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어머니 덕분에 택배 기사 이름을 입력했다

김훤주 2008. 9. 2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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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 때문에 택배 서비스를 자주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손전화에는 택배 기사 손전화 번호가 들어가 있습니다. 필요할 때 ‘ㅌ’하고 ‘ㅂ’을 찍으면 바로 연락이 되도록 말입니다.

택배 기사에게서 명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자기 손전화에 집어넣고 주인 이름을 ‘택배기사’라 적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볼 일이 생겼답니다.

여태껏 이른바 그루핑(grouping)하지 않고 전화번호를 그냥 마구 집어넣었다가 이번에 틈이 나서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 하더군요. 그이는 ‘택배기사’를 ‘거래처’ 그룹으로 분류해 넣었답니다.

그러는데, 그야말로 아무 까닭 없이, 어머니가 떠오르더랍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말입니다. 어머니는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처지라 어렵사리 독학으로 한글을 깨치셨다 했습니다. 당신 이름을 당신 손으로 삐뚤삐뚤 쓰는 정도였겠지요.

그이는 어머니한테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답니다. “평생 내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네…….” 어머니는 아버지한테는 ‘여보’ 또는 ‘어이’였고 집안 어른들한테는 ‘에미’ 아니면 ‘야야’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어머니 친정 마을을 붙여 이를테면 ‘읍내’ ‘띠기’(宅)라 했습니다. 아니면 누구누구 엄마라거나 했습니다. 친척들은 자기 기준으로 누구 이모라든지 누구 고모라든지 하는 식으로 그이 어머니를 일렀겠지요.

당신 이름으로 불려 본 적이 거의 없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 그이가 손전화에서 ‘택배기사’를 분류하는 순간에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어머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이는 ‘택배기사’를 지웠습니다. 자기한테 택배기사라고 일컬어지는 바로 그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라는 이름을, 명함을 보고 찍었겠지요.

그런데, 그래 놓고 생각해 보ㅘㅆ더니, 이름을 기억했다가 그 사람 전화번호를 손전화에서 불러낼 자신이 없더랍니다. 결국 타협하기를, ‘○○○택배기사’라 하기로 했답니다. 그이는 이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를 술 마시면서 했습니다.

어머니가 당신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랐던 그런 정도는 아니겠지만, 자기가 예사로 택배기사라 이르는 어떤 사람도 자기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 했답니다. 저는 잘했다고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꽃. 물매화이지 싶은데.

그러면서, 서른 살 시절까지 좋아했던, 김춘수의 작품 ‘꽃’이 떠올랐습니다. ‘내’ 또는 ‘나’가 있는 자리에 ‘세상’ 또는 ‘사회’가 대신 놓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이는 앞으로 이럴 것 같습니다. “○○○ 씨죠? 택배 있는데 오늘 한 번 와 주시겠어요?” 전에는 이랬을 것입니다. “택배(기사)죠? 오늘 택배 있는데 가져가실래요?”


대답은 마찬가지 “예, 알았습니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전이랑 앞으로랑 전화 받는 느낌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저는 여깁니다만.

김훤주

택배는 서비스맨이다
카테고리 경영/경제
지은이 한상원 (범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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