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납(納)의 관존(官尊)-급(給)의 민비(民卑)

김훤주 2008. 8. 3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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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말글살이에는 사람들 관성 속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이 녹아 있는 때가 많습니다. 관성이란 여태 해 오던 것이기 때문에 반성이나 성찰의 대상이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경우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면 관성이나 관행을 거스르고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을 깨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작거나 아니면 때로는 아무 뜻 없어 보이는 그런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한 번 더 비록, 그것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피곤하게 하더라도 말입니다.

납(納)이라는 중국글이 있습니다. 저 어릴 적 어머니한테서 천자문을 배울 때는 (지금과 달리) ‘들일 납’이라 훈(訓)을 붙였습니다. 들이다, 들+이+다, 여기서 -이-는 사동(使動)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생각하면, 우리가 늘 쓰는 높임말 ‘드리다’의 말뿌리가 여기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들게 하다, 입니다.

우리 전통 가운데에는 자기보다 높은 이를 되도록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대(恭待)하는 바탕이라는 관념이 있습니다.

‘들이다→드리다’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웃어른은 꼼짝도 않는 채 있고 아랫것들이 들어가게 합니다. 이것이 그것의 원래 뜻입니다.

비슷한 낱말로 ‘뵈다’:웃어른을 마주하여 보다, 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잠깐만 따져봐도 이것이 보+이+다,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여기서도 마찬가지 사동입니다.

웃어른은 꼼짝 않고 있는데 아랫것이 가서 보시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드리다’와 뵈다(=뵙다)는 형성 배경과 원리가 똑같습니다.

이런 납(納)을 쓰는 말이, 지금은 민주주의 세상인데도, 여전히 관청이나 회사나 학교 같은 데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저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쫀쫀하지요? 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금 '환급' 사기 사건 발표 장면. 경남도민일보 사진.

국민은 주권자이고 관청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고 공무원은 주권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하고 회사는 사원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렇습니다. 납공은 ‘공물을 바침’입니다. 납금은 ‘금전을 상납함’입니다. 납녀는 ‘바치는 여자’입니다. 납두는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여 복종함’입니다.

더 있습니다. 납배는 ‘절하고 뵘’이고, 납본은 ‘발행한 출판물의 견본을 관계 관청에 바침’이고 납세는 ‘세금을 바침’이고 수납은 그렇게 바치는 것들을 ‘받아들임’입니다.

징그럽습니다. 완납, 납입, 헌납, 납품, 용납. 이밖에도 납(納)이 들어가는 낱말을 찾으려면 아마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납세는 있어도 급세는 없습니다.

왜냐? 급(給)은 주다, 베풀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다는, 자기랑 수준이 같거나 아니면 낮은 사람에게 하는 일입니다. 베풀다도, 아무래도 자기보다 떨어지는 존재가 대상입니다.

마산시 수도과에서 물을 주면서 ‘급수’라 합니다. 창원시에서 필요한 물품을 대어주면서 ‘공급’이라 합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대가를 주면서 ‘급여’ 또는 ‘급료’라 합니다.

이들은 ‘납수’라 하지 않고 ‘공납’이라 하지 않고 ‘납여’ 또는 ‘납료’라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라고만 하지, 수‘납’권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세금을 잘못 납부받아서 관청이 돌려줘야 할 때는, ‘환납’이 아니라 꼭 ‘환급’이라 합니다. 이 같은 일은 근로복지공단도 하고 건강보험관리공단도 하고 심지어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합니다. 우습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밥을 마련해 주면서도, 급식이라 하지 납식이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똑같습니다. ‘급유’ ‘급양’ ‘도급’ ‘보급’ ‘봉급’ 따위 따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렇게 쓰이는 현실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쓰이는 현실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한 번쯤은 충격도 필요하다 싶어서, 창원시 세무과에 일부러 찾아가, (‘납세’가 아닌) ‘급세’를 하러 왔다고 뻐긴 적이 있기도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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