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70 노인이 말하는 빨갱이의 정의

기록하는 사람 2008. 11. 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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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를 발굴해온 경남대 이상길 교수를 인터뷰해 "뼈에 무슨 이데올로기가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 또 '빨갱이' 운운하는 비방이 올라왔다.

그 포스트뿐 아니다. 과거 독재자를 비판하거나 은폐된 역사를 들춰내는 글을 쓰면 영락없이 '빨갱이'니 '좌빨'이니 하는 악플이 붙는다.

놀라운 것은 그런 댓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를 붉은 늑대로 표현했던 냉전 교육을 받지도 않은 젊은 세대가 아직도 그런 말투를 쓰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레드컴플렉스가 얼마나 뿌리깊은 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들이 정말 빨갱이가 뭔지나 알고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사상 자체로 볼 때 사회주의는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것이다. 다만 자본주의 국가에도 수많은 독재자와 학살자가 있듯, 사회주의 국가에도 그런 잘못된 권력자들이 있다는 게 문제일뿐.

얼마 전, 경남 함양군의 한 산골마을에서 올해 일흔 한 살 되신 어른을 만났다. 그 어른으로부터 '빨갱이'가 뭔지,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들었다.

좀 길긴 하지만, 빨갱이가 뭔지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빨갱이 운운하는 댓글러들이 꼭 좀 이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사투리가 많이 섞였지만 생생한 말투 그대로 정리했다.

할아버지의 인터뷰는 이 '아랫방'에서 진행됐다. 가마솥과 뒤주가 눈에 띈다.



한 노인의 증언 "그게 빨갱이요, 말하자면 그게 빨갱이라"

-대처, 그 당시는요. 참 주사들은 잘 모를끼요마는, 해방 직후 이 골짝 토지가 전부 다 부자 몇몇 사람 토지요. 그래갖고 전부 다 농사 지어가지고 지주들, 논 주인 말이요. 그때 도지(소작료)가 한마지기에 보통 한 섬이라. 그럼 수확은 얼마나 나느냐. 한 섬 쪼금 더나고, 두 섬 난다쿠모는 농사 참 잘 지은 농사고.

그리 살다가 해방이 척 되고 나서 어쩌는 게 아니라, 공산주의, 있는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분배한다 그리됐었소. 이북의 정치가.

그런께능 전부다 그 정치가 좋다, 이리된기요. 군 치고도 부자집 그저 한 몇몇 사람 제외하고는 전부다 그 정치가 좋다. 이래가지고 전부 다 깃발 들고 가고 만세 부르고 뭐 이래샀소.

그때 그러나 그 당시에는 경찰이고 누구간에 간섭을 안했소. 우수수하게 해방직후 이래산께 이기 좋은가 저게 좋은가 경찰이든 누가 알끼요.

그러다가 차차 세월이 가니께능 우짜능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제. 대한민국을 미국이 잡고 있고, 이북을 소련이 잡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기요. 그래가지고 통일하겠다고 서로가 이래 샀고, 되나요? 뿌리를 벌써 미·소가 딱 잡고 있는데?

그렁께능 어쩌는 게 아니라, 그 때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 뭐 초대국회 출마되고, 이래갖고는 안되겠다, 질서를 잡아야겠다고 해가지고, 저 좌익에, 이북에 머리를 쓰는 사람 전부 다 체포를 해라 이렇게 된기요. 잡아들이라 지서로.

잡아들일께능, 사실상 그 사람들이요, 무신 죄가 있나요. 이기 좋다 저기 좋다, 아니 사실상은 그리 못먹고, 있는 사람의 종질하다가 농사 지어갖고 거기 바치고 하다가, 아니 공평하게 갈라먹자는 그 정치가 좋다 카는데 누가 반대할끼요 말이제.

그런께능 이게 안되겠다 이래 가지고 좌익에 머리 쓴 사람 체포를 했소. 경찰에 잡아들였어. 잡아들이니 어쩌는게 아니라, 그때 머리 박힌 사람은 산으로 튀었소. 안 잡혀 갈라꼬. 그게 빨갱이요 말하자면. 그게 빨갱이라.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나가 가지고는,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요. 내나 먼데 사람도 아니라 지방 사람이라, 지방 몇몇 사람이라. 와 가지고 밥 좀 도라. 내나 아는 사람들이요. 밥 좀 도라 이러카먼 밥 안주고 어쩌요.

그때는 인제 밥을 안주게 되면, 그 사람들 말 안듣게 되면 반동자다 이래가지고, 반대에 움직인 사람이다, 반동자다 이래가지고, 그 사람에겐 인자 행패를 주는기요. 그런께는 밥 도라 카는데, 뻔히 아는 사람이, 밥을 주는기요.

밥 주고 나면은, 그 차차 법이 좀 쪼아드는기요. 지서에서 밥을 주면은 지서에 와가지고, 보고를 해라, 보고를 안하면은 또 보고를 안한 법으로 걸리는기라. 그러니 보고를 하는기요. 보고를 하면은, 지서에 가면 뒈지게 맞는기요. 그마.

밥은 몇 번 줬느냐, 빨갱이 심부름 몇 번 했느냐, 두들겨패면, 매에 장사 없다고, 그 사람들에게 밥을 한 번 줘도 열 번 줬지 이러쿠먼 아이고 줬지요. 매에 못이기니 어쩨야.

그리 하는 세월이 한 몇 개월 흘렀어요. 여기 사람들이 처음에 가서 그리 맞고 와가지고, 인제 한 며칠 고생하다 살아나고, 또 한 일 이개월 흘렀던가 몰라, 또 한 사람이, 그 사람들이 밥을 해달라 해서 주고, 또 지서에 가서 보고를 하는기요. 또 두들겨 팬거야. 밥은 몇 번 해줬느냐, 양식은 얼마나 줬느냐, 그 사람들 심부름 얼마나 했느냐, 두들겨 패니까, 그 당시에는 몇 번 했지 하면 고마 예예, 저거들 말 하는대로 예예 하는거여. 두들겨 맞으니까.

두 번째 갈 때 지서에서 너거 동네 젊은 사람들이 30대 미만이 몇이나 되노. 그래 몇 명 될끼다 하니 이름을 다 적고 실컷 두들겨 패고 보내 준거요.

한 세 번째이거거마. 세 번째, 그때 날이 비음하게 샜어 음력 윤칠월이니까, 아 동네를 순경들하고, 그때 강청단이라고 있었어, 민간인이 말하자면 관에, 말하자면 협력 주동자라 할까, 뭐 움직이는데 협조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강청단이라고.

-대한청년단 말하는 겁니까?

-하모. 하모. 그 사람들하고 와 가지고 동네를 포위해가지고, 우리는 그때 어렸으니까, 눈비비고 일어나니까 총소리가 한 서너번 나더니 호각소리가 막 여기저기 나고 그래. 그러다가 동민을, 젊은 사람을 싹 집합시키는거요. 집합시켜가지고는 호명을 불러요. 호명 불러가지고는 착착 엮는거요.


-엮었다는 건 손을 묶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제. 그때는 포승줄도, 포승줄이 그리 있는가. 한 사람이 그 가운데서 자기 처족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가고 없었었소. 없으니 그 사람 부인을 데리고 간거요. 그 사람 대신. 그래 가가지고 참, 오래도 안걸렸어. 삼일만에 그만 전부 다 죽었어.

이렇게 하여 30호 남짓한 그 동네에서 모두 열 일곱 명이 빨갱이 누명을 쓰고 국군에 의해 학살됐다. 함양군 수동면의 한 마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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