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최초의 블로그 필화(筆禍)사건을 보고

기록하는 사람 2008. 9. 1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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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조합 지부장을 하던 시절, 종종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폼나게 감방 한 번 가보는 게 꿈"이라고.

농담이긴 했지만, 군사독재 치하에서 20대를 보내면서 감방은커녕 경찰서 유치장에도 한 번 갇혀본 적이 없는 데 대한 콤플렉스가 은근히 작용한 말이었다.

지부장 임기를 마친 후 다시 기자질을 하면서도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쓴 기사로 인해 명분있는 필화(筆禍)사건을 당해보는 게 꿈"이라고. (진짜 그런 일로 고초를 당한 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말이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아무리 권력자를 조지는 기사를 써도 안기부(국정원)나 보안사(기무사)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요즘 젊은 독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군부독재 시절엔 권력자가 싫어할 기사를 쓰면 '적을 이롭게 한 죄(이적행위)'라는 명목으로 무조건 잡아갔었다.)

잡혀갈 기회는 이제 없을 줄 알았더니…

아! 그런데, 마산시청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내가 기사를 통해 황철곤 마산시장을 '군사독재보다 더 심한 지방독재자'라고 비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형사고발이 아니라, 민사소송이었다는 점이다. 그들도 내 '꿈'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일까. 폼나게 감방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신 1억 원의 거금을 요구했다.

내게 그런 큰 돈이 어디 있나. 민사소송 대신 형사고발을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꼬박 1년 간 법정투쟁을 벌였고, 결국은 승소했다.

판결이 나던 날 이렇게 탄식했다. '아! 이제 폼나게 감방 가는 시대는 지났구나.'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마자 언론장악 쓰나미가 불어닥친 것이다. MBC PD수첩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KBS와 YTN에서도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기자와 PD들이 잡혀가는 일도 이제 시간문제다.

YTN '뉴스의 현장' 생방송 도중 YTN지부가 '공정방송 투쟁'을 알리는 손팻말 시위를 진행했다. ⓒ미디어스 송선영

 
한국 언론사(史)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필화도 발생했다. 엉뚱하게도 사건의 진원지는 대표적인 보수언론 중 하나인 중앙일보다. 이 회사 이여영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썼던 '5.29 촛불집회 참관기'라는 글이 문제였다. 그는 5월 29일 광화문 일대에서 본 촛불집회 현장을 담담하게 기록한 뒤 이런 소회를 남겼다.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인근 식당에서 꽤 늦은 저녁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허기가 가시는 게 아니라 속이 더 쓰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해, 내가 몸담고 있는 중앙일보가 최근 기록한 것과 민심은 다시는 맞닿을 일이 없을 것처럼 멀어지고 말았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다.
물론 언론은 단순한 민심의 기록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민심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훈계할 특권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진실은 과연 어느 쪽에 더 근접해 있을까?
우리 나라를 뒤엎은 정치적 당파주의와 사회적 냉소주의가 가장 가까워야 할 언론과 대중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다. 비록 나 자신은 직접 간여하지 못했지만, 지난 한 달여간 조중동의 보도가 다분히 당파적이고 냉소적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대중 역시 그에 당파적이고 냉소적으로 대응했지만.
쓰린 속을 달래려고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까워서, 기어코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야 말았다."

중앙일보 사주나 간부들이 기분 나빴을 만한 부분을 굳이 찾자면 이 정도다. 당시 나도 이 글을 보고 이여영 기자를 알게 됐는데, 그 때 느낀 소감은 '중앙일보에도 그나마 생각할 줄 아는 기자가 있네'라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조중동 기자들이 (신문에는 못쓰면서)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이런 글을 자꾸 쓰게 되면 수구꼴통 이미지가 희석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걱정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블로그와 기자들을 '이용'하는 조중동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중앙일보는 연봉계약직이었던 이여영 기자를 계약해지해버렸다. 이런 좀팽이같은 조직을 내가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이걸 슬퍼해야 하나, 기뻐해야 하나. 게다가 이 기자가 다음(Daum)에 블로그를 옮겨 쓴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글은 '이해당사자(?)'에 의한 권리침해신고로 인해 임시접근금지 조치까지 돼 있다.

21세기 필화 사건의 첫 주인공 이여영

이 일로 이 기자는 블로그에 쓴 글로 해직된 최초의 기자이자, 21세기 들어 발생한 '명분 있는 필화'의 첫 주인공이 됐다. 블로그 갖고 있는 조중동 기자들 참 안됐다. 신문 기사와 달리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글쓰기인데, 그것마저 회사의 편집방침에 따라야 하게 됐으니…. 그들은 앞으론 블로그 포스트도 일일이 데스크의 검열을 받아야겠다.

이여영 기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yiyoyong).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글이 임시접근금지 조치돼 있다.


PD저널에 따르면 이 기자는 '나와 같은 나쁜 선례가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중앙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단다.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소송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치사한 일을 보고도 말한마디 못하고 있는 동료, 선·후배들까지 생각해줄 필요가 있나.

대신 그런 정신과 의지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여 한국언론사에 길이 남을 대(大)기자가 되기 바란다. '중앙일보 해직기자'란 명예로운 딱지를 당당히 걸고서 말이다. 아직 젊고 능력까지 있으니 능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나도 한 때 포기했던 '명분 있는 필화'나 '폼나게 감방 갈' 기회를 다시 노려봐야 겠다.

※덧붙이는 말 : 이 글을 올리기 직전 엄호동 위원이 쓴 '한 여기자의 인권은 안중에 없던 언론과 포털' 이라는 글을 봤다. 나는 엄 위원의 생각과 좀 다르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있는 글을 쓰는 일종의 공인이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 또한 스스로 공개한 것이며, 다음블로거뉴스에 송고한 것도 메인에 편집될 수 있음을 충분히 염두에 둔 것이다. 블로그에 얼굴사진을 공개한 것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여영 기자의 블로그 또한 단순한 개인 일기쓰기용 도구가 아니라 이미 웬만한 인터넷신문보다 많은 방문자를 보유한 '미디어'로 봐야 한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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