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촛불’이 없었다면, 올 한 해가 쓸쓸했겠다

김훤주 2008. 11. 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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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없었다면, 올해가 참 쓸쓸했겠다.’는 생각이, 어제 10월 달력을 뜯을 때 문득 들었다. 오늘 바깥에 일없이 나가 시를 읽었다. 참 평소 하지 않는 짓인데……. 나는 고은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은이 쓴 ‘촛불 앞에서’가 있다. 좋아하는 시는 아니지만, 마지막 연은 울림이 있다.

1.
“한 자루 촛불 앞에서/ 우리는 결코 회한에 잠기지도 않거니와/ 우리는 결코 기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는 오늘과 오늘 이전/ 그 누누한 시간 뭔가를 놓쳐버리고 있지 않은가/ 촛농이 흘러내리자/ 한층 더 밝아진 촛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한층 더 밝아진 촛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놓쳐버리지 않았는지. 우리를 제대로 비춰 봤는지. 올해 촛불은, 사회학으로 말하자면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였으며, 문학으로 말하자면 ‘설운 한숨’이었다.

2.
김남주는 ‘자유’를 피로 썼다고 나는 안다. 김남주에게 자유는 그런 존재였다. 세 번째 연이다.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누어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이어지는 4연과 5연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민주주의여 동포여 외쳐 대면서도/ 속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그이가 죽지 않았고 살아 있다면, 촛불 잦아든 지금쯤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반드시 꼭 그렇게만 보지는 않아도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는지 모르겠다. 김준태가 1980년 6월 2일 발표한 시 ‘참깨를 털면서’다.

3.
전문(全文)이다.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전남매일에 발표되고 나서 김준태는 다니던 학교에서 해직됐고 신문은 폐간됐다. 1980년 5월에, 전두환 일당이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직후 일이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해 낼 수 있다.

4.
이쯤 되니까, 최영미가 1994년 발표한 시 ‘선운사에서’ 첫 연과 마지막 연에 눈길이 끌린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해 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이제 다 끝났다, 그것도 잠깐 사이에.

그래도 끝까지 한 번 터벅터벅 가 봐야지. 마지막 연이다.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설운 한숨, 눈물 같은 촛농. 올해 이렇게 우리가 추억할 수 있는 촛불조차 없었더라면, 지금 아주 미치도록 쓸쓸해져 있겠다는 생각이, 이 여자 시를 읽고 나니 더욱 커진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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