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영리병원 논란, 경남으로 옮겨붙나

기록하는 사람 2008. 9. 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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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격렬한 논란 끝에 여론조사로 부결된 바 있는 영리병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경남으로 옮겨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다, 이를 반대하는 정당·사회단체가 필사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이달 초 미국의 두 의료기관 최고위급 관계자와 직접 협상을 펼쳐 암 센터 건립과 자본투자, 복합의료단지 설립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달에는 미국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20개 병원을 거느린 대형병원의 파트너이자 의료기기 공급회사인 GE사가 경제자유구역청을 방문, 설립 관련 구체적인 논의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지식경제부 관계자도 "600병상과 부대시설 등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자가 최근 나타났다"며 "이르면 연말께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반대시위./경남도민일보

이처럼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은 지난해 말 외국자본이 50%만 참여해도 설립이 가능하도록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이 각각 절반씩 투자해 내국인 진료도 가능한 영리병원 설립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게다가 지난 7월에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도 개정해 외국 의료기관에 목욕장업, 보양온천 설치·운영, 관광숙박업 등의 부대사업도 할 수 있도록 특혜도 줬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구체적인 영리병원 설립근거를 규정한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도 이미 준비를 마치고 내달초 입법예고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와 경제자유구역청은 자칫 제주도와 같은 국민 반발을 우려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심지어 보도자료를 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은 경남도민일보의 취재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긴 했지만 워낙 민감한 문제라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별법 입법예고를 준비 중인 지식경제부 관계자도 "자세한 내용은 부처간 의견조정 중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보건단체 등은 "제주도의 시도가 1라운드였다면, 경제자유구역내 영리병원은 2라운드"라며 "제주도민이 막아냈듯이 경남과 부산에서도 반드시 저지하고야 말 것"이라며 저지투쟁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하정우 사무처장은 "(외국영리병원이 들어서면) 당연지정제 등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져 의료비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환자는 진료대에 눕혀야지 계산대에 눕혀선 안된다"고 말했다.

부산의료연대회의 사은희 집행위원장은 "내국인 투자와 내국인 진료가 가능한 영리병원이 들어설 경우, 국내 병원들이 '역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낼 게 뻔하다"면서 "그럴 경우 결국 국내 영리병원 허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저지 입장을 밝혔다.

경제자유구역청, 보도자료 내놓고 보도자제 요청

국민들의 관심이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던 지난해 11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영리병원 설립과 관련,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법 하나가 국회를 통과했다.

법 이름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었고, 외국의료기관 설립에 대해 "외국인 투자비율이 100분의 50 이상일 것"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 문구가 없을 땐 당연히 외국인 자본 비율이 100%였다. 그러나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이 각각 절반씩 투자해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법인 설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2006년 창원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던 부산 진해 경제자유구역청 개청 2주년 기념 ‘경제자유구역 개발, 외자유치 전략과 과제 도출을 위한 세미나’. /경남도민일보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이미 개정된 법에서는 '의료기관'이라는 말 앞에 있던 '외국인전용'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덕분에 내국인도 영리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이에 마지막 남은 수순은 영리병원 설립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제자유구역내 외국의료기관 설립·운영 특별법'만 통과되면 끝난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하려고 준비 중"이라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부처간 의견조정 중이어서 언론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위원회 간사인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실 관계자는 "법제처에서 초안을 검토 중이며, 내달 초 입법예고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대략적인 일정만 알고 있지 자세한 내용은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위 간사 의원실에서도 받지 못했다는 특별법 초안을 미리 받아 검토를 마쳤고, 지난 23일 자로 입법 내용에 따른 의견서까지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2개 대형병원 부산·진해 진출 움직임

이런 상황에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최근 '미국 의료기관 및 개발·제조분야 투자유치활동 성공적 추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구역청은 이 보도자료에서 "지난 9월 2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을 방문하여 구역청의 주요 프로젝트인 의료기관, 도시개발, 첨단기술업체 유치와 관련한 상담을 성공적으로 하였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A병원'과 'B의료기관'이라는 이니셜로 표기했는데, A병원의 경우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산하 20개 병원으로 구성되어 연간 7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대형병원"으로 "아일랜드, 영국, 이탈리아, 카타르, 사이프러스 등 해외 진출에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또 B의료기관은 "미국의 베스트병원으로 평가되는 산하 6개 병원을 통하여 환자 진료, 의료진 교육 및 훈련, 의료관련 R&D 등의 사업을 두바이,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의료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 복합의료단지 설립을 위하여 타당성 조사, 투자자 모집 등 상호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도자료는 일부 언론에만 무덤덤하게 보도됐다. 그러나 막상 <경남도민일보>가 취재에 들어가자 구역청 관계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A·B로 표현된 미국 의료기관의 실명도 밝히길 꺼렸다. 반대하는 단체들이 해당 미국 병원에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해 국내 진출을 막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도자료를 내긴 했지만, 민감한 사안인데다 아직 협상 중이어서 언론보도를 통해 많은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치단체 2곳 걸쳐 있어 저지 쉽지 않을 듯

이에 따라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영리병원 논란이 이번엔 경남·부산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과 보건의료연대회의, 사회보험노조 등 관련단체들이 저지투쟁에 나설 것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도에서처럼 도민 여론조사나 주민투표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설립 및 유치 주체가 민선자치단체장이 아닌데다, 두 개의 자치단체가 걸쳐 있기 때문이다.

부산보건의료연대회의 사은희 집행위원장은 "곧 입법예고 될 특별법 내용에서 외국 의료인 자격과 숫자 등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외국 의료인 비율이 낮고, 자격 요건이 완화돼있다면 외국 영리병원이라기보단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적용 안돼 반대 여론 뜨거워

전국사회보험노조 정책실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현행 당연지정제 폐기는 시간 문제가 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하정우 사무처장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국내 영리병원 설립 시도가 1라운드였다면, 경제자유구역내 외국 영리병원은 2라운드 싸움이 될 것"이라며 "제주도민이 막아냈듯이 경남·부산에서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지난 6월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에게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내용 등으로 제주특별자치법 개정 추진의지를 밝히면서 격렬한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논쟁이 격화되자 "도민 의견수렴을 통해 결정하겠다"며 지난 7월 말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반대 39.9%, 찬성 38.2%로 내국인 영리병원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김범기 기자와 함께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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