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느닷없는 해고통보…노동자 7명의 눈물

기록하는 사람 2008. 12. 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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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5시 20분, 잔업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공장 화장실 입구 게시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7년째 자동차부품 포장공으로 일해온 김수경(45·가명) 씨도 무심코 사람들 틈에 끼여 게시판을 올려다봤다.

붙어있던 7명의 해고자 명단 중 자기 이름이 가장 크게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둔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내 배신감이 치밀어올랐다. 그 길로 반장을 찾아갔다.


"내가 왜! 하필 내가 왜 잘려야 하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반장은 말을 흐렸다. "사정이 그렇게 됐어요. 회사 사정이…."


이번엔 사무실로 상무님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상무님, 제발 3년만 더 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 애들 졸업할 때까지 3년만…."

엉엉 울었다. 하지만 상무 역시 회사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일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수경씨는 그날도 눈물을 훔치며 남은 2시간의 잔업을 마쳤다.

다음날인 토요일도 출근해 정상근무를 마쳤다. 공고된 해고일자가 30일이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했다. 떠날 땐 떠나더라도 한푼이나마 더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해고된 여성노동자들이 기자에게 사정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준비 중이다.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자동차부품업체인 ㅅ주식회사에서 수경씨와 함께 해고된 노동자는 7명. 그 중 2명은 남성, 5명은 여성노동자였다.

이들은 현재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1일 회사에 찾아가 정식으로 해고통보서를 달라고 요청했다. 회사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해고통보서 대신 '사직서'를 갖고 왔다. 거기엔 각자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서명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서명은 거부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강성진 조직국장은 "노동법에 정해진 해고회피 노력도 하지 않았고, 기준과 절차에도 중대한 하자가 있어 명백한 부당해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고된 이들은 당장 먹고 살 걱정 때문에 그날 이후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수경씨의 남편도 창원산단 내 한 외주업체에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수경씨보다 시급이 더 적다.

7년 근속한 수경씨의 10월 월급명세서에 찍힌 시급은 3916원. 하루 8시간 기본근무에 2~4시간 잔업을 더하고, 토·일요일 특근까지 해도 받는 돈은 120만~130만 원에 불과했다. 잔업·특근없이 개근하면 90만 원 정도. 그나마 작년까지 있었던 300%의 상여금도 올 연초부턴 없어졌다. 그야말로 법정 최저임금에 딱 걸리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직장이나마 남편과 함께 벌어 아들과 딸을 대학에 보냈다. 현재 공익근무 중인 아들은 내년에 복학할 예정이고, 딸은 2학년에 올라간다. 지금 수경씨가 직장을 잃으면 두 아이 등록금 마련도 어렵다.

이들의 10월 급여명세서. 7년 근속한 노동자의 시급이 3916원이다. 하지만 저임금이라도 이 공장을 떠나면 살길이 막막하다.


함께 해고된 정연옥(46·가명) 씨는 사정이 더 어렵다. 6년 전 남편이 급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숨진 후, 이 공장에 다니며 아들 둘을 대학에 보냈다. 하지만 혼자 번 월급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돼 큰아들은 군대에 갔고, 둘째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인 연옥씨의 해고는 청천벽력이다.

"작년에 공장에서 무거운 부품을 들다가 허리를 다쳐 한 달간 쉬었어요. 회사에서 산재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는 대신 공상으로 치료비를 대줬는데, 그 이후 눈치가 보여 아파도 아픈 척도 못하고 일해왔습니다. 그럼에도 근태 한 번 없었고, 몇 년 전엔 모범사원 표창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아침에 자르다니…."

역시 함께 해고된 김애경(46·가명) 씨는 "자동차부품을 포장하는 작업이라 허리를 다친 사람도 많고, 어깨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면서 "하지만 대부분 회사에 찍힐까봐 아픈 척도 못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애경씨 역시 남편이 의령의 한 중소기업 노동자로 둘이 벌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운 처지다.

이에 대해 이 회사 김 모 상무는 정리해고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리해고가 아니라 권고사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이 사직서를 썼느냐는 질문에 "아직 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데다, 수출은 아예 형편없고, 내수도 20%씩이나 물량이 급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며 "회사를 그만두는 일곱 명에겐 한달치 급여를 위로금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창원에 1·2공장이 있으며, 이들이 해고된 1공장에는 7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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