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카퍼레이드를 하겠다는 진짜 이유는?

김훤주 2008. 8. 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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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금메달을 많이 땄다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열심히 했다고 곳곳에서 생난리를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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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돌아옵니다. 이미 돌아온 선수도 많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모아 퍼레이드를 한다고 합니다. 25일 저녁에 펼쳐질 모양입니다.

저는 이런 퍼레이드가 선수들을 위한 행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분석이 아니라 어린 시절 제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1.
국민학교 6학년 때인 1975년 봄, 제가 들어 있던 조그만 시골 국민학교의 탁구부가 문교부장관기 학생 선수권대회에서 3등을 했습니다.

여태껏 경남 단위 체육대회에서조차 우승을 해 본 적이 없는 학교였습니다. 그런 학교에서 사상 처음으로 경남 지역 국민학교 대표로 전국 대회에 나가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조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런 성적을 올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카퍼레이드를 벌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시키는대로 차리고 기다리다가 화물차 짐칸에 올라타서 서 있기만 하면 됐습니다.

2.
화물차에 합판을 대고 글씨를 써넣거나, 이런저런 일로 이런 카퍼레이드를 하게 됐다는 안내 방송은 따로 준비가 됐습니다.

행사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쑥스러웠습니다. 원래 지니고 있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우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여주는 구경거리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구경거리라는 지위도, 국민학교 6학년짜리 어린아이한테는 과분한 것일 수 있었겠습니다만.

우리는 간단히 잊혀졌습니다. 저녁이나 점심 자리도 한 번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졌습니다. 학교 앞 가게에서 친구들이나 가게 주인이 잠시 기억해 줄 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상이란 학교 수업 모두 빠지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훈련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기합을 받았고 어떤 때는 얻어맞는 일이었습니다.

3.
달라진 것은 물론 있었습니다. 우리를 담당했던 선생님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짐작건대 그 두 분이 지역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조금은 올라갔을 것입니다. 나중에 군수나 경찰서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하고 한 자리 잘했다는 얘기도 저는 들었습니다.

아울러 우리 탁구부 부원 한 녀석도 어깨를 매우 으쓱거렸습니다. 그 친구 아버지는 당시 토목업을 하면서 학교 육성회장도 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이번 카퍼레이드에서 그 친구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를 말입니다. 친구 아버지는 ‘이번에도’ 물건을 대고 돈을 댔을 것입니다.

위신 때문인지 아니면 금전 이익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친구 아버지는 열심히 탁구부를 후원했습니다. 다른 데서 선수 데려오는 스카우트까지 돈 들여 거들 정도였습니다.

이런저런 물품을 사는 데도 돈을 내었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반찬이랑 밥을 해 나르기도 했습니다. 아들 얼굴만 보고 하는 일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4.
결과 삼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육성회장은 카퍼레이드를 실제로 책임을 졌습니다. 대가로 이런저런 칭찬과 지역 유지들과 더욱 좋아진 관계를 얻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인사 고과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할 수 있는 가점을 얻은 데 더해 교장과 교감을 흐뭇하게 하고 지역 사회에서 위신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장과 교감도 학교 운영을 잘했다고 나름대로 좋은 점수를 받았을 테고요, 담당 선생님도 바로 위 상관에게 잘 보이는 성과를 얻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잠깐 등장했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으로 모든 역할이 끝났습니다. 당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5.
25일 서울에서 벌어지는 베이징 올림픽 관련 퍼레이드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대부분 선수들은 우리처럼 곧바로 잊혀질 것입니다.(몇몇은 그렇지 않겠지요.)

그리고 대한체육회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은 나름대로 자기 위상을 드높이는 한편으로 자기 윗사람에게서 이런저런 칭찬을 듣고 눈도장도 찍는 보람을 누릴 것입니다.

윗사람이랄 수 있는 대통령이나 장관 등도 이로 말미암아 이른바 국정 수행 등등에서 잘했다는 얘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 점수를 조져 먹었다면 여기서 만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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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경꾼이 왜 퍼레이드를 하는지 모를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어릴 적 겪었던 카퍼레이드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카퍼레이드를 하는 진짜 이유를 적어도 그 바닥에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구경꾼뿐 아니라 구경꺼리인 선수들조차 퍼레이드를 왜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이명박이 올림픽 무대 뒤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이명박은 ‘호감’으로 비치고 싶어하지만, 많은 이들이 ‘비호감’으로 보는 까닭입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 미디어 비평 전문 인터넷 매체 <미디어스>에 25일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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