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아들 장례일도 근무하신 그 분

김훤주 2008. 10. 2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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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제가 아는 한 분이 아들을 잃으셨습니다. 뇌출혈로 머리를 다쳐 쓰러졌는데, 병원 중환자실에서 되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한 주일만에 산소마스크를 떼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40대 초반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내 한 분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유족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어디 제조업체에서 직장 생활을 했나 봅니다. 제가 아는 그 분은 산소마스크를 떼는 날 오전에 아들 임종을 했습니다.

점심 때 얘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참 안 되었습니다. 천붕(天崩)이라는 말, 아십니까? 어버이가 세상 떠났을 때 이 말을 쓴다지요. 하늘(天)이 무너지는(崩) 듯하다고…….

어느 죽음이나 슬프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굳이 그 크기를 견주면 어버이보다는 자식의 죽음이 더 할 것입니다. 자식이 죽었을 때 어버이의 심정을, 저는 차마 말로 나타내지를 못하겠습니다.

2.
조합원 총회를 마치고 오후에 장례식장에 들렀습니다. 노조서 보낸 화환을 스쳐 들어가서는, 처음 보는 영정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습니다. 조의금 내고 돌아서는데 그 분이 나와 계셨습니다.

웃으시면서 제 손을 잡고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되풀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다른 말을 드리지 않았다면 계속 그러고만 계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십시오.” 하는 말씀밖에 못 드렸습니다.

뭐라도 좀 먹고 가라는 손길을 저는 애써 뿌리쳤습니다. 더 있으면 더 슬퍼질 것 같았습니다. 제 아내도 같은 부위 뇌출혈로 쓰러져 있기에, 이른바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자꾸 자라면 대책도 없다, 싶었습니다.

3.
제가 아는 그 분은, 24시간 맞교대로 경비를 서는 일을 하십니다. 그 분이 저녁에는 다시 일터로 오셔서 밤샘 근무를 하셨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임종 등을 위해, 일해야 하는 낮에 잠시 짬을 낸 셈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 대단하시다, 이리만 여겼습니다. 아들을 잃어 슬픔이 클 텐데도 장하시네, 이런 생각이었지요. 한편으로는 경비업체가 너무 한다, 아무리 대체 인력이 없어도 그렇지 저리 할 수가 있나, 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이틀 뒤 아들 상여가 나가는 날에도 그 분은 오전에 잠깐 장례식 다녀오셨을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임종을 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밤샘근무를 하신 것입니다. 오후에 뵈었는데, 근무하시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는 품이 잠깐 조시는 것 같았습니다.

들어가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만 잡았더니 이번에는 “어쩌겠습니까. 운이 그것뿐인데……” 하셨습니다. 그 분은, 지난해 제 아내 다쳤을 때 걱정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리 되다니 안 될 일이요, 안 될 일이요……’ 저는 그 분 건강이 걱정됐습니다. “집에 가 좀 쉬셔야죠.” 했더니 힘없이 웃으시며 “괜찮습니다.” 하셨습니다.

4.
이런 나날이 이제 한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 분이 아들 숨 거두는 날과 출상하는 날 모두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와 근무하도록 한 경비업체를 두고 별로 좋지 않게 여겼던 생각이 슬며시 사라졌습니다.

무슨 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도 겉으로도 탓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 분이 감당했어야 할,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막막했을 그 날 밤 풍경을 짐작해 봤을 뿐입니다. 홀로 감당했어야 할 그 막막함, 미칠 것 같은 그리움, 밀물처럼 덮쳐오는 후회…….

그래서 저는, 무너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수단으로, 혼자서 하는 24시간 근무를. 일부러 선택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천붕(天崩)보다 더한 슬픔과, 괴로움과, 애달픔의 엄습을, 조그만 경비실 창문과 벽과 지붕을 방패삼아 막아내셨으리라 그리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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