 따지자면 관룡사입니다. 가야계 창건 설화가 있는 이 절은 원효께서 1000명 대중에게 설법을 했다는 곳입니다. 용선대는 이 절 대웅전 왼쪽 산길로 500m쯤 가면 나옵니다.

용선대는, 관룡사 뒷산 관룡산의 오른팔이 뻗어내리다가 왼쪽으로 살짝 품는 그런 자리입니다. 관룡산 오른쪽과 화왕산 왼쪽을 가르는 골짜기는 이름이 옥천(玉泉)입니다. 물이 많고 시원합니다.

용선대에는, 저랑 가장 친한 부처님 한 분이 계십니다. 고3 어린 시절, 커다란 상처를 입고 관룡사에서 두어 달 머문 적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절간 마당에서 바라보곤 했습니다. 솔 숲 위에 둥둥 뜬 채로 제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주셨지요.

용선대 부처님은 ‘석가여래’이십니다. 서지 않고 앉았으니 뒤에 ‘좌상’이 붙고,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었으니 ‘석조’가 앞에 붙었습니다. ‘석조 석가여래 좌상’이지요. 생김새가 경주 석굴사 본존불과 같다는 말을 듣습니다.

석굴사 본존불은 신라 전성기에 모셔졌고 용선대 석가여래는 조금 뒤에 모셔졌답니다. 그래서 조형미는 처진다는 말을 듣는데요, 그래도 모습이 아주 당당하십니다. 두 분 부처님 공통점 가운데 또 하나는 바라보는 방향이 동짓날 해뜨는 데라는 것도 있습니다.

동짓날 해 뜨는 데를 바라보시고 있는 저랑 제일 친한 용선대 부처님.


왜 하필이면 동짓날일까요? 동지는 해가 가장 짧은 날입니다. 말하자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이 됩니다. 그래서 옛적에는 이날을 새해 시작으로 봤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것은 태양력이고, 지금 설날은 태음력에 따른 것이라 하지요.

용선(龍船)은 무엇일까요?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본딧말입니다. 반야로 가는 용의 배쯤 된다고 보면 무리가 없습니다. 반야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 으뜸 지혜입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제법무아(諸法無我) 경지지요. 대중적 언사로 ‘열반’이나 ‘해탈’이라 해도 될 듯합니다.

그러니까, 용선대 석가여래는 용선을 타고 여러 대중과 더불어 반야 세계로 나아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기상을 나타낸 셈입니다. 오늘 찾은 까닭은, 가장 친한 이 부처님이랑 해돋이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제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제가 한 10분 늦었습니다. 200m쯤 가니까 나무에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용선대 닿기 전에 해가 떠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쉽지만 부처님 옆에서 나란히는 아니고 부처님 아래에서 돋은 해를 바라봤습니다.



제가 늦었을 뿐이지, 뜨는 해는 아무래도 좋고 곱고 아름답고 씩씩하고 거룩했습니다. 발길을 돌려 용선대에 올랐습니다. 용선대 부처님은, 해를 받으신 덕에 앞쪽이 밝고 환해서 더 크게 보였습니다. 저는 돌도 이렇게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다시 해를 바라봤습니다. 해가 비추인 쪽과 아직 해가 비치지 않은 쪽을 구분해 봤습니다. 멀리 병풍바위도 한 눈에 안겨왔습니다. 한 30분 머물다가 내려오려는데 문화재 안내 표지가 눈에 밟혔습니다.

멀리 병풍바위 쪽은 아직 해가 들지 않았습니다.

보물 제295호(국보 버금 문화재가 보물이지요.)라면서 이어지는 안내문의 끄트머리는 이렇습니다. “바로 뒤가 절벽인 것으로 보아 불상 위에 건물은 없었던 듯하며, 자리를 정하는 데에는 땅의 기운을 누르려는 신라 하대의 도참사상(圖讖思想)이 작용한 듯하다.”

제가 알기로, 잘못된 내용입니다. 가만 따져 읽어보니 다른 문장은 비문(非文)이네요. 다리를 ‘틀은’ 하체는, 도 우스꽝스럽고, 불상의 뒤까지 ‘표현’된 옷주름은 규칙적이며 평평하게 ‘표현’되었다, 도 학술적으로 아주 독창적인 ‘표현’이시군요.

먼저 ‘도참사상’인데, “땅의 기운을 누르려는”은 터무니없습니다. 배는 물이 있어야 갑니다. 화왕산과 관룡산 사이 골짜기에는 옥천이 흐릅니다. 용선이 출범하기 좋은 조건입니다. 용선대는 지형을 잘 활용했을 뿐이지 무엇을 누르는 그런 선택은 아닙니다.

“바로 뒤가 절벽인 것으로 보아 불상 위에 건물은 없었던 듯”도 엉터리입니다. 바로 뒤가 절벽인 것은 맞습니다만, 곧바로 커다란 바위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거기서 한 7~8m 뒤 즈음에 있는 바위에는 나무를 끼웠던 듯한 구멍이 파져 있습니다.

여기 작은 부처님은 요즘 들어 모신 것일 테고 100원 동전은 비교를 위해 제가 부러 두었습니다.


무엇일까요? 구멍 옆에는 나무든 쇠든 못이 들어갔음직한 조그만 구멍도 여럿 있습니다. 용선대 석가여래좌상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많은 이들은, 용선대 부처님 위에 닫집을 달아 올리려고 여기에 나무막대 따위를 끼웠으리라 여긴답니다.

닫집은, 절간 대웅전에 가면 부처님 위에 무슨 가마 같이 솟구쳐 달려서 존경하는 뜻을 나타내는 건축물입니다. 옛날 닫집이 있었고 없었고를 떠나, 언급조차 없으니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짐작건대 문화재청에서 연구도 제대로 않고 해치운 것 같은데, 서울 한복판 경복궁 안에 있는 구조물이라면 이리 허투루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시골 산마루 외로운 돌부처라 우습게보고 이랬으리라 여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부처님한테는 미안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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