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하재근의 대학평준화, 진짜 의미는?

기록하는 사람 2008. 10. 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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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까지 모든 학비가 무료이고, 대학에 다니는동안 생활비까지 대주는 핀란드·스웨덴 같은 나라가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돈을 들여 사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직업학교만 나와도 대학 나온 사람들과 같은 월급을 받는 그런 나라가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병에 걸려 병원에 가도 돈 한푼 낼 필요가 없고, 노동력이 없어 돈을 못버는 처지가 되어도 국가에서 책임져 주는 그런 복지민주주의 국가가 한국에서도 실현될 수 있을까.

하재근씨는 한국에서도 그런 사회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대학평준화'라고 믿는다.

하재근은 '학벌없는 사회'라는 단체의 사무처장이며,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포럼, 18000원)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그는 또한 '울지아나 하재근(http://ooljiana.tistory.com/)이라는 블로그의 주인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 하재근 강연을 들어보니…

그런 하재근이 어제(10일) 저녁 마산에 왔다.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이 마련한 초청강연을 위해서다. 그의 강연은 듣는 상대에 따라 자칫 싸움이 될만한 아슬아슬한 내용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좌파나 운동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재근 처장이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강연하고 있다.


"우리나라 좌파나 민주화운동권은 경제성장, 산업경쟁력 이런 이야기를 하면 큰일나는 줄 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도 맨날 독재다, 파쇼다 뭐, 박정희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제는 좌파나 운동권도 경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맨날 한나라당만 경제 이야기하고, 좌파나 운동권은 생태니, 환경이니 온갖 좋은 이야기만 하는데, 국민들이 들으면 말은 좋지만 와닿지가 않는다."

"재벌 문제도 그렇다. 이건 거의 우리나라에선 폭탄 같은 문제인데, 어쨌든 스웨덴 사민당은 재벌을 끌어안았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권 이후 재벌과 대립하는 게 거의 민주화운동과 등치되는 걸로 이해한다. 우리나라 좌파도 상상력을 열어놓고 국민의 정서에 와닿는 방식으로 생각을 넓게 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야 좌파의 국민정당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대안학교는 그냥 아름다운 일이다. 미국에도 부자들이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한다. 봉사활동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좋은 건 좋은 거지만 사회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대안학교도 대한민국 교육이 워낙 문제가 많으니까 그냥 우리끼리 좋은 학교 만들어서 좋은 교육 시켜보자 그런 것이다.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국가 제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있는 학벌없는 사회는 한국 시민사회에서도 왕따다. 시민사회운동세력도 학벌없는 사회를 싫어한다. 민주화운동단체도 싫어한다."

"시민사회세력도 사교육비는 올리지말고 입시교육을 너무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경쟁력과 수월성과 선택권 확대와 자율성 확대는 해달라 이런식인데,  이런 정도의 인식 갖고는 이명박 교육정책의 본질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것을 뒤집을 수도 없다."


이런 좀 민감할 수도 있는 얘기는 주로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나왔다. 하지만 핵심적인 강연내용 중에서도 노무현 또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들으면 기분나빠 할 이야기들도 있었다.

"김영삼 정권이 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이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우리나라가 반세기동안 국가를 꾸려왔던 양식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근본적으로 이 나라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구조조정을 한 결과, 거시경제 지표는 좋아졌는데 위기의 만성화를 불렀다. 때만 되면 위기론이 터져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미국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우리가 어떤 특단의 조치을 취하지 않으면 위기를 돌파하기는 힘들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민주공화국을 해체하고 봉건시대의 신분제사회로 되돌리는 '혁명'을 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 혁명이 교육정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명박 정권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가난한 사람을 내팽겨치면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될 것이다고 생각한다. 바로 낙수효과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어 투자도 하고 소비도 하면 낙숫물 떨어지듯이 아래에 있는 서민들도 잘 살게 된다는 논리다. 정부가 인위적인 양극화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는 소수의 엘리트를 기르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게 이명박 교육정책의 본질이다. 이건 국가패망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가 남미처럼 가는 것이 패망이라는 것이다. 다수의 빈민과 소수의 부자가 극단적인 양극화 속에서 살아가는 게 남미 사회이다."

그의 '대학평준화'는 강자독식주의 극복대안

그러면서 하재근은 이런 신자유주의 양극화 정책이 이명박 정권 이전에 이미 김영삼 정권 때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1993년에 시작해서 16년이 됐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까지, 20년째 이명박의 나라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 사이는 안좋지만 정책은 일관된 것이었다."

결국 이 네 번의 정권이 모두 신자유주의 양극화 교육정책에 있어서만은 모두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은 "한국의 그랜드서클이 정권을 잡은 것"이라고 본다. 즉, 한국 교육피라미드의 최상층부에는 서울대와 연·고대, 이화여대가 각각 성골과 진골을 형성하고 있고, 신분피라미드에는 재벌과 거대자본가가 최상층부에 있는데, 이들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최상층부는 혼맥으로 모두 연결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혼맥을 그리면 삼성이니 효성이니 전두환·노태우, 조선·중앙·동아일보, 김앤장 등 여러 단위를 거치며 모두 연결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간단히 말하면, 최상층부 집단이 최상층부 학교에 가고, 그들이 또 최상층부가 되고…, 이런 식으로 서로 신분 교환이 안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세습, 신분제가 된다는 것으로, 이건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육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난한 사람은 절대 좋은 학교에 못가도록 하는 전략을 쓰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영어로 또 하나의 장벽을 치고 있다. 못사는 집 아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미국에 다녀온 부잣집 아이들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는 이런 상황을 북유럽식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하자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래서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복지혜택을 먼저 약속하고,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아가기 위해선 대학평준화 요구부터 하고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고도 지지할 수 있는 요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운동도 이젠 반대만 하는 수세적 자세에서 나아가 요구를 하는 공세적 입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의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평준화' 요구를 그냥 '교육민주화운동'의 한 장르로만 알고 있었다. 하재근의 강의를 듣고 난 뒤, 이 요구가 강자독식주의(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과 밀접히 관련돼 있음을 알 게 됐다. 수세적 반대에서 공세적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고, 그가 생각하는 대안사회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이 강의를 듣기 전까지 그게 그렇게 연결된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무식한 탓도 있겠지만, 역으로 대학평준화 요구가 국민에게 효과적이고 설득력있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지도 모른다.

'학벌없는 사회'나 '대학평준화'라는 단어에는 그게 실현됨으로써 생기는 '효과'에 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좀 더 효과적인 프레임을 짜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강자독식주의'나 '시장만능주의' '무한경쟁주의'라는 말로 바꿔야 하듯이….

우선 그가 쓴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부터 사봐야 겠다. 책 제목도 좀 마음에 안들긴 하지만….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10점
하재근 지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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