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죽음조차 차별 악용하는 동아일보

김훤주 2008. 10. 1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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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진실 씨 자살 보도
‘동아일보’ 10월 3일치 1면에는 “최진실 자살…‘시대의 연인’을 잃다”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사실상 머리기사였습니다. 최진실 씨 자살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같은 날 10면에는 최 씨를 두고 “깜찍 요정에서 ‘줌마렐라’까지 당대의 아이콘”이라는 기사와 함께, <최씨 평소 우울증… “악플로 충동자살 가능성”>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이튿날에는 1면에 “악플 ‘OUT’ 선플 ‘OK’…최진실 자살 이후 ‘선플달기’ 본격화”가 제목으로 떴습니다. 악플을 다는 누리꾼을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같은 4일 6면의 “與, 사이버모욕 처벌 ‘최진실법’ 만든다”와, 8면의 “증권가 사설정보지 제작팀 최소 10여개… 악성루머 양산”, “악플, 익명성-군중심리가 만들고 포털 통해 급속 확산” 등등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이어지는 6일의 기사 제목입니다. <“악플 보면 다 나를 싫어하는듯”>, <“악성 게시글 신속 삭제” “인터넷 감시-통제 의도”>, <“상습 악플러 구속수사” 경찰 오늘부터 집중단속>.

2. 최 씨 보도 목적은 누리꾼 사냥?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 올해 7월까지 5145건”도 이날 실렸고요 이튿날에도 12면에서 <검경 “불법 사설정보지 엄단”>과 “‘최진실 루머’ 메신저 서버 압수수색”이 나왔습니다.

최진실 씨 자살은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어서 저처럼 좀 둔한 사람은 이런 기사 흐름에 어떤 방향이 있는지 뚜렷하게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동아의 공격 대상이 ‘누리꾼’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우울증과 그에 치료 따위에 초점을 맞추고 이른바 악플은 곁가지로 걸쳐야 알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타는 대중의 관심을 양식 삼게 마련이고 거기에는 안 좋은 얘기도 당연히 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그리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올 봄 촛불 국면에서 자기네들에게 타격과 상처를 엄청나게 안겼던 누리꾼들을 글로 사냥해 댔습니다. 한 맺힌 복수극이라고나 할까요?

2. 교장 자살로는 전교조 때리고
그러면 동아일보가 다른 자살은 어떻게 다뤘을지 궁금해졌습니다. 2003년 4월 충남 예산 보성초교 교장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장과 교감이 기간제 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강요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단순한 강요가 아니었고, 거부를 했는데도 집요하게 심지어 수업하는 데까지 따라다니면서 강요하고 괴롭혔습니다. 이 기간제는 전교조에다 얘기를 했고 전교조는 당연히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교장이 자살했습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조선이나 중앙도 마찬가지로- 전교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마녀 사냥에 나섰습니다. 마녀 사냥은 원인과 결과 따위 상관관계는 따지지 않습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최진실 씨 자살 경우 동아일보는 더 큰 원인인 우울증 따위는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자기에게 손실을 입혔던 ‘누리꾼’을 공격하고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교장 자살은 보도의 기본인 팩트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네들이 태생으로 싫어하는 전교조를 범인으로 몰아감으로써 결국에는 거의 반쯤 죽여 놓았습니다.

3. 학생 자살은 얼버무리거나 무시
학생 자살은 어떻게 다뤘을까요? 2005년 4월 11일에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인 서울 어느 과학고교에서 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3학년 학생이 자기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아일보가 뿌려대는 불법 경품

이튿날 다른 한국일보라든지는 이 학생의 성적이 좋았다든지 얼굴도 잘 생겼다든지 하는 보도를 했습니다만, 동아는 딱 석 줄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습니다.(제가 알기로 중앙 조선은 아예 이 정도 보도도 않았습니다만.)

첫 기사가 충분히 상세하지도 않았고, 공부 잘하고 잘 생긴 서울 특목고 학생회장이 자살했다는 ‘팩트’의 값어치가 (진짜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다른 자살보다 떨어진다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후속 보도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최진실 씨 자살과 보성초교 교장 자살과 과학고 학생회장 자살은, 여러 다른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사실을 충실하게 보도하고 원인까지 꼼꼼하게 따져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저는 여깁니다.

그런데도 최진실 씨 자살과 교장 자살은 크게 다뤄진 반면 학생회장 자살은 아예 다루지 않거나 조그맣게 다뤘습니다. 동아(조선과 중앙도)가 봤을 때, 앞에 둘과 달리, 학생회장 자살 사건은, 그것을 다루면서 사냥할 대상이 바로 자기(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무한 경쟁 교육 체제 아래에서, 모든 것에 서열을 매기고 돈 있는 사람만이 더 잘 공부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를 시스템화하다보니 생기게 된 학생 자살입니다. 동아일보는 평소 이런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니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제가 볼 때 결론은 이렇습니다. 동아일보는, 죽음조차도 사익(私益 또는 社益)에 따라 악용하고 차별하는 신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장이나 최진실 씨 자살은 이토록 크게 다루면서도, 학생회장 자살은 그토록 작게 다룰 까닭이 없습니다.

김훤주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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