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한국에서 지방은 '내부식민지'다

기록하는 사람 2008. 11. 21. 09:50
반응형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로 서울을 제외한 전국이 '좀' 시끄럽다. 전국 각지의 지역신문들도 이에 대한 지역민의 반발을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딱 이 정도뿐이다. 아무래도 구체성이 약하다.

그동안 수도권의 어디 어디가 어떠한 규제를 받아왔는지, 이제 와서 그걸 왜, 어떻게 푼다는 것인지, 풀면 장·단기적으로 서울과 수도권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고, 그 외 지역에는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당장 규제가 풀리면 우리지역에서 떠나려하는 기업들은 얼마나 있는지, 그렇게 되면 나와 내 자식에게는 어떤 손해가 올 수 있는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남은 어떤 절차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외국에선 어떤 수도권 정책을 쓰고 있는지…, 그런 걸 세세하게 알기 쉽게 풀어주는 보도는 보지 못했다.

눈으로 윙크하며 입으로 호통치는 국회의원
 
항상 이런 식이었다. 혁신도시 문제도 그랬다.

이게 잘못되면 반란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반쪽이 난 지금 지역은 너무 조용하다. 아마 전면무산이 되어도 잠시 반짝하다 그냥 넘어갈 것이다. 한나라당 쪽 사람들이 나서지 않을 뿐더러 진보 쪽에서도 그런 일로 데모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준만 저, 지방은 식민지다.

지금 '좀' 시끄러워 보이는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위기 느낀 정부, 지역달래기 나섰다'는 류의 기사를 보면 그냥 쓸쓸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기 전에 요리조리 얼르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시·도지사나 지방의회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땐 그저 허공에 주먹 한 번 내지르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표는 지역구에서 얻어 당선됐지만, 가족은 모두 강남에 있는 국회의원들도 유권자들 눈치 때문에 한 눈으론 윙크하며 입으로만 호통치는 모양새다.

이런 열패감에 젖어있던 상황에서 <지방은 식민지다>(강준만 저, 개마고원)는 책을 봤다. 제목이 도발적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경남도민일보>에 난 책 소개 기사에서 내 글이 이 책에 인용돼 있다는 내용을 보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산 책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정신이 번쩍번쩍 들기 시작했다. 우선 나부터 지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시·군·구청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 문제만 봐도 그렇다. 솔직히 그동안 나도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진보정당마저 이를 정당정치, 책임정치의 기본요건이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헷갈렸던 것이다. 하지만 강준만은 이를 '지방자치'가 아닌 '중앙의 신탁통치'라고 명확히 정리해주었다.

또 아직도 지역의 우수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전략'이라고 우기고 있는 데 대해 '내부식민지 근성에 찌든 추태'로 규정하고, 서울에서 권력의 줄을 만든 뒤 지방으로 내려오는 이른바 '금의환향(錦衣還鄕)파'에 대해 "이젠 제발 나라 걱정하는 분들이 나라 걱정 좀 그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걱정부터 하면 좋겠다"고 꾸짖는다.

그는 이른바 개혁·진보운동 한다는 사람들도 권력투쟁과 인정욕구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그는 "입만 열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왜 세상을 바꾸는 일마저 '위에서 아래로' 방식에 의존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이제 개혁·진보운동은 기존 권력투쟁의 패러다임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처럼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왜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전 대통령 후보의 지방분권 정책이 보수정당보다도 더 뒤떨어졌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환경제국주의'를 아시나요?
 

강준만 교수. /새전북신문

심지어 그는 환경운동의 중앙집권적 시각에 대해서도 비판을 망설이지 않는다.

"한국의 가장 큰 환경문제도 '서울공화국' 체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환경운동가들은 이걸 문제 삼지 않은 채 오로지 지방만 문제 삼는 이상한 일을 하고 있다. 자신들도 수도권에 살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운동가들의 그런 문제가 '제국주의적 환경보호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환경제국주의란 "죽어도 서울을 떠날 뜻이 없는 서울시민이 1년에 한두 번 지방의 시골을 찾아 자연을 만끽하면서 '개발이 한국을 망친다'고 외쳐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강준만은 외친다. "지방엔 물고기와 음식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도 살고 있다."

그가 이처럼 환경운동과 진보를 거침없이 까는 배경에는 "지역모순이 한국사회에서 독자적인 사회모순일 뿐만 아니라 계급모순을 압도하는 주요한 사회적 모순"으로 보면서 나아가 '내부식민지' 문제를 기준으로 '진보'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역모순'을 드러내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중소기업신문광고기금' 신설, 국무회의에 시·도지사 순서별 참석, '방송의회' 구성, 통계의 활용 등 수많은 제안도 내놓고 있다.

따라서 그의 '지역모순론'과 '내부식민지론'에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역신문·방송에서 일하는 기자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읽다보면 기삿거리나 시민운동의 아이템이 될 만한 것도 곳곳에 널려 있다.

강준만의 저서들이 대개 그렇듯이 방대한 인용과 주(註)를 통해 지방자치와 분권에 관한 주요 이론가와 논객의 논의와 주장들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나라의 '지역모순'을 더 깊이 파헤쳐봐야 겠다는 의지가 팍팍 생길 것이다. 부디 이 책을 계기로 적어도 한 지역신문에 한 명씩 정도는 '지방자치 전문기자'가 생겼으면 좋겠다.

※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 기고한 글을 약간 다듬었습니다.

지방은 식민지다! - 10점
강준만 지음/개마고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