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꿈에서도 시험 치는 우리나라 고3들

김훤주 2008. 10. 1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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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9일, 제주도로 출장을 갔습니다. 저로서는 세상 태어나서 처음 하는 제주도 나들이였습니다만, 제가 회의를 주관해야 하는 처지라 긴장만 잔뜩 됐고 감흥은 별로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출장을 가기 앞서 고3 아들 현석이를 깨웠습니다. 지금은 수능 시험을 한 달 가량 앞둔 시점입니다. 아침 6시 40분이었습니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씻고 아침 먹고 7시 30분까지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현석은 잘 일어나지지가 않았습니다. 몸을 흔들어도 눈조차 잘 떨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몇 차례 흔드는데, 현석이 잠꼬대를 하는지 무어라 중얼거렸습니다. 귀를 기울였더니 무슨 “4번, 4번” 그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래 제가 “아들! 지금 시험 치는 거냐?” 그랬더니 이 친구가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음, 음” 이랬습니다.

지켜보던 저는 슬그머니 장난기가 일어나 “4번 아닌데, 정답은 1번인데.”, 이랬겠지요. 그러자 제 아들 녀석이 “몇 번 문제예요?”라며 눈을 번쩍 떴습니다.

아들이 안 되어 보였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잠자리에서조차 문제 풀이를 해야 하는, 꿈속에서조차 문제를 틀리면 깜짝 놀라야 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보내 놓고 이것저것 집안 정리를 했지만, 9시 조금 덜 돼 공항버스를 타러 나갈 때까지 내내 못마땅한 마음은 가실 줄을 몰랐습니다.

10시 50분 부산공항(옛날에는 김해공항이라 했지만)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더욱 깊어졌습니다.

제 아들 녀석은 미술대학에 진학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제 아들은 저녁 6시면 수업(사실은 문제 풀이)을 마치고 나오지만, 일반 학과 가려는 다른 고3 대부분은 밤 10시까지 학교에 잡혀 있어야 합니다.

제 아들은 수능도 이른바 언어.외국어.사회탐구만 하면 되지만 전체 성적을 신경써야 하는 다른 고3 대부분은 수학이라든지 하는 다른 과목 공부(사실은 문제 풀이)까지 해야 합니다.

부담이 덜 하달 수 있는 아들이 저 정도인데, 문제 풀이와 시험 강박에 훨씬 더 시달릴 수밖에 없는 다른 고3은 오죽하겠나 싶었습니다. 아들이 얘기해준 보선이라든지 친구 녀석들 처진 어깨와 졸리는 눈이 더욱 크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리 마음먹었습니다. 오는 11월 13일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나면, 별 탈 없이 고3 괴로운 시절을 버텨준 보답으로 아들 녀석에게 술 한 잔 권해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 현석은, 이런 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교 마치고 집에 잠시 들렀을 때 제게 ‘싱긋’ 웃어 주었습니다. 학교는 마쳤지만 미술학원 가야 하고 독서실서 공부하다가 새벽 2시 들어와 겨우 몸을 누이는 처지인데도 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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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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