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주항쟁 팔아먹는 비겁한 글쟁이들

기록하는 사람 2008. 11. 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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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인간형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이지만, 안 그런 척 하기 위해 이상한 논리(사실은 궤변)를 내세우는 인간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른다.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 자체를 나무랄 순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 이익에 충실한 이를 일컬어 '성실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소위 사회지도층 내지는 지식인이라는 인간들의 위선적인 언행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논리와 명분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철저히 자신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인간들. 더군다나 글을 써서 대중을 깨우치거나 감화하려는 명색이 글쟁이라는 인간들의 이중적인 행태는 역겹기조차 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기자사회에도 그런 인간들은 있다. 기자가 취재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걸 '관행'이니 '인간적인 정리(情理)'니 하는 말로 합리화하는 부류들이 있다.

심지어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고급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는 둥 해괴한 논리에 이르면 그가 왜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부쩍 의심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그냥 '돈이 궁해서 받았다'고 하면 그 솔직한 태도에 동정심이라도 생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3.15의거기념사업회 홈페이지(http://www.masan315.net/).


얼마 전 우연히 [3·15의거 제47주년 기념 제23회 전국백일장 입상작품집]이라는 책자를 보게 됐다. 펴낸 곳이 '3·15의거기념사업회'와 '마산문인협회' 공동으로 되어 있었다.

3·15정신 부정하면서 3·15백일장 심사?

이상했다. 마산문협이라면 '3·15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이승만과 박정희·전두환 독재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던 이은상을 기념하기 위해 일관되게 그의 호를 딴 '노산문학관'을 짓자고 주장해왔던 단체 아닌가. 또다른 문인단체인 '경남민족문학작가회의'와 '경남시사랑문화인협의회'가 반대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노산'을 포기하지 않았던 단체였다.

심지어 '3·15의거기념사업회'가 2003년 7월 10일 "(이은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독재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을 쫓은 권력지향형 기회주의자의 속성을 보였다"며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을 때도 마산문협은 그 대척점에 서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이은상이 어릴 때 물을 떠먹었다는 '은상이샘'을 복원해 '3·15의거 기념비'와 나란히 세워둠으로써 '3·15정신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단체도 바로 마산문인협회다.

또한 '3·15의거기념사업회'가 2004년 4월 '은상이샘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인 2006년 마산문협은 "은상이샘은 현재의 위치에 엄연히 보존되어야 하며 우물에 대한 한치의 훼손이나 본 협회의 여하한 양보도 없음을 알려드린다"며 '분연한' 입장을 밝혔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3.15의거 기념비 옆에 복원된 '은상이샘'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이처럼 마산문협과 3·15의거기념사업회는 '3·15정신'과 '이은상'을 둘러싸고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단체다.

마산문협은 '은상이샘을 철거해선 안된다'며 문인들을 상대로 서명운동까지 했다. 가관인 것은 여기에 서명한 문인들의 명단이 '제23회 3·15의거 기념백일장 심사위원 명단'과 대부분 겹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일반부 운문 심사위원인 이광석·서인숙·오하룡은 물론, 산문 심사위원인 하길남·임신행·조현술이 그렇다. 또한 고등부 운문 심사위원인 김복근·이달균, 산문부 심사위원인 김홍섭·김현우·김태두·백종흠이 또한 그렇고, 초등부 심사위원도 대부분 그러했다.

더 이상 3·15를 팔지 마라

무릇 '3·15의거 기념 백일장'이라면 '3·15정신'을 되살리고자 마련한 백일장일 터다. 조현술 마산문인협회장도 백일장 입상작품집 발간사에서 마산의 정신을 '정의 정신'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정의가 마산의 정신이고 3·15의거를 이끌어간 주체정신이기 때문"이라면서 "정의 정신 계승을 위한 글짓기를 하였고, 3·15 정의 정신의 위대함을 글로써 표현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3·15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독재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을 쫓은 권력지향형 기회주의자(3·15의거기념사업회의 성명서)'인 이은상을 마산의 정신적 어른으로 세우려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3·15의거기념사업회의 정체성은 도대체 뭔지 묻고 싶다. 겉으로는 '노산문학관'에 반대하고 '은상이샘'을 철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이은상을 부활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단체와 손잡고 '3·15정신 계승'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극심한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마산문협 소속 문인들에게도 묻고 싶다. 정녕 그대들이 이은상을 그토록 추앙하고 싶다면, 이제 그만 3·15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떨지. 3·15를 팔아 이익을 취하고 폼도 잡으면서, 이은상도 놓치고 싶지 않은 당신들이야 말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명분과 이익을 둘 다 챙기려면 궤변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건 정말 비겁하다. 제발 좀 솔직해지자.

※이 글은 3.15의거기념사업회가 발간하는 연간지 [3.15의거]에 청탁을 받고 기고했으나, 게재를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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