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블로그 컨설팅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블로그를 하라

기록하는 사람 2008. 11.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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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한홍구가 엊그제 마산에 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를 위해서였다. 어쩌다가 우리가 다시 민주주의를 갈망하게 됐나 라는 탄식도 나올 법 하지만, 정작 내 관심은 딴 데 있었다. 앞으로 '진보 운동권'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그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서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촛불집회는 운동세력에 대중과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명박산성'만큼은 아닐지라도 운동세력과 시민들 사이에는 어떤 장벽이 놓여 있었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그 장벽을 넘어 소통해야 할 필요성이 별로 없다. 그러나 운동세력으로선 이 장벽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절절이 동감하는 말이다. 자, 그럼 운동세력은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사실 운동권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비운동권 대중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걸 두려워한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와 논리로 설득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권은 대중이 당장 힘들어하는 생활상의 요구에 대한 정책대안이나 해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딱'하고 이야기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운동권 '동지들'끼리 만나고 술마시고 이야기하는 게 편하다. 그래서 정권을 씹고, 조중동을 욕하고, 재벌을 규탄하고, 뉴라이트를 비웃는데는 능하지만 비운동권 대중이 왜 그들의 논리에 쉽게 동화되는지, 대중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대중과 운동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언어장벽

나는 어떤 글에서 △진보지식인들의 난수표같이 난해한 글쓰기 습성 △80·90년대에 읽은 맑스주의 철학과 사회과학 책 몇 권으로 이미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함 △판에 박은 성명서의 남발과 상투적인 기자회견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작은 쓴소리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함과 폐쇄성 △족벌 뺨치는 운동권 연고주의와 파벌 △자신도 없으면서 발표만 거창하게 하는 '뻥'치는 버릇 등을 운동권과 진보지식인이 스스로 쳐놓은 '언어장벽'이라고 정리해본 바 있다.

지난 25일 저녁 마산YMCA에서 열린 한홍구 교수의 강의.


나는 이런 운동권과 대중 사이의 언어장벽 해소를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로 블로그를 꼽는다. 블로그는 이미 지난 촛불집회에서 1인 미디어로 그 효용성이 입증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블로그를 모르거나, 알고도 활용하지 않는 운동권과 진보지식인이 너무 많다. 블로그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불법 펌질(스크랩)이나 개인 일기장 용도로만 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의 블로그는 영락없이 네이버에 있다. 명색이 진보라는 사람들이 인터넷업계의 삼성과 다름없는 네이버의 패권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몇 달 전부터 '블로그 전도사'를 자처하며 열심히 '파워블로거 양병설'을 주장해왔다. 시민기자의 시대를 넘어 블로거기자의 파워가 조중동의 왜곡보도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지난 촛불집회 때 확인했다. 장차 블로거기자들의 파워는 더 커질 것이고,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조중동에 맞설 파워블로거 1000명만 있으면 그들의 여론주도력을 꺽는 건 시간문제라고 본다. 나아가 향후 4년 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파워블로거 1만 명만 있다면 차기 대선에서 진보가 권력을 잡을 수도 있다고 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지역에서 서서히 대중과 열심히 소통하는 블로거 전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김대하의 '내가 꿈꾸는 세상'(http://kimdaeha.tistory.com)과 정부권의 '고블로그'(http://go.idomin.com), 김이춘택의 '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http://blog.daum.net/bomnalbam),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tistory.com), 이윤기의 '책 읽기, 세상읽기'(http://www.ymca.pe.kr), 이종은의 '발칙한 생각'(http://kisilee.tistory.com), 마산YMCA 아기스포츠단 선생님들의 '유아대안학교'(http://ymcaschool.tistory.com) 등이 대표적이다.

한홍구의 현대사 이야기를 블로그로 보고 싶다

운동권이 블로그를 하면 일단 내 생각과 주장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관심지수를 알 수 있다. 또 어떤 주장이 어떻게 전달될 때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는지도 알 수 있으며, 대중이 어떤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악플에 대한 답글을 달면서 적대적인 상대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를 깨우칠 수도 있으며, 그동안 내 언어가 얼마나 비대중적이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글빨도 있고, 지식도 있으며, 실제 많은 글을 생산하고 있는 분 중에서도 유독 미디어로써 블로그의 효용성을 모르는 분들은 여전히 많다.

한홍구 역시 진보지식인 중에서도 글을 참 쉽고 재미있게 쓰는 분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수두룩한 민간인학살 암매장 터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라고 표현한 것이나 '멸균실 수준의 학살'이라는 표현 등은 너무 절묘해서 나도 자주 인용하는 문구이다. 그런 그가 블로그까지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장벽을 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라면 쉽게 설득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도저히 바빠서…. 이메일도 열어보기만 하고 보내지는 못해요."

홍세화(http://blog.hani.co.kr/hongsh)와 박노자(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우석훈(http://retired.tistory.com), 정운현(http://tamin.kr) 등을 예를 들며 열심히 설득한 결과 "강연을 좀 줄여봐야 겠다"는 대답까진 얻어냈다. 메일 주소도 받았으니 티스토리 초대장도 보내봐야 겠다.

과연 그의 재미있는 현대사 이야기를 블로그에서 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사 - 10점
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으로 쓴 글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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