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삼성 야구가 지기를 바라는 까닭

김훤주 2008. 10. 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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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를 속으로는 많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는 삼성라이온스가 많이 이기기는 바라지를 않습니다. 아니 바라지 않는다기보다는 크게 싫어합니다.

왜냐고요? 삼성이란 존재 때문입니다. 삼성은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해결된다고 여기는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서 본다면 삼성은 괴물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을 거의 완벽하게 자기 손아귀에 잡아넣고 있습니다. 지난해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그야말로 겉으로 드러난 빙산밖에 안 됩니다.

스포츠에서는 그런 ‘돈빨’이 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 그게 아니었다 속을지라도 당장은 그리 확인하고픈 욕심 같은 것이 제게 있습니다. 이런 심정을 담아 6년 전에 쓴 글이 있습니다. <전라도닷컴> 2002년 11월 12일에 실렸습니다.

올해 삼성은 롯데자이언츠를 준플레이오프서 3대0으로 물리친 데 이어 플레이오프서도 선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17일 7대4로 연장 14회서 이기는 장면, 오늘 텔레비전에 나오던데 시원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삼성이 지기를 바랍니다. 그 때 그 글, 한 번 보시겠습니까?


삼성라이온스 우승이 억수로 섭섭하다

10일 밤 텔레비전으로 프로야구를 보았습니다. 승패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9대 6으로 뒤진 상태에서 9회말을 맞은 삼성 라이온스가, 뒤집기 한판으로 역전승했다는 얘기는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스포츠 뉴스 시간 텔레비전으로 보는 장면, 정말 시원하더군요. 이승엽의 석 점 짜리 홈런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어 나온 마해영이 터뜨린 한 점 짜리 홈런은 짜릿하기까지 하더군요.

이로써 삼성 라이온스는 4승2패가 되어 처음으로 코리안 시리즈에서 우승했습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축구나 탁구·농구 같은 것은 하기를 더 즐기는 편이지만 야구만큼은 보기를 좋아합니다.

부산 구덕운동장 근처에 살던 중학교 시절, ‘담치기’를 해가며 본 부산 지역 고등학교들의 야구 경기가 인상깊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제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야구부가 없어진 상태였지만, 대구에서 다닌 고등학교의 선배들이 한 때 대학야구와 실업야구를 부분적으로 주름잡았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처럼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다가 저와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들이 삼성라이온스에 많이 있기도 했기 때문에, 삼성라이온스를 좋아해도 크게 문제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 삼성라이온스의 이번 우승이 ‘억수로’ 섭섭합니다.

저는, 다른 종목은 몰라도 프로야구에서만큼은 삼성이 우승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85년에 삼성 라이온스가 전기와 후기 리그를 싹 쓸어 1등을 했을 때도, ‘챔피언 결정전 없이 된 1등이 무슨 소용 있나’ 하고 깎아내렸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저의 대답은 이번에 삼성이 우승한 원인에 대한 해설 방송을 뒤집어 읽으면 바로 나옵니다.

방송은 삼성 우승의 첫째 까닭으로 선수들의 달라진 승부의식을 들었습니다. 집중력·폭발력·끈질김 따위를 보기로 드는데, 저는 어느 우승팀에나 따라붙는 즐거운 공치사 정도로 여깁니다. 하나마나 한 말을 그냥 한 번 입에 발라 보는 거지요.

둘째 까닭으로 방송은 구단의 아낌없는 투자를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바가 맞다면, 삼성 구단은 지난 3년 동안 다른 구단에서 잘하는 선수 끌어들이는 데만 60억원을 넘게 썼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우승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덧붙인 셋째 까닭은 김응룡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입니다. 김응룡 감독을 좋아하는 이는 이번 일을 두고 “삼성이 아니라 김응룡이 우승한 것”이라고 합디다만, 이것은 그렇게 보고 싶다는 개인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부처님 손바닥은 못 보고 손오공의 눈부신 여의봉에만 눈이 팔린 이들의 중얼거림이지요.

삼성라이온스의 우승은 돈의 승리말고는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온통 돈으로 덕지덕지 처발라서’ 만들어낸 우승입니다. 그래서 저는 삼성의 우승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많은 이들이 저더러 ‘속 좁은 놈’이라고 하겠지요.

조금만 더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삼성라이온스가 82년부터 여태까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두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삼성의 다른 스포츠팀들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삼성이 돈에서만큼은 언제나 어디서나 최고를 보장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최고 대우를 받는 삼성의 선수들 가운데, 축구나 농구 배구 탁구 쪽에서는 ‘달아놓고’ 우승을 했습니다만 야구만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불가사의’라고 했습니다. 곰곰 따져보면 실력은 최고일 때가 많았지만 언제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늘의 뜻’이라고도 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돈에 미쳐 돌아가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서, 하늘이 삼성의 하고많은 스포츠팀 가운데 삼성라이온스라도 하나 끄집어 내어 못 이기게 만들었다는 얘깁니다.

세상 이치로는 설명이 안되지만, ‘돈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려고 하늘이 일부러 그리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삼성라이온스의 우승은 거꾸로, ‘돈으로 안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뚜렷하게 보여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9회말의 통쾌한 홈런 두 방이 안겨준 씁쓸함은 참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이제 프로스포츠에서만큼은, 돈으로 안되는 일도 있음을 엉터리로나마 입증할 수 없게 됐습니다.

사정이 이쯤 됐으니 저 같은 사람은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로 노선을 곧장 바꿔야 할까요? 아니면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그래도 남아 있다’면서, 앞으로도 줄곧 버팅기기를 해야 할까요?

김훤주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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