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나는 한라산보다 도들오름이 좋다

김훤주 2008. 11. 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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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9일과 10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도를 갔습니다. 하지만 한라산은 발치에도 가보지 못했고 구름까지 어스름하게 어려서 그 장한 모습을 멀리서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나중에 제주시 도두항 옆 도들오름에 오른 뒤에는 아쉽지 않았습니다. 도들오름은 높지 않아서 동네 뒷동산쯤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고마운 벗 문용포가 길라잡이를 해 줬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무엇은 아니었고 높이가 50미터도 채 안 되는 여기를 오르면서 몇 마디 말을 던졌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제주도에 한라산밖에 화산이 없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름 하나하나가 죄다 화산의 자취지요. 용암이 이래저래 끓어오르면서 쌓인 지형이라는 얘깁니다.”

“오름이 곳곳에 있는데, 도들오름 같은 오름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높이가 낮아도 값어치가 있어요. 바다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지요.”

도들오름 바로 옆에 있는 도두마을 풍경. 밭에는 이렇게 콩이 심겨 있었습니다.

“여기 오름은 지역 주민들 삶터이기도 합니다. 옛날 제사 지내던 곳도 여기 안겨 있고요, 할머니들 노는 터도 이 오름이 품고 있어요.”

도들오름 꼭대기 앉은 자리에서 본 왼쪽 바다. 사진이 좀 흐립니다.

“일제 시대 여기 도들오름 마루를 깎아 내렸습니다. 원래는 뾰족했는데 지금은 뭉툭합니다. 커다란 물탱크를 설치해 제주 시내에 수도를 공급하려는 것이었지요.”

도들오름 꼭대기 앉은 자리에서 본 가운데 바다 풍경.

제주도 토박이답게, 저는 전날 뒤풀이로 마신 술 때문에 어질어질한데도 문용포는 이렇게 주섬주섬 잘도 주워섬겼습니다. 그러면서 올라가 보니 사방이 탁 트여 있었습니다.

도들오름 꼭대기 앉은 자리에서 본 오른쪽 바다. 뭍이 바다와 맞서지 않고 서로 안겨드는 느낌입니다.

“도들오름은 제주도 너른 바다랑 한라산 장한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당입니다. 뒤로는 한라산! 나머지 3면은 바다!”

2.
그랬습니다. 3면이 바다고,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안 보였습니다. 자기는 여기 자주 온다고 했습니다. 한참 앉았다 가곤 하는데 그러다 사귄 어린 친구가 있다 했습니다.

“요 옆 초등학교 다니는 여자아이 둘이에요. 여기 마루에서 종종 마주쳤는데 물었더니 5학년이라더군. 뭣 하러 오느냐 물었더니 여기 와 앉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데요.”

그래 저는 조금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 비슷하게 소리를 내면서 “어린 아이들이 무슨……” 이랬어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용포는 빙긋 웃으면서 말을 받았습니다.

“왜, 아이들이라고 마음 상할 때가 없겠어요? 어른이랑 다를 바 없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는 제가 실수한 줄 바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표현은 안 했습니다. 술기운이 좀 남아 있었고, 또 부끄러웠거든요.

3.
그렇습니다. 옛날 어린 시절, 저도 생각해보니 이 친구들이랑 같은 나이인 국민학교 5학년 때 혈혈단신으로 감히 가출을 결행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도 넘기지 못하기는 했지만요.

제가 집을 나갔으나, 어머니는 제가 집 나간 줄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밤이 깊어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 말고는 딱히 갈만한 데가 없다는 사실을 이 때 비로소 알았지요.

그래도 민망하잖아요? 처음에는 집 근처에 와서도 구석에 숨어 있다가 나중에는 일부러 어머니 눈에 띄도록 해서 귀순한 적이 제게도 있습니다. 허기진 저는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작은 문제들이, 그 때는 엄청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엉뚱해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저는 사람도 언젠가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날 수 있이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사람은 왜 날 수 없을까?’에 이어지는, ‘사람은 왜 꼭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될까?’ 이런 고민도 있었습니다. 실험을 하느라 밥 먹지 않으려다 어머니한테 호되게 맞은 기억도 있습니다요. 하하.

또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숨겨놓은 그림이나 글들, 아끼는 책이나 정성껏 필기한 공책, 저만 아는 자취를 새겨넣은 연필이나 책받침  따위를 어머니 아버지가 함부로 여기는 데 대한 불만도 있었습니다.

형에게서 물려받지 않고 떨어지지 않은 새 옷을 입고 싶다는 바람은 언제나 꺾이게 마련이었고요, 동네 친구나 형들하고 관계에서도 고충은 많았습니다. 좋아했던 여자애나 누나에 대해서는 말도 못할 정도였지요.

4.
문용포는 이런 아이들 세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가 어릴 때 간직했던 아이들 세계를 잊지 않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마음이 차분해진다 할 때 바로 알아들었지요.

저는 문용포를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똑같은(어쩌면 어른보다 더한) 무게로 인생을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그동안 까먹어 버린 명제를 일깨우는 보람까지 더불어 얻었습니다.

그래서요, 앞으로 제주도에 더 가게 되더라도 저는 한라산보다 오름이 더 좋고 또 오름이 먼저 떠오르고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도들오름서 한꺼번에 바라본 세 가지 바다 풍경이, 그 때마다 생각나겠지요.

김훤주

※ 오늘(4일) 아침에 ‘제주도서 만난 어린 삶의 무게’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글에서 주제를 바꿔 새로 썼습니다. 아침에 서둘러 올리다 보니 말하려는 바가 흐트러지게 됐고 이를 저녁에야 뜯어고쳤습니다.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문용포와 곶자왈 작은학교 아이? (소나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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